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김재준 목사 |
서 교수는 장공이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미국의 신학과 어떻게 연대했는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에 의하면 장공은 “20세기 미국의 주요 신학을 모두 목격했으며 그 내용을 소개하고 가르쳤다. 자유주의 신학, 보수 정통주의 신학, 다양한 신정통주의 신학, 그리고 흑인신학까지 비판적이고 자유롭게 분석하고 그 장점을 수용했다.”
장공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의 보수주의 정통신학이었는데, 이는 장공이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유학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장공은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 당시 보수주의 신학에 함몰돼있던 한국신학에 새로운 물줄기를 텄다. 서 교수는 “당시 한국의 미국선교사들은 보수주의 신학만이 유일한 신학이라고 가르쳤으며, 이에 따라 한국장로교는 신앙적 포로상태에 있었다고 장공은 보았다”고 말했다.
비판의 날을 세웠던 장공은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매몰찬 공격을 받았으나, 평생을 두고 보수·근본주의 신학에 맞섰다. “시간이 지나도 보수주의 신학이 가장 왕성하게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극단적인 보수주의 신학은 복음을 ‘율법화’하고 인간을 ‘물건화’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장공은 자신의 신학세계를 글로 써서 출판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던 반면, 서구 학문을 국내에 유입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신학이라는 학문이 한국에 자리 잡기 전, 그는 한국 교회와 역사의 현장 속에 서구학문의 다양한 조류를 소개시키는 일을 자신의 역할로 선택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실제 장공은 20여 권의 번역서를 출간, 헬무트 리처드 니버, 조지아 하크니스, 찰스 어드맨 등을 국내에 소개했다.
그 중 헬무트 리처드 니버로부터는 많은 학문적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서 교수는 “만약 신학적 관심이나 개인적 인격에서 장공과 비교할만한 인물을 미국 신학계에서 찾으라면 니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두 사람 모두 윤리의 문제를 신학의 한 부분으로만 취급하려는 경향을 반대했으며, 모국의 기독교를 주요주제로 다뤘다. 또 교회연합운동과 W.C.C도 그들이 활동하는 장이었다”고 유사성을 읽어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장공은 한국교회가 ‘신학적 고립’에서 벗어나 세계와 연대하기를 꿈꾸었다. 또한 한국신학이 세계신학과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바랐다”고 장공의 열린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또 “장공은 세계, 역사, 자유와 같은 개념에 대해 (미국의 신학과) 연대성을 추구했다. 이는 장공의 신학을 연구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국신학의 지속적인 과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