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종교 배타주의를 극복하려는 비유 모델들

오강남 박사, '내 종교만 진리냐' 두번째 글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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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오강남 박사(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가 과거 캐나다 종교학회에 제출한 영어 논문 '종교 다원주의를 위한 몇 가지 유비적 모델'이란 제목의 소논문을 번역해 '내 종교만 진리냐'는 제목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재 중이다. 최근 게재한 두 번째 글에서는 종교적 배타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 다원주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유비적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오 박사에 따르면 종교다원주의에 가장 많이 쓰이는 비유 모델은 "길"이었다. 모든 주요 종교들은 모두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각이한 길들이라는 것으로, 비록 출발점과 과정을 다르지만 모두 산꼭대기에서 만나는 것이니 길이 다르다고 서로 다투지 말라는 뜻이라고 필자는 전한다.

오 박사는 "이 비유는 주로 힌두교 사상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대표적인 예로 힌두교 성자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4-1886)를 들었다. 그의 다음과 같은 주장도 인용했다. "신은 각이한 신도들이나 시대나 국가에 알맞게 여러 가지 종교를 마련해 주었다. 모든 교설들은 오로지 각기 다른 여러 가지 길일 뿐이다. 어느 한 가지 길 자체는 결코 신일 수 없다. 실로 누구든 어느 한 길을 마음을 다한 헌신으로 따르면 그는 신에 이를 수 있다. 아이싱을 입힌 케이크를 위에서 먹든 옆에서 먹든 다 같이 단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투지 말라. 그대가 그대 자신의 믿음과 의견에 확고하게 서있듯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들의 믿음과 의견에 서있을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오 박사는 그러나 "이 비유는 많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종교가 산꼭대기를 향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라며 "어떤 종교는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자기들의 종교적 목표로 삼고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종교는 오히려 강가나 바다가, 혹은 넓은 들을 달리거나 숲 속을 거닐며 즐기는 것이 자기들의 종교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 유명한 토마스 머튼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다른 방식을 존경하라는 근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자신의 종교만 진리라는 종교적 배타성을 벗어나게 해주는 두 번째 비유로는 '색깔'(Colors)이 제시됐다. 오 박사에 따르면 각 종교의 다른 색깔들이 "무색의 빛이라는 분화되지 않은 빛의 근원(one undiferentiated source of uncolored light)"에서 나온 각각 다른 색깔이라는 의미다.

오 박사는 "이것 역시 힌두 전통에서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근래에 와서 스위스 출신 사상가 프리조프 슈온(Frithjof Schuon, 1907-1998)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며 "슈온은 궁극실재로서의 분화되지 않은 무색의 빛이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인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로 분화되어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개별 종교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각각 다른 종교지만 각각의 색깔들은 "모든 형식, 모든 상징, 모든 종교, 모든 교설" 등의 바탕이 되는 무색의 '신비스러운 근원(numinous source)'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 한 모두 인류에게 공헌하는 것이라 본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슈온은 종교들을 현교적 종교(顯敎, exoteric religion)와 밀교적 종교(密敎, esoteric religion)로 구분하는데 각 종교들은 현교적 차원에서는 빨강, 초록, 노랑 등 모두 다 다르나 이런 다름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밀교적 차원에서는 여러 종교들이 다양한 색깔들처럼 무색의 빛의 근원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일치를 슈온은 "초월적 일치(transcendent unity)"라고 했다고도 전했다.

오 박사는 "종교들이 각각 다른 길이라는 비유와 각각 다른 색깔이라고 하는 비유는 이른바 종교적 평행주의(parallelism)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며 "각 종교는 제 갈길을 가거나 제 나름대로의 색깔을 띄고 있으니 남의 종교에 간여하지도 말고 개종시키려 하지도 말라는 것이다"라며 "오로지 더 좋은 그리스도인, 더 좋은 불교인, 더 좋은 힌두교인이 되라고 하는 셈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 박사는 "이 두 가지 비유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 비유들은 여러 가지 종교 전통들 간의 상호 영향이나 배움 같은 것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점이다"라고 그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모든 길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이런 길들 중 하나에 들어섰으면 그 길을 따라 갈 것이지 그 길에서 나와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이다."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종교의 깊이로 꿰뚫고 들어가야 함"을 강조한 신학자 폴 틸리히도 평행론자에 가깝다고 오 박사는 덧붙였다. 다만 틸리히가 순수한 평행론자라고 할 수 없는 이유로는 그가 "not conversion, but dialogue"이라며 개종은 반대했지만 대화를 중요시했던 점을 들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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