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정의롭게 성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정의를 소망했던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은 그의 서거 후 나타난 추모 열풍에서 확인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택한 죽음의 방법 때문인지 보수적 신앙을 견지한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 보다는 “자살은 죄”라는 단순 논리를 앞세워 그의 죽음을 폄하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 물결이 수백만명을 이루고 있는 이 때 자칫 고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유족들을 두번 죽일 수 있는 폄하 발언으로 기독교 이미지가 실추될까 두려운 나머지 기독교 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회 갱신협의체인 바른교회아카데미(원장 김동호)는 지난 30일 회원교회 목회자들 및 신학자들이 보내온 단상(斷想)들을 공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는 “기독교인이자 한 시민으로 시련과 좌절 속에서도 뜻한바를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며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나타내기도 하였지만 평생을 약자의 편에 서서 살고자 했던 그의 삶은 기독교인인 우리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 중 누구도 사자(死者)에 대해 정죄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며 “그 어느 누구의 삶도 값없는 삶이 없고, 그 어느 누구의 죽음도 가벼이 여겨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사람의 생명도 가벼이 보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황영익 목사(서울남교회)는 “개신교권 지도자들의 적절치 못한 발언들이 극도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는 초상 중 대단한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또 “이번 국민장 기간 중에는 초상집에 악담하듯 하는 자살논쟁은 좀 삼가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모습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결과 긴장, 세대간 갈등, 정치적 갈등의 골이 깊어질 조짐을 우려하며 우리가 평화의 일꾼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승화시켜야 하겠다”고 했다.
김승호 교수(영남신학대 기독교윤리학)는 “지금은 교회가 고인의 자살에 대한 부정적 가치 판단을 내릴 때라기보다는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려는 마음이 더욱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을 떠나 보낸 유가족에게 ‘자살은 곧 죄’라는 도식의 잣대를 곧바로 들이대는 것은 유가족과 그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주한 교수(한신대 역사신학)는 한국교회의 정치적 후진성을 지적했다. 그는 “교계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노골적으로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며 “그 결과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개신교계가 큰 역할을 하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기독교계의 이와 같은 행태들은 하나님의 선교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