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수년이 지난 얘기다. 당시 4대 일간지에 대서 특필된 한국판 종교재판의 당사자 홍정수 박사(62). 그가 20년 전에 설립한 한국기독교연구소가 주최하는 ‘예수 목회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한달 전 방한했다.
홍 박사는 20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년 한번 씩 열리는 세미나이지만 이번 세미나만큼은 남달랐다”며 “한국교회에서 다시금 실날 같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희망을 교권을 쥔 자가 아닌, 목회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예수의 삶을 살아내려고 발버둥치는 소수의 목회자들에게서 찾았다고 홍 박사는 말했다.
홍정수 박사에게 예수는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었다. 그는 “오늘의 시대 성경의 말씀 그리고 예수가 생명력을 얻고 우리 또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예수의 삶을 재해석해서 우리 역시 그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기독교인들이 예수와 동떨어진 길을 걷는다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오늘날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삶을 살아내는 실천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출국을 몇시간 앞두고 만난 한기연의 설립자인 홍정수 박사는 인터뷰 중 어렵사리 질문한 종교재판에 관해서는 아직도 뼈 아픈 기억으로 남는지 주춤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답했으며 예수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땐 자신이 지난 20년간 삶으로 따랐던 예수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 20일 오전 출국을 앞둔 홍정수 박사를 원당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홍 박사는 인터뷰 내내 진지하게 답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김진한 기자 |
- 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안병무 박사님을 자주 뵈며 민중신학을 많이 접했다. 민중 운동 그룹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막스 사상을 이념적 도구로 사용하는 민중 운동. 신학자로서 이것을 어떻게 하면 기독교 민중 운동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예수를 알아 보자는 것이었다.
8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는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허우적 거리며 성장, 물량주의에 한참 빠져 들고 있을 때였다. 민중 운동은 당시 금권의 노예화 되어가는 한국교회에도 필요한 목소리였기에 이것을 막스의 사회변혁 논리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닌 예수를 기초로 한 기독교인들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목소리로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예수 연구를, 특히 예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한기연의 전신인 ‘세계신학연구원’을 설립하게 됐다”
- 연구소를 시작한 지 얼마 후 종교재판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자 홍 박사는 잠시 멈칫 거렸으나 이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벌써 십수년이 지난 옛 이야기이지만 당시 신학도로서 받았던 상처가 새삼 떠오르는지 홍 박사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잠시동안 이나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89년도부터 91년까지 연구소에 연재한 글들을 묶어 펴낸 ‘베 짜는 하나님’이 당시 교권을 움켜진 교회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 같다”
- ‘베 짜는 하나님’의 어떤 내용이 당시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보십니까.
“38여년 전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했으나 언로가 막히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항거를 대신했던 한 젊은이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교회는 냉정하게 그 젊은이를 ‘자살한 자’로 규정하고, 기독교인인 그를 교회 밖으로 내쳤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나는 그를 자살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이란 과제 앞에서 다소 과격한 형태로 항거를 한 것 뿐이다. 그를 그런 환경으로 몰아간 세력들은 나몰라라 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런 입장에서 기독교 교리가 근본적으로 재해석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더니 감리교 목사직을 파문시킨 것이다”
▲ 홍정수 박사가 종교재판 당시 착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당시 한국교회 교권의 희생양이 되어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김진한 기자 |
- 당시 심정을 좀 말해 주십시오.
