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신작 <앤트맨과 와스프>가 15일 오전8시 기준 누적 관객수 4,104,181명을 기록해 개봉 12일 만에 40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 초 개봉했던 <블랙펜서>(개봉 12일째 449만 명)와 비슷한 추세다.
영화는 나무랄데 없이 재밌다. 앞서 개봉한 <어벤져스 3 - 인피니티 워>와 비교해도 그렇다. <어벤져스3>의 결말은 실로 허망했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랬다. <어벤져스4> 예고편을 위해 무려 2시간 40분의 상영시간을 들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앤트맨과 와스프>는 이 같은 허망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나오는 첫 번째 쿠키 영상은 보는 이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첫 번째 쿠키영상만 보면 2019년 개봉 예고된 <어벤져스4>에서 앤트맨이 맹활약할 것 같다.
잠깐 줄거리를 살펴보자. '앤트맨' 스캇 랭(폴 러드)은 가택연금된 상태로 일상을 보낸다. 독일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도왔다는 이유에서다. 더 자세한 이유를 알려면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속 상황을 참고하면 된다.
미 연방수사국(FBI) 우 요원(랜달 박)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면 곧장 랭의 집으로 향한다. 그의 전처 매기는 전 남편을 괴롭히는 FBI를 향해 비아냥조로 항의한다.
"당신들의 임무는 영원토록 개인을 괴롭히는 건가요?"
* 원래 대사는 'Forever Bothering Individual'인데 세 낱말의 첫 알파벳을 모으면 '연방수사국'을 뜻하는 'FBI'가 된다.
이런 비아냥에도 아랑곳없이 FBI는 감시망을 늦추지 않는다. FBI는 또 앤트맨 수트 개발자인 행크 핌 박사(마이클 더글러스)와 딸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도 추적한다.
그런데 랭은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 문득 이상한 신호를 포착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스토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전편에서 랭은 양자 세계로 들어갔다가 극적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바로 이때 핌 박사의 아내이자 초대 와스프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이 그를 통해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이러자 어머니의 뒤를 이어 와스프로 활약 중인 호프 반 다인은 재닛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 와중에 고스트(해나 존 케이먼)가 끼어들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앤트맨·와스프의 케미, '업그레이드' 됐다
사실 이야기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주인공 스캇 랭은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대사를 내뱉는다. 전편에 이어 또다시 출연한 마이클 페냐 역시 마찬가지다. 핌 박사와 호프 반 다인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따라잡기 쉽지 않다. 아마 물리학도라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물리학에 문외한인 관객이라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의 활약상은 이 같은 지루함을 한 번에 날려준다. 앤트맨과 와스프가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모습은 통쾌하다. 각각 앤트맨과 와스프 역을 맡은 스캇 랭과 에반젤린 릴리의 케미는 전편에 비해 더욱 농익은 느낌이다. 마이클 페냐의 수다 연기도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우 요원 역을 맡은 한국계 미국인 랜달 박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랜달 박은 2014년 두 명의 미국인 방송기자가 미 중앙정보부(CIA)의 지령을 받고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을 암살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더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 역을 맡아 열연한 바 있었다. 그는 <앤트맨과 와스프>에서는 '앤트맨' 랭을 감시하는 우 요원으로 등장해 랭과 끈끈한 케미를 과시한다. 랜달 박의 출연은 <로건>, <스파이더맨 - 홈 커밍> 등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배우들을 주요 캐릭터에 배치하는 최근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심 포인트는 '첫 번째 쿠키 영상'
무엇보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어벤져스4>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앤트맨' 스캇 랭은 '어벤져스'와는 독립된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처음 등장하는 쿠키 영상은 <앤트맨과 와스프>가 <어벤져스4>로 가는 징검다리임을 강력히 암시한다. 수입사인 월트디즈니 컴퍼니는 <엔트맨과 와스프> 개봉 이전부터 이 점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다. 이 지점에서 <앤트맨과 와스프>는 <어벤져스3>의 결말에서 느낀 실망감을 상당 부분 달래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새삼 마블의 상업주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만든 20번째 작품이자 마블 10주년 기념작이다.
지난 10년 동안 MCU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을 내놓으며 전세계 영화시장에서 막대한 흥행수입을 거둬 들였다.
잇단 흥행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었을까? MCU는 신작을 내놓을 때, 전작을 미리 봐두어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한다. <아이언맨3>는 <어벤져스1> 이후를 다루고 있기에 <어벤져스1>편을 봐야 토니 스타크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쉽다. <토르 - 라그나로크> 역시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먼저 챙겨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헐크가 왜 계속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앤트맨과 와스프>도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어벤져스3 - 인피니티 워>를 먼저 챙겨봐야 이야기를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다.
더구나 마블은 한국 시장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그래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이언맨), 크리스 에반스(캡틴 아메리카), 베네딕트 컴버배치(닥터 스트레인지) 등 주요 배우들이 내한해 영화를 홍보했다. <앤트맨과 와스프>도 한국 시장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누비는데, 이들이 탄 자동차는 한국산이다.
이전에 내놓은 시리즈와 연결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마블의 능력은 새삼 놀랍다. 동시에 갈수록 진화하는 상업주의엔 피로감마저 든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앤트맨'과 '와스프'가 <어벤져스4>에서 돌아올 것인지 여부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