▲브라이언 싱어의 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한 장면. ⓒ영화 스틸컷 |
마블 코믹스의 대표작 <엑스맨> 시리즈는 정치적이다. 그런데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2014년 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정치적 메시지가 다소 약해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전편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그리고 오리지널 <엑스맨> 1편과 2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연출자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1편과 2편을 연출한 뒤 잠시 물러나 있었다. 묘하게도 그가 2선 후퇴하면서 후속작인 <엑스맨: 더 라스트 스탠드>, 그리고 프리퀄(prequel)인 <울버린>은 눈에 띠게 흥미가 반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엑스맨 시리즈는 <킥 애스>의 매튜 본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내놓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엇보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원작이 탄생했던 즈음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경우 매튜 본은 제작자로 나서고,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을 맡았다.
브라이언 싱어는 누구나 다 아는 결말을 가진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데 뛰어난 재주를 과시해왔다. <수퍼맨 리턴즈>, 그리고 톰 크루즈를 기용해 만든 <작전명 발키리>가 아주 대표적이다. 그가 엑스맨 시리즈에 컴백해 연출한 신작에서도 그의 솜씨는 빛난다. 특히 노년과 젊은 시절의 에릭, 찰스를 겹쳐 연출한 솜씨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노년의 자비에르 교수 역을 맡은 패트릭 스튜어트와 젊은 시절 자비에르를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를 한 프레임에 등장하게 한 연출 역시 뛰어나다. 이 장면에서 높은 이상을 가졌으나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한 젊은 날의 자비에르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노년의 자비에르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다.
한편 젊은 날의 매그니토 역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미스틱/레이븐으로 등장하는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도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모습이다. 이 대목에서 울버린 캐릭터를 지나칠 수 없다. 울버린은 엑스맨 시리즈의 중심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울버린 역은 이번에도 휴 잭맨의 몫이다. 엑스맨 시리즈가 울버린과 불가분인 것처럼 울버린 캐릭터 역시 휴 잭맨과 불가분의 관계로 자리매김했다.
엑스맨이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
▲브라이언 싱어의 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한 장면. ⓒ영화 스틸컷 |
앞서 지적했듯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전작들에 비해 약한 편이다. 먼 미래, 돌연변이(뮤턴트) 종족은 최대 위기에 봉착한다. 뮤턴트를 혐오하는 인간들이 무한 변형이 가능한 살인기계 센티널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센티널은 뛰어난 능력으로 뮤턴트와 뮤턴트에 협력한 인류를 닥치는 대로 살상한다. 오랫동안 대립해왔던 에릭(매그니토)과 찰스(자비에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모처럼 마음을 같이 한다. 찰스는 고심 끝에 울버린을 과거로 보내 센티널 개발을 저지하려 한다.
엑스맨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류와 공존을 꾀하는 온건파 뮤턴트와 인류와의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강경파 뮤턴트, 그리고 역시 뮤턴트와 공존할 수 없다는 인류와 뮤턴트와 협력하는 인류 등 모두 4개의 층위로 나뉜다. 뮤턴트 측에서 볼 때 사비에르 교수가 온건파에 속한다면 매그니토는 강경파에 자리한다. 인류의 경우, 윌리엄 스트라이커가 강경파를 대표한다. 이들은 복잡하게 얽히며 과연 인류와 뮤턴트와의 공존은 가능한지, 그렇다면 그 방식은 어떤 식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엑스맨의 플롯은 그래서 정치적이다.
지금 소개하는 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비주얼에 치우친 나머지 갈등의 굴곡이 그다지 심하지는 않다. 다만 제임스 맥어보이와 마이클 파스벤더의 연기대결을 감상할 수 있다는 데에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끝으로 이 작품은 두 개의 문제의식을 던진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 돌을 힘껏 던져 파장을 일으켜도 강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아니면 현실의 벽 앞에 잠시 동안 길을 잃을 수 있지만 의식적인 노력과 투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