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북리뷰] 글쓰기는 진정 어려운 일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돌베개 刊)

입력 Aug 22, 2015 06:18 AM KST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 겉 표지.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시내 대형서점에 가보면 책들이 넘쳐난다. 일생을 책 읽는 데 바쳐도 다 읽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다보니 책 한 권 고르려면 한참을 고민한다. 이런 와중에 좋은 책, 아니 진정으로 좋은 책을 고르기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그러나 경험칙 상 정말 좋은 책은 주인을 알아본다. 마치 ‘주인님, 나 여기 있으니 집어 드시오’라고 주문을 거는 것 같다. 자, 이제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처음의 의문을 다시 던져보자.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단순히 재미를 충족시켜 주는 책은 그냥 좋은 책 수준이다.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은 더 나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미와 고민거리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이 두 가지 요소에 더해 독자의 내면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책, 바로 이런 책이 진정 좋은 책이다. 
이런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 작가인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원제: On Writing Well)는 진정으로 좋은 책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글쓰기 지도서다. 대학 새내기,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기자나 전업 작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글쓰기광’ 등 글 쓰는 방법을 알고 싶고, 또 잘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필독서다. 
이 책이 다루는 분야는 여행기, 회고록, 유머, 비평, 논픽션 등 글쓰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과학에 관한 글쓰기다. 얼핏 과학은 글쓰기와 별개로 느껴진다. 사실 과학이 다루는 언어가 보통 언어와는 다르기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저자인 윌리엄 진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그가 언급하는 ‘과학 글쓰기’는 다른 게 아니다. 그저 “한 문장 뒤에 또 다른 한 문장을 놓는 문제”라는 것이다. 참으로 명쾌하다. 너무 간단해서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명쾌함은 이 책의 미덕이자 강점이다. 
그는 어떤 주제를 갖고 글을 쓰든 주제 보다는 작가의 태도를 더 강조한다. 즉, 작가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종이 위에 옮긴다면 어떤 주제를 다루든 명쾌한 글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글 쓰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걸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또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보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내가 제대로 말을 했나? 이 주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보기에 글이 명료한가? 그렇지 않다면 어딘가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명료한 작가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정확히 어디가 모호한지 알아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다.”   
인간미, 온기, 명료함 
저자가 글쓰기에서 가장 강조하는 요소는 ‘인간미,’ ‘온기,’ 그리고 ‘명료함’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미와 온기다. 좋은 글에는 독자를 한 문단에서 다음 문단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붙잡는 생생함이 있다. 이것은 자신을 꾸미는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명료하고 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의 문제다.”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데 있다.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단어, 짧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긴 단어, 이미 있는 동사와 뜻이 같은 부사, 읽는 사람이 누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만드는 수동 구문, 이런 것들은 모두 문장의 힘을 약하게 하는 불순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불순물은 대개 교육과 지위에 비례해서 나타난다. (중략) 군더더기 없는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난삽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는 것이다.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이 된다.” 
찬찬히 생각해보자. 글을 쓰고자 하면 온갖 미사여구부터 떠올리지 않았나? 어느 모임에 참석해 하루 일정으로 기행을 다녀왔다. 인솔자는 모임을 마치면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우리 웹사이트에 접속해 금일 촬영한 사진을 등재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저 ‘홈페이지에 들어와 오늘 찍은 사진 올려 달라’고 하면 될 것을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어렵고, 딱딱하고, 화려한 수사를 동원할수록, 특히 수식어가 많을수록 글 좀 쓴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다. 이 책 『글쓰기 생각쓰기』는 바로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사람들은 대체로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말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데 있다.”  
지금 항간에는 종이매체의 몰락을 말하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또 일정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종이매체의 몰락이 글쓰기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의 지평은 무한대로 확장됐다. 가만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자. 남녀노소할 것 없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편지를 주고받고,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관심사를 펼친다.  
“지금은 세상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국경과 시간대를 뛰어넘어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온 세상에 블로거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한편으로 이런 새로운 조류는 매우 반갑다. 글쓰기의 두려움을 줄여주는 발명품들은 에어컨이나 전구만큼이나 편리하다.”  
비단 개인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다. 각 기업체, 특히 미디어 업계의 채용 담당자들은 블로그나 SNS 채널을 부지런히 뒤지며 인재 발굴에 열심이고 회사 경영진들은 간결한 문서 작성 및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에 안달이다. 말하자면 “글쓰기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고객과 돈을 잃어버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잘 이해하고 글을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단문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때론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틈을 비집고 온갖 비속어들이 난무한다. 참으로 역설적인 현상이다.   
글쓰기 능력은 다른 게 아니다. 글쓰기는 ‘종이 위에서 생각하는 행위’다. 지금은 SNS 타임라인 혹은 스마트폰 메시지 작성창이 종이를 대체했을 뿐이다. 윌리엄 진서는 특히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을 만들어 낸다”고 강조한다. 사실 지금처럼 명료한 생각을 요하는 시기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어렵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창에 커서가 깜빡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공포마저 느낄 지경이다. 1970년대부터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왔고 17권의 저서를 낸 저자마저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다.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어려움만 명확히 인식한다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단순명료해질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윌리엄 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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