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혜암신학연구소가 발행하는 기관지 『신학과 교회』 제17호(2022년 여름)에 투고한 논문 「생태정의」를 통해 오늘날 생태재앙에 직면해 논란을 빚은 창조 기사의 '통치 명령' 속에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폭군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는 수렵과 채집 시대, 농경과 목축 시대를 거쳐 현대 서구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산업화 시대를 맞게 되는데 자연을 객체로 분리하고 이를 대상화하고 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것이 "창조 역사를 다룬 성경구절인 '땅을 정복하라'였다"고 그는 밝혔다.
'땅을 정복하라'는 개념이 이데올로기화 되어서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일삼는 폭군으로서의 인간상을 그리게 했고 나아가 인간 자기 자신을 신으로 자각하게 하는 인간의 신격화까지 야기했다는 설명도 보탰다.
몰트만 박사는 "장구한 세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결정해 온 '하나님의 형상-땅을 정복하라' 개념은 무신론 뒤에서 그의 신성을 숨기고 있는 현대인들의 '하나님 콤플렉스'로 유도했다"며 "나는 이것을 '인간 신론'이라고 일컫는다. 즉 현대인들은 '나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신이다'라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땅을 정복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발생한 결과물로서 몰트만 박사는 지구의 자연재해와 수천 종의 동물들의 멸종을 들며 "이 모든 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과 자연 생물들의 권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인간이 자초하여 만들어낸 것"이라며 "서구세계가 그것을 시작했고 현대세계가 전 세계적으로 그것을 떠맡아 인계했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자연을 주객 관계로 설정한 서구 근대세계의 사고방식에 맞서 몰트만 박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독립적이지 않고 오히려 서로 의존 관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하며 지구는 인간 없이도 운행되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는 살 수 없는 철저히 의존적인 존재임을 일깨웠다.
이 같은 맥락에서 몰트만 박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인식한다'는 언명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연의 상관관계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단지 인간에 대한 유용한 가치만을 평가하는 사람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예측가능한 세계는 단지 자연의 겉모습일 따름이다. 우리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알버트 슈바이처)를 통해서만이 자연의 내면을 인식한다. 그것은 효용성에 대한 강박 관념을 극복하고 사물 자체의 가치를 기뻐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과학은 '사물 자체'(임마누엘 칸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응용과학은 기술과 결합하여 사물의 유용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면서 몰트만 박사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이념으로 작동한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에 대해 "이것은 동물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폭군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며 "이것은 신학적으로 인간의 '통치'를 하나님의 통치로 향하게 한다"고 역설했다.
몰트만 박사는 바울이 로마서 8장 20절에서 전한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통치는 구원하시는 해방이다. 종국에는 '자유케 된 창조'가 일어서게 될 것이다"라며 "그리고 나서 인간의 '통치'가 바르게 제자리를 잡아갈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은 치유하고 온유한 사랑"이라며 "이것은 인간의 '통치'를 결코 폭력이 아니라 오히려 온유로 향하게 한다"며 "식물과 나무를 온유하게 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고 단지 인간에 대한 효용가치만을 계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온유함은 다른 생물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허용한다"며 "창조 공동체 안에서 온유함은 더 연약한 피조물들을 보호하며 기술적 사고 대신에 공감하는 이성을 만들어낸다"고 전했다. 이러한 온유함은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 안달이 나 있는 인간의 조급함의 정반대 편에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