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시인(1960- )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연과 우주와 사람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살다 보면 그것들을 그저 일상적인 배경으로 여기기 쉬운 반면에, 사랑은 그 배경의 "부피와 넓이와 깊이"를 감지하게 한다. 그러한 입체적인 경험이 그 대상의 살아 있음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존재 의의를 가늠하게도 한다. 시인이 아예 처음부터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고 선언한 것도 사랑이 삶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사랑한 만큼 그 대상의 가치가 고양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이 그 삶을 의미 있게 만들므로 사랑한 "그만큼이 인생이다."

첫 구절의 진실성은 이후에 제시되는 근거들이 지지한다. 사람은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꽃의 향기를 맡지 않은 사람에게 꽃은 죽은 것이다. 배경에 그려진 그림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부피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그 꽃은 평면적으로 간주될 따름이다. 꽃의 부피는 향기가 입증한다. 향기는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그러나 향기를 맡는 행위 자체가 꽃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으므로 그 사랑은 향기를 맡는 사람도 살아 있음을 알린다. 그 사람은 그 꽃을 사랑한 만큼 산 셈이다. 그래서 그는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알리는 것으로 보아 시인은 산 만큼 사랑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어느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그 영역을 확장한다. 사람은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나무들이 숲을 이루듯이 꽃에서 새에게로, 그리고 나무에게로 사랑의 대상이 확대되면서 그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할 영역도 확장된다.

그 영역은 우주로까지 연장된다. 사람은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태양의 이글거리는 생명성은 태양을 사랑할 때 느낄 수 있다. 분주한 일상에 빠져 있게 되면 태양은 그 일상을 지탱하도록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보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 이글거림을 확인한 사람은 일상으로부터 고개를 들고 태양을 바라다 본 사람이다. 하늘을 보며 태양의 역동성을 느낀 사람은 그 삶도 역동적이다. 다른 한편에서 그는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우주에서 역동성뿐만 아니라 외로움도 감지할 만큼 사랑은 포용적이다. 그리고 그는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어두운 현실에다 소망을 묻어두지 않으므로 그는 우주의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는 생명의 힘을 증명한다.

사랑은 이처럼 자연이나 우주라는 비인격의 영역에서 확인될 뿐만 아니라 인격의 영역에서도 그 생명성을 증명한다.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람의 살아 있음을 현저하게 증명한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삶은 그 사랑만큼의 의미를 지닌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 해당한다. 사계절을 떠도는 나그네는 인생 자체에 대한 상징이지 않은가? 그것도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므로]" 인간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그네를 사랑하는 일은 바로 자기 자신을 본질적으로 성찰하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는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살아가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운명의 흐름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존재는 누구나 나그네이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가장 처연한 상태에 빠진 사람을 사랑하므로 그 사랑의 깊이를 증명하는 동시에 인간의 가장 깊은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보한 삶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사랑이 인생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그러고 보니,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와 관계되어 있다. 사랑한 만큼 사는 것이니까 사랑은 의지를 요구한다. 일상성 혹은 관행을 따르다 보면, 안정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 감정의 휘장에 의식의 예민한 촉수들이 덮인다. 그 어둠에 익숙해질 때면 늘 보는 꽃에서 향기를 느끼지 못하고, 늘 듣는 새들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들리지 않게 된다. 주변의 모든 것은 진부해지고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한 채 부피가 사그라들어 평면화된다. 그러나 그 어두운 휘장을 걷어내려는 의지가 사랑을 만든다. 그 사랑이 평면적 배경과 같은 세상에 부피와 넓이와 깊이가 있는 길을 만든다. 그 길이 그 사람이 이 땅에 살았음을 증명한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흔적을 남기는 존재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설파한 대로, 사랑은 생명의 가치를 고양하는 변화의 힘이다.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딤으로써 그 사람을 과거의 일상적 관행으로부터 새롭게 변화시킨다. 이에 대해 C. S. 루이스(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상태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남에 대해서는 배워서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순전한 기독교』, 장경철, 이종태 역[홍성사, 2001], 205). 사랑은 "배워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40-430)은 사랑을 "진실하고 온전한 기도"에 비겼는데, 기도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이므로,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다준다. 그 길의 길이만큼이 믿는 자들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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