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지난 해 12월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광장과 서울시청 광장 일대에서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바로 건너편에서는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려 했다. 이때 경찰은 충돌을 막고자 경찰버스와 병력을 집회가 열리는 태평로 일대에 배치했다. 그러나 ‘촛불시민'과 ‘태극기' 사이에 사소한 충돌은 곳곳에서 불거졌다. 이 와중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촛불시민 앞으로 달려가 "한국전쟁을 겪어 본 적 없는 젊은 사람들이 뭘 아냐?"고 소리를 쳤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발발했다. 전쟁을 겪으려면 적어도 1950년 훨씬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결국 "한국전쟁을 안겪어본 너희들이 뭘아냐"식으로 소리를 질렀던 50대 여성 스스로 전쟁을 겪지 못한 셈이다.
# 장면 2
2월의 둘째 주말이었던 11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청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광장에서는 박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가, 맞은편 광화문 광장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탄핵인용을 촉구하는 제1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나란히 열렸다. 탄핵반대 집회에서 흥미로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참가자가 '종북좌파 인명진 OUT'이란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연신 태극기를 흔든 것이다.
기자는 손팻말을 든 참가자에게 다가가 "인명진이란 사람은 갈릴리 교회 원로목사이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데 왜 종북좌파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참가자는 황급히 손팻말을 숨겼다. 그리곤 "바닥이 차가와 깔고 앉으려고 가져왔다"고 답했다. 질문을 더 하고자 했으나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해 더 물을 수는 없었다.
집회에선 진정성 의심케 하는 장면 속출
집회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리고 갖가지 구호가 적힌 팻말이나 현수막은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다. 그래서 집회를 준비하거나,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집회를 앞두고 효과적인 구호를 만들어내고자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이 들고 있는 손팻말에 무슨 구호가 적혔는지, 그리고 적힌 구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 집회 참여의도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다른 언론들도 동일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자주 등장하는 구호 중 하나가 바로 계엄령이다. 그런데 정작 참가자들은 계엄령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나 보다. 이와 관련, CBS는 11일자 보도에서 참가자들에게 계엄령의 뜻에 대해 묻자 "계엄령이 뭐냐고? 대통령 무너뜨린 좌파들 다 잡아들이는 거지!", "계엄령이 아니라 북진(北進)" 등의 답변이 나왔다고 전했다. 심지어 "나라에 폭동이 일어났을 때 계엄령을 떨어뜨려 군대에서 진압한다"며 "그래서 나라를 안전하게,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좋은 것이다. 지금은 계엄령이 답"이라는 답변까지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지지세력에 기대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정규재TV>와의 인터뷰를 통해 "(탄핵 반대 집회에) 촛불시위의 두 배도 넘는 정도로 열성을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생도 무릅쓰고 나오신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어떤 경로로 관련 정보를 접하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집회 성격이나 참여자들의 성격을 감안해 보면, 박 대통령이 민심을 수용하는 경로가 왜곡돼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탄핵반대 집회에서 나오는 주장들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박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근거는 없고, 실제로 이 나라를 움직이는 비선실세들은 ‘종북좌파'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박 대통령 역시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논리를 되풀이했다.
그러나 정작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이들은 ‘계엄령 선포' 혹은 ‘종북좌파 인명진 OUT'이란 구호가 적힌 손팻말과 태극기를 흔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줄곧 지지세력 결집을 노려왔다. 서슴없이 거짓을 말하는 반면, 자신이 외치는 구호조차 이해못하는 지지자들에게 기대 세 결집을 꾀하는 박 대통령이 이젠 처연하게 보일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