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목사 ⓒ베리타스 DB |
출애굽의 중심에는 모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성경은 출애굽을 ‘모세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소명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출애굽은 모세의 자각과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신 하나님에 의해 이뤄졌다는 게 핵심입니다. 물론 모세는 미래의 지도자로서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불타는 열정은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좌절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두려움을 피해 도피자가 됩니다. 피신지 미디안 광야에서 그곳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안정된 삶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의 밑바닥에 잠복된 불안은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뜻밖의 신비한 징조를 접하게 됩니다.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네가 선 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땅을 지칭하기도 하고,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가 그만큼 신성한 일임을 강조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재로 여기는 땅이 실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땅임을 모세가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타지 않는 떨기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를 보내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모세는 비로소 하나님께 의지하여 일어섭니다. 이전에 ‘내가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돌아온 것은 좌절과 두려움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것 같은 땅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입니다.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 역시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려운 질곡의 시대였습니다. 잠시 후면 요한 자신이 처형당하게 될 살벌한 시대입니다. 그럴 때 세례 요한은 예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요 3:31)고 증언합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는 그가 하는 말이 하늘의 말인지 땅의 말인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언표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세례 요한은 땅의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의 소리를 두려워한 사람입니다. 시대가 어둡고, 내 삶이 비참하다 해서 하나님께서 ‘부재중’이신 게 아닙니다. 땅의 소리에 겁에 질려 있으면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땅의 소리가 아닌 하늘의 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신 분들”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시에 짐승 같은 자들에게 육체는 걸레취급을 당했을지라도 영혼까지 쓰레기가 된 건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일 것입니다. 정치와 사회가 도덕적으로 미성숙하고, 인간의 심성이 거칠어지면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위로는커녕 모욕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과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도덕적으로 매도하는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집권세력과 굴지의 언론들까지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외면하는 걸 보면 우리 정치와 사회가 그만큼 미개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게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3-16)고 말씀하신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 권력은 치졸하고, 종교는 썩고 냄새나고 추하고, 언론은 돈밖에 모르기에,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실 것 같지 않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글은 공동체성서연구원(원장 김영운 목사)의 월간지 『햇순』 제232호(2015년 6월호)에 실렸으며, 저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