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직신학회가 30일 오후 8시 제5회 월례신학포럼을 개최했다. 포럼 형식은 온라인 줌을 활용했다. 박일준 박사(감신대)는 이날 '언택 시대의 감정의 신학: 기호자본주의와 정(情)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해 주목을 받았다.
박 박사는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지구적 팬데믹으로 번지면서, 언택트 사회가 도래했다는 말들이 회람된다"며 "대면으로 처리할 것들을 이제는 가급적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일이 잦아졌고, 만나서 대화로 풀어갈 일을 디지털 온라인 화상회의로 전환하고, 대학가의 수업은 이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바이러스로부터의 감염의 위험성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전염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문명은 기존의 디지털 기술을 위기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지구적 위험이 극복되고 난 후 이 소통의 디지털화는 더욱 더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전환에 따른 또 다른 위험성들을 미리 성찰하지 않는 한, 만남과 소통의 디지털화는 예기치 못한 다른 문제들을 양산해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두뇌의 뇌신경이 디지털 네트워크와 접속될 수 있는 것은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덕분이지만, 두 시스템의 처리속도와 역량 차이 때문에 야기되는 탈진과 무기력은 우울증과 무능감을 야기한다"며 "이 죽음으로 빠져드는 허무감을 이겨내기 위해 유기체는 분노와 폭력 그리고 차별과 혐오를 쏟아내며, 약육강식과 무한경쟁 그리고 승자독식의 논리를 반복한다. 그 근원에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양육환경이 야기하는 탈감각화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감수성(sensibility)과 감성(sensitivity)의 분극화를 말한다. 정보처리를 위한 감성은 그대로지만 타인들과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감수성의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이다. 이는 기호자본주의 시대 노동의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낸 네트워크 환경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공감과 연대는 인간의 사회적 감정의 차원으로서, 개인의 생물학적 원초적 감정들이 사회적 구조와 결합하여 감정의 교류를 이루어내는 것"이라며 "사회적 결속과 접촉이 접속으로 대치되면서 기본적으로 다른 존재와의 교감과 소통으로 의미를 창출하는 존재인 인간은 감정의 고갈을 겪게 되지만, 이는 개인적 감정의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의 소멸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또 박 박사는 "우리 시대는 기호자본주의 체제로 진화해 왔다고 말하여지는데, 기호자본주의란 '추상적 기호의 생산과 교환'을 통해 자본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며 "우리의 신경이 과도한 주의집중으로 무척 예민한 상태가 되는 기호자본주의적 환경 하에서 우리는 감정의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감정의 사회적 차원들이 붕괴하는 위험을 감지하게 된다. 특별히 기호자본주의적 언택 기반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정신건강의 붕괴는 도착적인 감정의 표현들로 표출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감정(emotion)은 유기체가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상황을 유지하고 제어하는 '항상성' 시스템의 중요한 일부이다. 이는 곧 감정이 유기체가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생명제어 과정에서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외부환경을 감지하는 감정이 내적으로 경험되는 느낌(feeling)으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의식이 동반되며, 의식은 내적인 느낌을 외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아의 의지와 의도를 드러낸다"고 했다.
특히 "우리의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이지만, 그러나 그 기제가 감수성(sensibility)과 감성(sensitivity)으로 분극화되어 분열되는 기호자본주의적 네트워크 환경은 곧 우리의 감정구조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로 인해 내적 경험으로서 느낌의 구성을 바꾸게 될 것이고, 동반되는 의식에도 큰 변화가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감정이 비록 모든 유기체에 보편적인 기초감정들(primary emotions)로 구성되긴 하지만 이것들이 사회적 차원에서 표현되고 공유되는 데는 감정의 사회적 패턴들이 당연히 형성된다"며 "기호자본주의가 우리의 신경에 과부하를 일으키고 개별적으로 탈진과 무기력 그리고 무능감을 야기하고 그에 따라 우울증이나 분노 혹은 폭력적 행위 등을 유발할 때 우리는 감정표현의 이 사회적 패턴들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한편으로 감정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과정들'이지만, 학습과 문화에 따라 표현에 개인차를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의미를 덧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기호자본주의가 야기한 정신건강의 붕괴를 감정의 사회적 치유로서 대처할 가능성을 감지한다"며 "말하자면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문화 네트워크를 변화에 맞게 조절함으로써, 집단의 정신건강을 돌볼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박 박사는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네트워크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몸이 '연장'(extend)되어 더 넓은 세계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남들을 가능케 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디지털 네트워크가 우리의 뇌신경과 직접 접속하여 자본주의적 구조를 이행하게 될 경우에 야기될 문제점들에 대한 경고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수도 없이 울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팬데믹은 새로운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진행되었던 변화들 중 이 비대면 상황에 적합한 기술들의 사회적 집단적 응용과 적응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뇌신경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접속은 그 많은 변화들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들 중 하나"라며 "기호자본주의적 노동질서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의 개인적 집단적 감정을 무너뜨려 불안정성으로 몰아갈 때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의 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박사는 그러나 서구의 감정 신학은 개인의 감정들을 개별적으로 주목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분석하며 이러한 서구의 감정 신학이 기호자본주의가 야기하는 집단적인 감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사회적 감정의 차원을 치유는 것은 곧 공감과 연대의 정서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회복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주는 연대의 감정을 'com/passion'으로 표현하는 이유"라며 "흥·한·무심의 풍류적 감수성으로 표현한 연구는 살벌한 경쟁의 삶을 '놀이'로 전환시켜 삶을 흥겹게 살아갈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아쉽게도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가장 공감하는 정서인 '정'(情)을 누락시키고 있다"고 했다.
박 박사는 "정의 감정은 기호자본주의의 언택트 네트워크 환경에서 가장 시급히 회복해야 할 무엇이고, '고통에 함께 하는 열정'으로서 성서적 사랑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라며 "개인과의 직접적인 혹은 대면 만남이 줄어들고,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만남과 일이 증가할 때, 우리의 생물학적 감성이 메마르리라는 예상되는 때, '정'(情)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대"라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