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20세기의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한 세기를 살고 떠나다

미디어 친화형 목회자, 개인구원만 설파한 점은 한계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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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 재단)
20세기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이 21일(현지시간) 타계했다.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 재단'은 추모 홈페이지를 따로 개설해 그를 추모하고 있다.

"위대한 빌리 그레이엄이 세상을 떠났다.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스도교인들과 모든 종교인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영면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게 남긴 추모 메시지다. 평소 거침없는 언사를 자주 구사했던 트럼프였지만, 빌리 그레이엄에게는 무척 깍듯한 표현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더구나 '위대한(GREAT)'은 모두 대문자로 적었다. 빌리 그레이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빌리 그레이엄(1918~2018)은 그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부흥집회 인도자라 할 것이다. 그는 대중 앞에 서서 교파를 초월한 복음을 설파했고, 대중들은 그의 설교에 열광했다. 그의 설교는 48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185개국에 위성 중계됐다. 무엇보다 그는 신문·라디오 등 대중매체를 이용할 줄 알았다. 1943년 휘튼 컬리지에서 인류학 학위를 취득한 뒤 시카고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설교하면서 대중매체와 친숙해졌다.

언론 재벌 윌리엄 허스트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1949년 로스 앤젤리스에서 3주 동안 부흥집회를 인도했었는데, 허스트 소유의 <허스트 프레스>는 이 집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신문은 그를 "미국의 선풍적인 청년 복음주의자"라고 치켜세웠다.

그런데 허스트가 주목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21일자 보도를 통해 "노회한 언론 재벌 허스트의 관심을 끈 건 그레이엄의 강력한 반공주의 설교"라고 적었다. 허스트의 지원에 힘입어 그레이엄은 전세계적인 부흥사로 도약했다. 그레이엄 스스로도 "허스트 프레스는 내게 엄청난 평판을 가져다줬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과도 자주 엮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그와 친분을 맺고자 남다른 공을 들였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와 빈번하게 접촉했다. 1991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습을 단행하기 직전,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 들이는가 하면, 후임인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취임식 때 그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이어 1994년 고 닉슨 대통령 장례식 때엔 성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남북 모두를 방문했던 그레이엄

한국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그리고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찾아 집회를 열었다. 특히 1973년 그의 부흥집회가 열렸던 여의도 광장엔 110만 명이 몰려들어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어 1992년엔 서방세계 목회자로선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그의 북한 방문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지만, 그는 "외교관이나 정치인 자격으로 북한에 간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 간 것"이라고 일축했다. 고 김 주석은 그를 융숭히 대접했고, 그는 김 주석에게 성서와 자신의 저서를 선물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과 별개로, 그가 설파한 복음이 바람직한 영향을 끼쳤는지의 여부는 논란이 분분하다. 매튜 서튼 워싱턴 주립대 교수는 21일자 <가디언>지 기고문을 통해 "잘못된 역사편에 섰다"는 평가를 내렸다. 서튼 교수는 빌리 그레이엄이 오로지 개인구원만 강조했고, 시민운동에 대해선 반지성주의에 가까웠다고 혹평했다. 서튼은 이렇게 적었다.

"지난 60년 동안 그레이엄은 미국인들에게 인종차별 문제나 다른 중요한 사회적 논란을 다룰 때 연방정부가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할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설파했다. 그가 평등주의를 신봉하기는 했지만, 그의 신학적 관점은 현재 우리가 아는 지식, 즉 정부가 인종평등을 실현할 가장 최상의 수단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략) 그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사회적 불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가 권력의 확장은 반기독교주의가 득세할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복음주의를 일컬어 "대규모가 아닌 개인적 복음주의의 대량화"라고 말하곤 했었다. 대규모 군중을 몰고다녔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개인의 회심을 중요시했다는 의미다. 시민불복종 운동 등 활발히 사회운동을 벌인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딱 한 세기를 살다 갔다.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한국 개신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더구나 빌리 그레이엄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개인 구원 반공주의를 강조하는 설교가 특히 그렇다. 이제 빌리 그레이엄은 떠났다. 한국 개신교가 고민해야할 지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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