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57호에 실린 김상구 종교법인법추진연대 사무처장의 기고글이다. 김상구씨는 <예수평전>의 저자로 기독교 밖에서 기독교를 비평하는 비평가로 주목 받고 있다.
대중들은 일상을 벗어나고자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神話화하려 한다. 일반 사람에게서도 영웅성이 조금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대중은 마른 못에 물만난 물고기처럼 미칠 정도로 영웅 만들기에 몰입한다. 그들은 한번 영웅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벌거벗은 영웅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신들이 꿈꾸는 더 이상적인 영웅으로 꾸며간다. 급기야는 영웅의 실제는 사라지고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영웅으로 그들의 삶속에 현존하게 된다. 바로 영웅 신화 만들기다. 현대사회 스타 만들기도 이와 별 반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영웅 신화 만들기는 영웅이라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광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영웅에 대한 이러한 광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신화가 덧칠될 뿐 그 사실에 대해 더 이상의 의심이나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애초부터 조작된 영웅까지도 그 신화자체를 정당화시키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웅 속에서 숨겨진 자신의 욕망을 찾으며 영웅 신화에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영웅이 신화화되면 될수록 더 열광하게 된다. 일종의 사회적인 드라마다. 사실이라는 후광 속에 살고 있는 대중은 욕망과 광기의 긴 터널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신화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사실을 개관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역사다. 역사도 해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사실의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객관적 인식의 고백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미 역사가 아니다. 더구나 독재 권력의 정당화나 선교 목적 등 때문에 영웅을 조작하고 날조하였다면 단순한 영웅 만들기를 넘어서서 대중을 기만하는 혹세무민이 아닌가. 더욱이 자신의 죄과를 희석시키거나 은폐할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였다면 더욱 그렇다.
기독교의 근본 계율인 십계명은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가 우상숭배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영웅 만들기는 우상 만들기와 다름 아니다. 게다가 개신교의 영웅 만들기는 보편적 모럴이라는 면에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신사참배 거부의 영웅으로 주기철 목사의 순교를 자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신사참배의 당사자인 한경직 목사를 청빈의 대명사로 추앙한다. 항일투사의 대표로 유관순을 내세우며 개신교의 항일투쟁의 이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주류 교단인 장로교, 감리교의 대표적인 목사들인 박희도, 양주삼, 정인과 등은 친일부역 혐의로 매국노라는 족쇄를 채우기까지 한다.
이같이 한국 기독교 영웅 만들기에는 혹세무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호 모순적이고 인위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주기철 목사의 경우, 순교를 택한 신앙의 순결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독립운동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왜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김활란, 주요한 등은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인물들인데도, 개신교 찬송가 해설편에선 민족정신을 고취시킨 지도자로 선전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특히 유관순의 경우, 해방이전에는 전혀 무명 인사였지만, 친일의 혐의가 있는 박인덕과 전인택이 ‘순국소녀 유관순전’이란 전기를 통해 해방이후 새로운 영웅을 만들었다. 이후 유관순은 애국소녀이자 조선의 잔다르크, 독실한 기독교신자 등의 이미지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애국과 기독교, 나아가 순결과 죽음까지 동원하여 가장 이상적인 그리고 불멸의 영웅 신화를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유관순 영웅 신화는 애초부터 근거가 부족한 신화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유관순의 한자이름, 출생일, 순국일, 형량, 토막살해 여부 등이 그동안 알려진 사실과 많이 다르다. 그녀의 가족관계가 어느 정도 밝혀진 바에 의하면, 오빠 유우석의 이름, 병천 만세사건 당시 모친 이소자의 죽음 여부 등도 다르고, 부친 유중권과 오빠가 실제로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다. 더욱이 수형 기록부에 나타나 있는 170cm 정도의 거구에 쪽머리를 한 그리고 결혼을 한 듯한 여인이 과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청순하고 진취적이며 가녀린 개신교의 애국소녀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럽다. 필자가 보기에는 유관순은 개신교 친일전력자가 자신의 전력을 덮고 다른 한편으론 개신교 선교 전략의 일환으로 의도된 영웅 신화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사건일 가능성이 많다.
김상구(종교법인법추진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