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통일맞이 2010년 정기총회(김상근 이사장) ⓒ김태양 기자 |
사단법인 통일맞이가 18일 저녁 7시 2010 정기총회와 늦봄 문익환 목사 16주기 추모의 밤 행사를 열었다.
"통일 꿈을 꾸라!"는 문익환 목사의 말을 인용한 결의문을 채택한 이번 정기총회는 남북관계의 조속한 복원과 민간 평화통일진영 간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16주기 추모의 밤 행사에는, 인권목회자동지회 회장 이해동 목사의 기도 후,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이부영 전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이행우 6.15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 각계의 인사가 참석하여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이부영 전 국회의원은 문익환 목사와 함께 했던 "감옥살이"를 회상하며, 고인의 삶과 뜻을 되새겼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역시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는 고인의 말을 인용하며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문익환 목사는 암울한 80년대 민주와 통일의 지도자였다. 그가 박정희 유신독재의 맞서 싸운 때는 절친했던 장준하 선생이 살해되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소위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억울하게 사형 당한 1975년 여름부터였다.
문 목사는 이후 58세 때인 1976년 3.1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반대하는 명동성당 <3.1 민주구국선언>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 사건으로 22개월 만에 출옥한 뒤 1978년 10월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비판해 다시 수감, 1980년 5월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정권에 의한 ‘내란예비음모죄’로 3번째 투옥되었다가 31개월 만에 출옥, 1986년 인천 5.3항생과 서울대 연설사건, 그리고 1989년 3월 26일 전국을 뒤흔든 방북사건, 1991년의 ‘분신정국’으로 재수감될 때까지 민주화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가 성취되었다. 그러나 문 목사의 민주화운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어떻게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장 적극적인 대답은 바로 방북이었다. 문 목사는 통일이 앞당겨지면 민주화가 진전되고 그렇게 돼야 억울한 희생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 목사는 1989년 3월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열흘 간의 북한 방문으로 김일성 주석과 2차례 회담 끝에 통일 3단계 방안 원칙인 <4.2 남북공동성명>을 끌어냈다. 이에 대해 학계는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교류 협력사업, 햇볕정책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