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하나님 부재의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

고 박재순 목사 천국환송예배서 박승렬·김종생 목사 추모사와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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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편집국장)
▲22일 고 박재순 목사 천국환송예배에서 조사를 전하고 있는 김종생 목사(CBS 사목)

고 박재순 목사의 천국환송예배가 22일 진행된 가운데 고인과 인연을 맺은 김종생 목사(CBS 사목)와 박승렬 목사(NCCK 총무)가 각각 조사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의 삶과 신앙, 그리고 그가 남긴 사상적 유산을 회고했다.

두 목사는 특히 박 목사가 평생 겪었던 육체적 장애와 국가폭력의 고통, 그 가운데서도 신앙과 학문을 포기하지 않았던 삶을 돌아보며, 고인이 남긴 '생명과 평화', '씨알의 정신',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신앙의 의미를 강조했다.

박재순 목사는 네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고인은 자신의 삶을 운명에 대한 체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질 때 일어나는 것'을 인생의 진리이자 성경의 진리로 이해하며 부활의 신앙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했다. 고인의 삶과 사상은 이후 씨알사상과 생명·평화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김종생 목사 "고난 속에서도 쓰러짐이 아닌 일어섬의 신앙 살아"

김종생 목사는 조사에서 박재순 목사의 생애를 "현실과의 정면 마주침"의 연속으로 회고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된 고인은 육체적 한계를 안고 살아야 했지만, 이를 비관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인생과 성경이 말하는 '일어섬'의 의미를 발견했고,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고인이 젊은 시절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신학과 학문에 매진하던 중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된 사실도 언급했다. 박재순 목사는 1981년 한울회 사건으로 구금돼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에도 오랜 기간 사건의 진실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울회 사건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폭행, 고문, 가혹행위 등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을 권고한 바 있다.

김종생 목사는 이 같은 고난이 박재순 목사의 사상적 깊이를 오히려 더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고인이 서구의 신학과 사상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한국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전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산 안창호의 구국정신에서 다석 유영모,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상과 기독교의 흐름을 탐구하면서 씨알사상과 생명철학의 계보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고인이 씨알사상연구소와 씨알재단 등을 통해 '씨알'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탐구했으며, 병고 가운데서도 연구와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또한 고인의 마지막 여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한울회 사건의 진실규명 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목사는 이를 개인적인 한을 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역사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바라보며, 고인이 끝까지 진실과 정의를 향한 길을 걸었다고 추모했다.

끝으로 그는 "이 땅에서 온전한 무죄의 마침표를 다 보지 못하고 떠나셨다"는 안타까움을 전하면서도, 하늘의 공의로운 법정에서는 고인의 신앙과 삶이 온전히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고인이 남긴 생명과 평화의 씨앗이 가족과 후배들의 삶 속에서 계속 열매 맺기를 기원했다.

박승렬 목사 "하나님 부재의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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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편집국장)
▲22일 고 박재순 목사 천국환송예배에서 추모사를 전하고 있는 박승렬 목사(NCCK 총무)

박승렬 목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인연을 중심으로 고인을 회고했다. 그는 자신이 한우리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 교회가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 박재순 목사에게 예배와 설교를 부탁했던 일을 떠올렸다.

박재순 목사는 당시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먼 길을 찾아와 교우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김 목사는 그때 받았던 고인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목사는 특히 고인이 남긴 저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다시 성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주목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박 목사는 고인이 한울회 사건이라는 극심한 고난을 직접 겪으면서 바로 이 문제와 씨름했다고 회고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신뿐 아니라 젊은 후배들과 학생들까지 고통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현실에서는 정의가 즉시 실현되지 않았고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박재순 목사의 신앙은 고난이 사라진 뒤에 확인되는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현실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드는 신앙이었다고 박 목사는 설명했다. 박 목사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라고 묻게 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박재순 목사의 삶을 통해 배웠다고 말했다.

또한 박재순 목사가 남긴 삶은 오늘의 한국교회에도 중요한 신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정의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묻게 될 때, 고인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었다.

조사와 추모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고인은 육체적 장애와 국가폭력이라는 깊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을 끝내 규정하는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신앙과 철학의 의미를 묻고, 한국의 고유한 정신과 기독교 신앙의 만남을 탐구했다.

그 과정에서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을 연구하고 씨알사상과 생명·평화의 가치를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박재순 목사는 다석 유영모의 사상을 몸·맘·얼을 아우르는 생활철학으로 해석하며 한국적 기독교 사상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기도 했다.

고인의 육신은 이제 땅을 떠나지만, 그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쳤던 생명과 평화, 씨알의 정신,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신앙에 대한 질문은 남은 이들의 몫으로 이어지게 됐다.

김진한 편집국장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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