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재단 GRN 연구팀이 오는 10월 31일(수) 오후 5시 연세대학교 원두관(신학과) B113호에서 "정신건강과 종교: 조울증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2년전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정신건강과 종교"라는 주제로 열렸던 행사의 후속 행사 성격을 갖는다.
금년에 방한하는 미국 드류 대학교의 로버트 코링턴과 모라비안 대학의 레온 니모진스키 교수는 모두 조울증으로 치료받는 당사자들이면서, 또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이날 발표하는 논문들은 의사의 관점에서 환자를 설명하거나, 제삼자의 인문학적 관점으로 환자를 동정하거나 공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바로 환자 자신의 관점으로 철학적 안목을 통해, '조울증의 철학'(philosophy of manic-depression)을 전개한다는 점이 금년 행사의 방점이다.
로버트 코링턴 교수는 "Manic-Depressive Disorder and Potential Healing Practices"를 통해 한국대학생 중 18.6%가 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대학생 시절 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조울증 환자들이 어떤 종류의 치료적 도움을 구할 수 있는지를 상술해 나가고 있다.
그는 대학생 시절 발병했지만, 정확히 조울증으로 진단을 받은 것은 1994년 그의 나이 44세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이는 당대의 정신병리학적 진단이 조악한 것도 있었지만, 환자 자신이 이 병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야기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코링턴은 조울증이 어떤 병인지를 의학적 용어들로 설명해 나아가면서, 조울증같은 정신질환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가 약물 치료를 거절하거나 혹은 술과 같은 자가-치료수단에 의존한다는 것임을 지적한다. 그렇기에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와 함께 치유과정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의학적 치유만으로 치유과정이 완결되지는 않는다.
코링턴은 그의 자서전적 책 『바람의 말을 타고: 조울증의 철학』(2018)에서 철학적 공부가 조울증의 치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퍼어스의 기호학에 의존하여 전개하여 준다. 조울증 환자의 기호세계는 너무 많은 의미로 가득차거나 혹은 전혀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의미의 부재로 결핍을 겪거나 한다. 이 기호 해석의 문제는 결국 자아와 주체, 인생과 관계, 자연과 우주 등에 대한 해석적 문제를 동반한다. 철학은 기호들의 해석 문제에서 조울증 환자들을 진정한 치유적 해석학적 지평으로 예인해 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코링턴은 역설한다.
니모진스키 교수는 자연 과정 속에서 특별히 마음과 환경 간의 조율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정신질환자의 경우에 마음의 발생에 어떤 규범성이 가정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말하자면, 조울증은 의미있고 목적있는 과정인가 혹은 조울증 환자의 삶은 전체 우주과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담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인 정신적 질환의 삶의 조건을 "존재의 비애"(sorrow of being)라고 표현하면서, 이는 곧 존재와 삶에서 '무'(nothingess)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모든 의미를 무화시키는 무(無, nothingness)의 도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의미로 항거하고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니모진스키는 미국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인 퍼어스의 "창조적 사랑"을 인용하면서, 인간 기호 사용자의 삶 속에서는 생물학적 화학과정의 인과율을 초과하는 잉여의 발생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창조성의 진화가 일어나지만, 이는 전혀 무작위적인 과정이 아니라, 퍼어스의 관점에 따르면, (기독교적 의미의 신은 아니지만) 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창조성의 진화는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유기체의 삶은 생물학의 관점으로 유전자의 복제와 전달을 위한 부가적인 과정이지만, 그러나 유기체는 그 유전자로부터 추동되는 본능적 과정들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즉 생물학적 과정은 우리에게 성적 본능을 유전자의 목적에 부합하게 배선하였지만, 인간 유기체는 그것을 생물학적 본능을 뛰어넘는 사랑의 관계를 위한 소통수단으로 사용한다. 사랑이라는 거 따지고 보면 다 생물학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결국 다 유전자가 유기체에 배선한 마음의 기제를 우리는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물어야 할 물음은 왜 우리는 그런 착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일 것이다. 기의는 기표 밑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져 들어가기 때문에 의미란 결국 기표의 끊임없는 연쇄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감에 불과하다는 프랑스적 기호학 대신 기호는 언제나 대상을 가리키면서 또한 기호/대상 관계는 해석체를 통해서만 해석된다는 퍼어스의 기호학은 의미란 근거없이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은 기호/대상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주체의 몸짓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니모진스키는 '사랑'이 결국 삶의 궁극적 의미가 아니겠냐고 물으면서, 진화심리학적 해석을 사실과 진리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며, 의미의 차원을 경시하는 세대에게 묻는다. 조울증 환자의 삶은 진화론적 의미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결국 우리 시대 정신치료와 상담치료는 이 진화심리학적인 담론의 권력구조를 치유과정에서 암묵적으로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본 행사의 논평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정석환 교수가 맡는다. 상담치유의 전문가인 정석환 교수가 보기에 코링턴 교수의 자서전은 이야기적 치료의 차원을 담지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면서 치유를 전개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해석이다. 이렇게 상담치료와 철학은 조우할 수 있음을 정석환 교수는 암시한다. 정신과 치료와 상담치료 그리고 철학적 치유가 함께 한다면,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면서 새로운 치유의 지평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행사는 로버트 코링턴 교수의 자서전적 철학치유 이야기인 『바람의 말을 타고: 조울증의 철학 - 조울증과 전일성의 추구』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박지은 박사는 조울증의 치유는 결국 삶의 전일성의 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코링턴 교수의 결론을 반복하면서, 우리 시대 정신질환의 치유가 결여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철학적 해석의 지평임을 지적한다. 삶으로부터 도래하는 기호해석 도구의 부재, 그것이 우리시대 우울증과 불안의 근원적 원인이 아닐까?
한편 11월 1일 오후 5시 감신대 웨슬리 제1세미나실에서는 '현대철학과 기독교 신앙: 탈자적 자연주의의 관점에서'라는 주제로 코링턴 박사와 나모진스키 박사가 발표자로 나설 예정이며 논평자로는 장왕식 교수(감신대), 박일준 박사(감신대), 김성복 목사(꽃재교회) 등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