“착잡한 심정이 앞섰다. 신학도로서 양심의 선언을 한 것 뿐이었는데 감리교 내 있지도 않는 교단법을 들먹이며 교리에 혼란을 줬다는 이유로 파문시켰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목사직이 파문되자 얼마 후 문교부로부터 교수직도 파면 당하고 말았다. 그 후 이젠 한국교회엔 거처가 없구나 싶어 뒤도 안돌아 보고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민자’란 이름으로 낯선 땅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 낯선 땅 미국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제도권의 신학에서 제야의 신학으로 벗어나니 훨씬 자유롭게 연구하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민자이자 한국인 그리고 신학자로 기독교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 기간 한국에서 받은 뼈 아픈 상처들이 나도 모르게 하나 둘 씩 아물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맞딱드린 것이 정체성 문제였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 특별한가’라는 질문에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까. 서방에서 온 기독교를 믿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나는 누구이고, 내가 믿는 예수는 도대체 어떤 분일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나의 이런 갈증을 해소해 줄 만한 저서들을 발견했고, 한국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지(김준우 소장)에게 번역을 맡겨 연구소 활동을 계속하게 됐다”
- 박사님이 생각하는 예수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단순히 성경을 볼 때 문자적으로만 봐선 안될 것이 자칫 기독교가 화석화된 종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 성경의 말씀 그리고 예수가 생명력을 얻고 우리 또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예수의 삶을 재해석해서 우리 역시 그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예수는 예수고, 인간은 인간이란 사고 방식을 먼저 뛰어 넘는게 중요하다. 예수는 신이기에. 우리가 따라할 수 없는 동떨어진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 분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예수를 믿는 것은 좀 과격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 홍 박사가 말하는 진정한 기독교인은 예수를 따를 수 있고, 예수처럼 살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진 신앙인들을 뜻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예수의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했고, ‘사도행전 살아내기’(한기연) 등 다수의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 ‘지금 여기에’란 칼 바르트의 신학 표어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세계 여러 선진국들은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예를들어 미국하고 스위스를 들어도 두 나라 간 형태만 조금씩 다르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은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란 이데올로기 앞에 예수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어 홍 박사는 갑작스레 기자에게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낳는 사회적 병폐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갖는 치명적인 결함이 다름 아닌 ‘상대적 박탈감’그리고 이로 인한 ‘공동체 속 인간애 상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윤과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단 한명은 트로피의 영광을 안을 수 있어도 절대 다수는 패배하기 마련. 이런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서구식 자본주의가 낳을 수 있는 동료애 말살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 홍정수 박사가 가시밭길을 걸어 온 한기연의 20년사를 잠시 회고했다 ⓒ김진한 기자 |
-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예수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있는 예수 안에 해답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라.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과 사랑이 생명을 살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볼 때 우리 안에 따뜻함이 생기지 않는가? 작은 생명들을 보살피며 거기서 얻는 보람. 그 삶의 의미를 가르쳐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런 예수의 이야기 속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은 찾아 보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 상대적 빈곤이란 만성적인 병을 치유하려면 예수의 삶, 예수의 이야기를 전해 풀 한 포기라도 소중한 생명으로 돌보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 한기연의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 역사적 예수 탐구에 부단히 활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알고 있는 역사적 예수는 누구입니까.
“언젠가 한번 지인들의 소개로 큰 부흥회를 가본적이 있다. 그 날 부흥 집회를 인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그리고 축복만 강조하지 예수란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번 붙잡고 물어봤다. 당신은 왜 예수를 말하고,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만 얘기하냐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 사람 말인 즉, 하루 종일 지치고 힘들어 부흥집회를 와서 은혜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겪으신 예수 이야기를 하면 받을 은혜도 까먹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그 만큼 한국교회는 하나님은 찬양 할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예수 하면 저마다 고개를 돌려 꺼려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말해도 마치 공식 처럼 ‘예수= 대속사건’이란 교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미신적인 신앙관에 안주하기에 십자가의 깊은 의미 그리고 부활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꺼려한다.
이 예수, 특히 십자가의 예수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성경의 인물은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를 현실로 끌어 들여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세상의 신과 싸움을 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 이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비켜갈 수 없는 길일 것이다. 내 삶과 예수의 십자가를 자꾸 따로 분리하고 떼어내려 하지 말고, 십자가 속에서 예수의 위로를 받고 가는 삶. 그것이 신앙이고, 참 기독교인이 삶이라고 본다.
2000여년 전 예수의 삶을 어떻게 재해석해 오늘 이 시대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그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역사적 예수 탐구의 과정이었다”
- 한국교회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역사적 예수 찾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민의 예수상도 찾아 봤으면 좋겠다. 오직 한국인에게만 있는 전통성과 특수성을 살려 기독교의 새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품앗이, 계모임 등 이웃간의 끈끈한 우애 관계를 강조했다. 세계 도처를 돌아봤지만 이렇듯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이 인간애를 전적으로 되살려 역사적 예수에 잘 접목시킨다면 한국교회 뿐 아니라 세계교회 나아가 세계 공동체에 호(好)작용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1988년 11월 29일 홍정수 박사가 설립한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서 벗어난 한국기독교를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기초해 재확립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출판사업(격월간 설교자노트, 단행본 등), 교육사업(월례 예수포럼, 예수학당, 예수목회세미나, 목회자 원서 강독 및 세미나) 등을 펼치고 있는 한기연의 비전은
▶ 예수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성과들을 연구하고 소개함으로써 예수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계승하고 재현함으로써 예수를 바로 살도록 도우며
▶ 한국교회가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기초하여 신학과 목회를 재확립함으로써 교회다음을 회복하고
▶ 한국사회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힘입어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세상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
현재 설립자인 홍정수 박사는 미국의 LA 한아름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기연과 더불어 Jesus Academy, 갈릴리 신학교 등을 통해 예수를 살아내려는 교역자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