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늙은 꽃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늙은 꽃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시인(1947- )은 늙음을 부정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세월에 따라 늙어가는 과정을 거부한다. 꽃에게서 받은 영감 때문이다. 꽃에 있어서 늙음은 시드는 상태일 터인데 시든 꽃이 지천임에도 늙은 꽃이 없다고 단정하므로 그녀는 꽃의 가장 꽃다운 때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 꽃이 시들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그 자연의 원리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가? 그렇지는 않다.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고 규정하는 것으로 보아 최절정의 상태를 포착하여 거기에 집중할 따름이다. 그 상태는 완성의 순간이므로 모든 흐름이 중지된다. 시간도 멈추고 공간도 멈춘다. 모든 열정이 쏟아부어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정수(精髓)는 말이 아니라 향기가 대변한다. 향기는 정수의 자기표현이다. 말은 정수를 분해하고 향기를 흩어버린다.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이 수사적인 반문은 분명히 그런 꽃이 없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선언은 그것이 "어느 땅에[서건]" 보편적인 사실임을 규정한다. 그 반문의 의미인 즉슨, 꽃이란 시든 상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꽃의 생애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꽃이 한순간에 피고 진다는 것이 아니라 "꽃의 생애"가 완성되는 지점에 시간이 멈춘다는 뜻이다. 가장 아름답게 피었을 때가 꽃의 생애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버린다." 모든 아름다움을 다 쏟아부었으므로 그 절정의 순간에는 시간이 멈출 만큼 그의 자존심도 빛난다.

그 자존심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 꽃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이다. 단순히 아름다움의 추상적인 의미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 혹은 무엇을 할 때 가장 아름다운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필 때 다 써버린다." 무엇을?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음]"을 다 써버린다. 그 앎을 모두 투여하여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므로 아름다움은 꽃의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이 아름다움이므로 이는 그의 자존심을 구성한다. 그래서 꽃은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종족으로서의 자존심대로 어디에서도 늙지 않는다.

그 자존심도 아름답다. 필 때 아름다움을 다 써서 그 존재의 의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생명의 모든 에너지가 투여되므로 사실상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 경계는 존재의 한계여서 그 존재의 모든 것이 투여된 후 그 존재다움이 드러나는 곳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때가 가장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기 때문에 그 존재답다. 존 키이츠(John Keats)가 "아름다움이 진리이며 진리가 아름답다"고 읊지 않았는가? 그 사실만 알면 된다고 그가 말했으니까 이것이 꽃들이 지키는 규칙이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시들 때를 염두에 두지 않는 듯 모든 아름다움을 만개하므로 진실로 황홀하다. 모든 꽃이 그러하다.

꽃은 필 때 모든 아름다움을 동원하기 때문에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다]." 꽃은 주름과 장수와는 상관없다. "꽃의 생애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절정이 꽃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확인한다. 그때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이는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말이 필요 없으므로 더욱 오묘할 따름이다. 황홀한 아름다움의 절정에는 시간이 멈추고 생각조차 멈춘다. 그 순간은 "분별 대신/ 향기"가 대변한다. 분별은 꽃의 아름다움을 분해하는 반면에, 향기는 그 절정의 순간을 후각화해서 온전히 전달한다. 향기는 황홀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절대 언어이다.

시인은 아마도 꽃밭에서 그 절대 언어를 들은 듯하다. 그 언어는 그녀가 늙어간다고 인식하는 순간 "필 때 다 써버[린]" 절정의 순간마저 사라진다고 일렀다. 그녀가 자신이 만개한 꽃이었던 시절을 떠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절정의 순간을 영구화할 길을 모색했을 수 있다. 그 결과, 황홀한 절정의 환상을 애타게 부여잡고 지금은 확인할 수도 없는 허상을 그리게 되었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늙음의 증거이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필 때 다 써버[릴]"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고 반문했다. 마음이 늙지 않는 한 인생 또한 늙지 않는 것이다.

이는 늙음의 현실을 부정하며 자기만족적 상상을 구가하려는 시도로도 보일 수 있다. 공상 속에서 허구적 조작을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분별 대신/ 향기"에 심취해 있다. 분별하자면, 자신의 현실은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있는 늙은 꽃의 상태이지만, 향기는 꽃이 어느 땅에 어떤 색으로 피든 절정의 순간을 전달한다. 그 순간을 영구화하는 것은 분별의 언어가 아니라 오묘한 향기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녀는 절정의 순간을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그녀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을 "필 때 다 써버[리며]" 마치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듯이 황홀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것이다. 그 향기는 생명의 역설이 실현되는 순간에 피어오르는 향기이다. 상상이 아니다.

문제는 "필 때 다 써버[릴]" 수 있느냐이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이며 오묘한 향기로서 순간을 영구화할 수 있는 동력이다. 이는 죽음을 각오할 때 새로운 생명의 기회가 다가오는 원리와 같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한복음 12:24-25). 이 원리는 말로 분별하기보다 삶의 자세가 풍기는 향기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그 삶의 자세는 마음이 지키는 것이므로, 늙지 않는 마음이 향기의 근원이다. 그래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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