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헌재)가 28일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 헌재 결정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법원이 병역법 조항(제88조 제1항, 제5조 제1항 등)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을 낸데 따른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허용은 오랜 기간 논란거리였다. 특히 집총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대체복무제 허용을 촉구해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현황은 무척 심각하다. 국방부가 지난 2016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에게 건넨 ‘입영 및 집총거부자 현황' 자료를 보자. 이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총 3,735명이었고, 이 가운데 98%인 3,709명이 종교적 이유(여호와의 증인)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곧장 감옥으로 향해야 했다. 2016년 8월31일 기준 재판에 회부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3,053명이며, 재판 계류 중인 535명을 제외하고 형확정자는 2,518명에 이른다.
양심적 병역거부, 기독교는 수용불가?
이번 헌재 결정은 개신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는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시 해왔다. 이런 이유로 보수 개신교계는 여호와의 증인이 중심이 돼 제기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허용에 대해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곤 했다.
보수 개신교단의 입을 자처하는 한국교회언론회(언론회)가 대표적이다. 언론회는 28일 헌재 판결 직후 낸 논평에서 "특히 대부분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 것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여기에 ‘양심'을 끼워 넣은 것은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사 왔다"는 입장을 냈다.
다소 악의적으로 보이는 이 같은 주장의 진위를 일일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언론회는 박근혜 전 정권을 비호하는가 하면, 제주에 온 예멘 난민에게 테러리스트 이미지를 입힌 집단이니 말이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 전반에 언론회와 같은 정서가 팽배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 개신교계의 편견 가득한 시선과 별개로 이번 헌재 판단은 고무적이다. 그간 국방부는 △ 불안정한 안보상황 △ 여론조사 결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가 대다수인 점 △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가 특정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기 때문에 타 종교와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대체복무제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남북 정상은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시했던 북한과 미국 정상이 12일 역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힘입어 모처럼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남북은 이런 분위기를 이어나가 궁극적으로 남북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게 현 시점에서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을 징집해 북쪽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하는 건 적절치 않다.(이는 북한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헌재 결정 직후 국방부는 "최단 시간 내에 정책(대체복무제)을 확정하겠다"고 했다. 국방부의 발빠른 입장 표명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다만 대체복무제가 병역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치밀하게 제도를 구축해 주기 바란다.
개신교에게 바란다. 개신교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그간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계는 보수정파와 한 몸 처럼 움직이며 남북 대결논리를 설파해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사자들이 어린 양과 함께 뛰어노는 나라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메시지는 굉장한 평화의 메시지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뛰어 넘어, 강자와 약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나라 건설에 기독교인이 앞장서야 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더구나 지금은 한반도에 화해의 기운이 충만하다. 이런 흐름을 거스른다면 보수 개신교는 머지 않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미 개신교의 입지는 현저하게 줄고 있다. 보수 개신교의 표를 의식해 충남인권조례폐지안을 관철시켰던 보수 자유한국당 소속 충남도의원들 대부분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제 개신교는 달라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언론회 등 보수 개신교계 단체들은 자신부터 먼저 돌아보기 바란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집권 당시 정권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재 영어의 몸이 돼 법정을 들락거리는 상황이다.
적어도 이쯤되면 한기총, 한교연, 언론회 등은 지난 과거를 반성해야 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이들은 반성은 커녕 시대에 역행하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이번 헌재의 대체복무제에 대한 언론회의 논평은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길을 잃고 해매고 있는 보수 개신교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재차 촉구한다. 개신교는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신교계는 이번 헌재 결정이 현 한반도의 시대적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신앙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개신교가 보수 정권의 나팔수 역할과 과감히 결별하고 예수 그리스도 본연의 가르침인 '평화'의 복음을 제대로 실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