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전쟁을 겪은 세대다. 이분들이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지 않은 건 큰 잘못이다. 그래서 사죄하러 왔다."
19일(수) 정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아래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인 엔도 토오루(遠藤 徹)씨의 말이다.
일본 항구도시 요코하마에 거주하는 엔도 씨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시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소녀상이 없어지기 전에 속히 사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에 엔도 씨는 이날 수요시위에 참여해 사죄문을 읽은 다음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엔도 씨는 집회 시작 전에도 두 할머니를 만나 무릎 꿇고 참회의 뜻을 전했다. 엔도 씨를 맞이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어로 "일본 국민들은 죄가 없다. 잘못은 아베에게 있다"며 를 달랬다. 이에 대해 엔도 씨는 "나도 일본 국민이기에 책임이 있다"며 거듭 사죄했다.
우리 나이로 79세인 엔도 씨는 야마구치 대학에서 30년간 철학을 가르쳤다. 또 일본 성공회 요코하마 교구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는 수요집회 전 기자와 만나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아가페를 많이 연구해왔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랑은 존중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과거 일본과 지금의 나를 분리하지 않고 일본이 지난 날 저지른 죄를 내 죄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약한 인간일 뿐이다. 8, 90년 전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엔도 씨는 수요집회 참석 이후 제암리 학살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 감리교회로 이동해 다시 한 번 일본의 전쟁범죄를 사죄했다.
아래는 엔도 씨가 낸 사죄문 전문이다. 사죄문은 대한성공회 유시경 신부가 번역해 전달했다.
사죄문]
저는 일본인입니다.
일본이 과거에 한국(정확히는 조선국)의 여러분들께 셀 수 없을 잘못을 저지른 것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여, 일본인의 한사람으로 그것을 사죄하러 왔습니다.
첫째, 여러분의 나라를 우리나라(일본)의 ‘식민지'로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깊은 굴욕을 느껴왔을 것일지요.
또한 무수한 조선국의 사람들을 일본에 데리고 와서, 악질적인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제한 것에 대해서 통한의 마음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많은 분들이 모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그 분들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말을 잃고 신음하게 됩니다.
더욱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신 분들에 대해서 흐느껴 슬퍼하며 손을 모두어 사과를 드립니다. 일본인이 여성들을 지옥으로 몰아낸 이 극악무도한 행위를 생각할 때, 저는 몸이 떨립니다. 작년 12월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가 성립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도록 요구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은 다시 한 번 일본 정부가 위안부 분(할머니)들에게 진실로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느낍니다.
사실 한국의 위안부 지원 재단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죄 편지를 쓰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베 총리는 10월3일 국회 회의 중에 "우리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동상)'은 일본이 철거를 요구할 성격의 사안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정말 진심으로 손을 모아 사과했을 때, 그에 대해 위안부 분들로부터 그 성의를 받아들여 철거하다고 해야 순리에 맞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일본 국민 중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제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저는,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인 이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최소한 일본 국민이 과거에 행한 무수한 폭력과 잔학에 대해, 한 사람의 일본 국민으로서, 양심에 이끌려 이 곳 한국을 찾아뵙고,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난을 조금이라도 더 제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면서, 또 일본 국민의 죄책을 제 자신의 것으로 하며,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서 손을 모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정말,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2016년 10월 19일
엔도 토오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