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죽기로 결심하니, 삶의 욕망은 더 커지더라

<리뷰>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인생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죽기로 결심하니, 삶의 욕망은 더 커진다. 4월 19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은 바로 이 아이러니를 말한다.

실패한 사업가, 이제는 찾아주는 곳 없는 퇴역군인, 매 맞는 아내, 한물간 연예인, ‘나쁜 피’를 수혈 받아 졸지에 나락에 몰린 저널리스트 등 실패한 인생의 주인공 10명은 ‘이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죽음 뿐이다’는 뜻으로 뭉쳐 백두산으로 자살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만만해 보였던 죽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두산 낭떠러지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누군가 불안을 못 이겨 급정지 버튼을 누른 것. 사람들의 원망과 질책이 쏟아지는데, 관객들은 그 속에서 ‘안도’를 애써 숨기려 하는 표정도 발견하게 된다. 어쩌다 다시 삶으로 내던져진 사람들. 그러나 다시 찾은 삶 속에는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쁨도, 사랑도 있었다.

집단자살을 하루 연기하고 하룻 밤을 함께 보내게 된 이들은 함께 먹고, 대화하고, 노래하는 가운데 끈끈한 연대감을 느끼고, 왠지 다시 죽기는 싫을 만큼의 기쁨과 사랑도 느낀다. 이런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하루만 더 연기하자’고 제안하고 만장일치로 집단자살은 하루 더 연기된다.

버스는 이제 중국의 장각으로 향한다. 세상에서 아름답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곳에서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전날보다 더한 삶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터치하듯 자신들의 삶을 터치하는 태양빛을 만끽하는가 하면, 길고 긴 역사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성인들이 드나들었을 실크로드의 길목에서 ‘죽음이란, 누군가의 길을 밝혀주었던 아름다운 여정의 끝’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삶의 한 가운데서 죽음을 고대하고, 죽음의 한 가운데서 삶을 고대하게 되는 아이러니다.

죽음도 불사했는데 이제 두려울 것 없는 이들은 이제, 삶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죽음을 함께 했던 소중한 동지들과 함께 거침 없이 나아간다.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은 33곡의 뮤지컬 넘버를 통해 주인공들의 속 깊은 얘기를 풀어놓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절망에 공감하다가, 점차 희망에 물들어간다. 클라이맥스도 적당하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코믹 캐릭터들은 넘치는 엔도르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죽을 각오로 하면 뭔들 못하겠냐’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는 데 이 극의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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