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판결을 내려 존엄사를 처음으로 인정함에 따라 안락사를 둘러싼 기독교적 해석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안락사는 낙태와는 달리 본인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해석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양세진 사무총장은 안락사를 동성애, 낙태와 같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으로 보았으며 이분법적 판단을 지양하고, 오랜 기간의 논의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양세진 사무총장은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락사와 존엄사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존엄사의 경우)원론적으로 말해 인간이 생명을 통제할 권리가 있겠는가”라고 전했다. ‘연명치료’ 자체도 인간이 생명을 통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양 사무총장은 “기독교인으로서 생명 이야기를 꺼내면 먼저는 “안될 것 같은데..”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낙태의 이야기를 꺼냈다.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낙태하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양 사무총장은 “부정할 수 없다”며 “실제로 우리나라는 법적으로도 낙태를 6,7개월까지는 허용하고 있다. 어떤 경우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같은 맥락에서 안락사의 문제도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면서 “돈이 없어 집을 팔고 가정이 파탄날 지경에 이를 정도로 온 가족이 고통 속에 빠지는 것은 괜찮은가? 물론 가족이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았는데 뇌사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존엄사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입장에 선 이들에게 반문했다.
양 사무총장은 또 “안락사나 낙태, 동성애 등 모두 같은 경우”라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있어 쉽게 예스(yes)다 노(no)다 결론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접근한 후 판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생명의 존엄성 문제를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임을 지적한 것.
끝으로 그는 “음식을 고르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낙태, 동성애, 안락사는 생명이 관련된 것”이라며 “몇년이 걸리든 집단적으로 토의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견이 더 많은가 투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오랜 수기의 과정을 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서부지법의 판결로 이슈가 된 안락사는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뉘며, 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동의가 있을 경우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비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동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요구 혹은 국가의 요구에 의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와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a)로 나뉘기도 한다. 적극적인 안락사는 약물 등을 사용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고, 소극적인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안락사는 논쟁적인 주제인데, 환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비자발적 안락사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선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네달란드와 같이 안락사 관련 법률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또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률은 없지만 이번에 있었던 법원의 판결처럼 안락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네덜란드는 2000년 12월,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도입됐다. 자발적 안락사만을 허용하며, 환자는 반드시 시한부이며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벨기에 역시 2002년 네덜란드와 동일한 벌률을 도입했다. 스위스 역시 안락사가 법률화돼 있다.
미국은 오레건 주(Oregon State)만 허용하고 있다. 존엄 안락사법이라 불리는 이 법률은 환자가 서면으로 2차례 이상요구 하고, 2명 이상의 증인 그리고 2명 이상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후 의사가 처방전을 써주면 약국에 가서 약을 타고, 약을 복용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구조다.
플로리다 주법원은 2005년 15년째 식물인간이었던 테라 시아보에게서 영양 공급 튜브를 제거하는 판결을 내려 안락사 법률을 도입하지 않은 주로서 첫 존엄사를 인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서울 서부지법이 지난 28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6,여)씨의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어 생명유지 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에게 고통만 준다고 판단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