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기총에서 떨어져나간 한교연은 한국교회 분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올해 두 가지 쟁점에서 일치를 이뤘다. 그 하나는 지난 2월 말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명 반대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6월 마지막 주 있었던 퀴어 문화축제 반대집회였다. 그러나 모처럼의 일치는 수포로 돌아갔다.
연합예배 형식으로 치러진 퀴어 문화축제 반대집회는 당초 목표치의 1/5에 불과한 1만 명 동원에 그쳤다. 게다가 저지하려던 퀴어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기독교는 혐오종교라는 인상만 각인시켰다.
봉은사 역명 반대운동도 실패라고 지적할 만하다. 한기총과 한교연은 2월 말 봉은사 역명 반대와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만 해도 두 기관은 한 목소리를 내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한기총은 슬그머니 발을 뺐고, 한교연만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며 외롭게(?) 투쟁했다. 그럼에도 지하철 9호선 2단계구간(신논현~종합운동장)에서 봉은사 역명은 그대로 확정돼 개통됐다. 언론은 새로 개통된 9호선 구간의 교통 혼잡에만 신경 썼을 뿐, 한교연에겐 무관심했다.
법원은 여기에 단단히 대못을 박았다. 법원은 7월5일(일) 한교연이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봉은사역명 사용중지 가처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1부는 한교연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서울특별시장은 행정청이기 때문에 민사소송법상 당사자능력이 없다”며 부적법한 소송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원 판단 대로라면 한교연은 적절한 법적 검토 없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셈이다.
분명 교회 일치는 교회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다. 더구나 지금 같이 개교회주의가 판치는 상황에서 교회 일치는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나 한기총-한교연의 교회일치는 분명 기독교적 가치보다 당장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공동전선이었다. 이런 공동전선이 소기의 성과를 냈다면 모르겠다. 공동전선의 명분이 됐던 퀴어 문화축제와 봉은사역명 모두에서 단단히 체면만 구겼다.
한기총과 한교연이 벌인 일련의 일들이 기독교계의 위상 추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