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교회 한성수 목사. ⓒ베리타스 DB |
성경본문
요한복음 6:5-11
설교문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이적을 보고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해가 저물자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라고 대답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까, 하루 품삯을 십만원으로 잡으면 이백 데나리온은 이천만원이 되는 큰 금액입니다. 하지만 오천명이 오천원짜리 한끼를 먹어도 이천오백만원이 되니, 부족하다는 빌립이 말이 맞습니다. 이때 안드레가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의 손에는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도시락이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내어 놓고서는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8-9)
사실 예수님은 무리를 먹이실 방법을 친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서 급식에 대해 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요 6:5-6)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시험에 빌립은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고, 안드레는 묻지도 않았는데 상황의 어려움을 알고 자발적으로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까? 안드레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천명을 위한 양식으로 내어 놓은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음 도시락에서 떡과 물고기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술처럼 도시락에 있는 떡과 물고기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한 없이 양식이 나오매 오천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남은 떡을 모으게 하니 열두 광주리가 되었습니다.(요 6:10-13) 배불리 먹고도 남은 떡이 완전수인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는 것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안드레의 방법을 택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은 긍정적인 믿음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백 데나리온의 능력과 물질이 있다할지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한 명의 생명도 먹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일도 그렇습니다. 부족하고 없는 가운데서 시작하는 것이, 더 긴장을 하고 더 노력을 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이란, 부족한 가운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에게 작은 것에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는 크고 화려하고 잘난 것으로만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택하십니다.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오병이어를 택한 예수님의 방법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잘나고 강하고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들을 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것은,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릴 때에 큰 능력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오병이어가 이백 데나리온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양식을 구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체험하였던 무리들이 다음날 예수님을 찾았을 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6-27)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육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영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현실의 떡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을 가진 영적 존재인 인간은 육의 떡과 더불어 영의 양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의 양식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본질을 잃어버린 쭉정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긍정적인 믿음, 작은 것에 감사하는 믿음, 그리고 생명의 양식을 구하는 성숙한 믿음으로, 이 땅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