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본지 자문위원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9월 [수유너머R]에서 진행한 요한복음 강해 여섯 번째 원고입니다. 해당글에서 김 교수는 요한복음 8장을 중심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된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가 주는 진리의 자유를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조망하였습니다 . 본 글은 김경재 교수의 숨밭 아카이브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주
오늘의 주제: 생명의 빛과 진리의 자유
-요한복음 8장을 중심으로-
[1] 태양 빛 경험을 은유로 하는 요한복음서의 '생명의 빛'에 관한 증언 (요8:12-20)
① 종교는 상징체계: 종교적 언어는 본질적으로 항상 상징적일 수 밖에 없다. 감각적, 실증적, 사실서술적 언어만을 고집한다면 종교담론은 '침묵'이 있을 뿐이다. 요한 복음 8:12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한 마디 말을 예로 들더라도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넌센스가 된다. 경전의 항구적 진리성을 담보하려는 조급한 동기 때문에 '성경문자주의 신앙'이 득세하지만, 역설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차단하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② 자연의 빛과 어둠의 대비: 인류문명의 인문, 사회학은 물론이고 사고방식과 가치판단에서 인류가 경험한 태양-지구의 공전과 자전현상으로 발생한 <밤-낮 / 어둠-밝음>의 원초적 체험은 선악 개념, 음양이원론, 이성과 비이성, 의식과 무의식, 하나님과 사탄 등 온갖 형태의 이원론적 사고의 단초를 제공했다.
서구문명은 주류를 차지한 <로고스-이성-언어-존재> 등이 강조되는 문명을 가치론적으로 더 선호하는 경향을 낳았다. 그러나, 서구사상사에서 비주류적 흐름도 있다. <신비주의전통- 디오니소스적 전통- 무의식 심리학 전통- 혼돈과 카오스 이론>등이 그렇다. 동아시아 사상 속에서는 특히 <無의 철학, 空의 철학, 玄妙之道>를 강조했다.
③ 물리적 빛이 아닌 정신과 영성의 빛: 그리스도교는 태양빛과 다른 초자연적 빛의 실재를 말한다. 그 빛은 정신의 빛, 진리의 빛,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는 빛이라고 본다. 신비체험자들에 의하면, <임사체험> 직후엔 망자는 '빛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흔히 천국이라고 말하는 초월적 차원의 세계엔 <태양과 달과 별들>이 쏟아내는 빛과는 질적으로 다른 빛으로 충만한 세계이다. 그 빛은 맑음, 명료성, 자유로움, 기쁨과 충만감을 준다. 이러한 빛은 지상에서 삶을 누리는 사람에게 해방감, 자유로움, 보다 생명긍정의 윤리의식과 이타적 삶을 살도록 에너지를 부여한다. 다음 성경구절은 태양빛과 다른 <존재의 빛>을 지시하는 성경구절들이다.
@ 마태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같이 희어졌더라
@. 루가11:36,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 행전9:3,사울이 다메섹에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이는지라
@ 계시록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④ 『그리스도인의 자유』:루터는 이 빛을 받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크리스쳔의 역설적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에게나 예속되지 않는 절대 자유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에게나 예속된 섬기는 자유 봉사인이다.
⑤ 예수의 자기주장: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 이 예수의 말씀은 곧 요한공동체의 신앙고백이요 증언이기도 했다.
[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6, 54-59)
◈ 요8:31-32, 너희가 내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케하리라.
① 모든 고등종교의 구경의 목표 혹은 마지막 결실은 自由人, 無涯人, 超脫한 神仙이 된다는데 있다. 불교에서 해탈이란 온갖 속박과 편견에서 자유롭게되는 '걸림이 없는 삶'을 살게되는데 있다. '그물에 갈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는 삶'이 "성불하세요!"라는 발원의 목표이다. 고다마 싣달타는 入寂時에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자기 속에 있는 다르마(법)을 의지하고 등불삼사 정진하여 깨달음에 이르라!"고 권고했다.
② 기독교는 "예수안에 거하면(예수의 말씀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자유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의 화육체로서 진리, 말씀, 다르마, 로고스를 의미한다.
③ 이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그 자신 안에 있는 <불성, 로고스의 씨앗, 하나님의 형상, 本然之性>에 충실하여 일치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구원, 해탈'에 이른다.
문제는 '克己復禮" 할 것을 평생 가르친 공자와 같은 성인의 경험적 고백에 의하면 70세에 이르러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불교선승들은 해탈을 위해 30-40년을 명상수행한다. 예수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요8:34)라고 했다. "죄를 범하는 사람마다"라는 말은 인간실존적 삶이 <비본래적 상태에 머무는 한> 그 상태가 죄라는 것이다.
④ 그리스도교 종교의 특징이기도 하고 요한복음의 증언적 주장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에서 해탈은 명상수행과 극기복례가 중요한 수행방법임을 인정하지만, 진리자체를 향하여 맘의 문을 열고 받아드리라는 권고의 종교이다. 태양빛이 비취면 빙하가 녹고 처마끝 고드름이 자연히 녹듯이 인간의 죄적 상태(비본래적 상태)도 그와 같이 변화된다고 말한다.
⑤ 죄가 무엇인가? 도덕적 범죄이기 전에, 인간 실존이 '진리자체인 태양'을 등지고 서서, 스스로 자기주장을 펴며, 스스로 생명동산에서 주인노릇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죄의 본질이 된다. 예수교는 인간 맘 속에 하나님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인류 종교사는, 기독교 역사까지도 '거짓 하나님, 우상'을 섬기라고 욱박질러 도리혀 인간을 비인간화시켜온 범죄역사가 있다. "종교는 가장 무서운 우상제작소가 될 위험이 항상 있고, 인간을 종교독에 감염시켜 비인간화 시켜버리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⑥ 유대인들과 예수의 논쟁 중에 예수는 놀라운 폭탄 발언을 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가? 보수적 교리주의자 해석은 <예수의 신성주장, 로고스 화신체로서 뭇 피조물보다 앞서계신 로고스 기독론>주장으로 해석한다. 너무 교리적 접근법이다. 복음서는 예수가 육신의 혈연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 있기 전부터 있었다고 말하는가? 생물학적 존재서열과 순차를 말함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일치된 삶을 살았던 예수는 믿는다: <참 생명은 시공간 제약을 넘는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라는 분만 그럴까? 원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