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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칼럼] 변기통을 닦으며 가르친 이승훈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입력 Feb 12, 2013 01:22 AM KST

이승훈은 어려서 부모, 조부모를 잃고 남의 집 사환으로 시작해서 큰 기업가가 되었다. 겸허하게 남을 섬기고 받드는 마음과 대쪽같이 곧고 바른 마음으로 그는 민족의 교사, 섬기는 지도자의 귀감이 되었다.

오산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으로서 그는 학교의 마당을 쓸고 변소 청소를 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알았다.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은 추운 곳이었다. 겨울이면 변소의 똥 무더기가 얼어서 올라왔다. 치우는 사람이 없자 이승훈은 도끼를 가져다가 한 손으로 수염을 잡고서 얼음 똥을 까기 시작했다. 얼음 똥이 튀어서 입으로 들어가면 퉤퉤 뱉으며 도끼질을 했다. 후에 오산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학교에서 한 것은 똥 먹은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서 그 일을 자랑하였다.

그는 105인 사건으로 지독한 고문을 받고 오랜 세월 옥고를 치렀으면서도 삼일독립운동에 앞장서라는 요청을 받자 죽을 자리 찾았다면서 기뻐하였다. 삼일독립운동을 일으키고는 감옥에 들어가서 사형언도가 예상되는 데도 죽을 자리 찾았다면서 어깨춤을 너울너울 췄다. 그리고는 감옥에 들어간 첫날 “이제부터 변기통 청소는 내가 한다.”고 선언하고 3년 반 동안 변기통 청소를 혼자 맡아서 하였다. 예전에는 감옥에 변소가 없어서 죄수들이 나무통에 오줌, 똥을 눟고 아침에 그것을 비우고 닦았다. 추운 겨울에 찬 물로 변기통을 청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방에서도 가장 힘없고 못난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민족의 큰 지도자인 이승훈이 그런 일을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아이고 선생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십니까?”하면서 말렸는데 나중에는 당연히 이승훈이 하는 일로 알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남강 이승훈은 이렇게 험하고 궂은일을 몸소 함으로써 민족을 깨워 일으키는 민족의 교사가 되었다.

함석헌은 20대 후반에 모교인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어 말년의 이승훈을 2년 남짓 모실 수 있었다. 함석헌이 방과 후에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자 이승훈이 참석해서 듣고는 내용이 좋으니까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너희도 와서 들어라. 좋은 말은 함께 들어야지.” 하면서 권하였다. 그는 젊은 제자인 함석헌의 성경강의를 귀 기울여 듣고 격려하였다. 제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이승훈은 제자의 마음을 붙잡고 이끌어주었다. 함석헌은 이승훈의 뜻을 이어받아 그 뜻을 이루며 살려고 평생 민족사의 중심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버지는 삼일독립운동에 참여하여 1년 반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승훈이 죽기 1년 전쯤 황순원은 오산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를 하였다. 황순원은 늙은 이승훈의 얼굴을 보고 “남자라는 것은 늙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로구나.”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황순원은 이승훈이 평생 자신의 마음 속에 별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승훈은 얼굴만으로도 황순원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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