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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 이루어졌다!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시편 44편23-26절, 누가복음 4장14-21절

[설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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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떡이 10개가 있는데, 이 중에 3개를 먹었습니다. 그러면 떡이 몇 개가 남았습니까? 아주 쉬운 퀴즈이지요? 3개입니다. 왜냐구요? 옛말에 '먹는 게 남는 거' 라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3개가 남은 거지요. 너무 썰렁했나요? 목사님이 어떤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영 웃지를 않았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근엄하게 설교를 듣더랍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영 웃지를 않아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웃지를 않습니까?' 교인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당회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퀴즈를 하나 더 낼까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않았습니까? 선악과를 따먹는 바람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만일 에덴동산이 한국에 있었고, 첫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면 인간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뱀을 잡아 먹었을 테니까요.

말씀의 신학자라 불렸던 칼 바르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학자로서 하나님에 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라서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없다. 그래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알아야 하며, 바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곤경이다."(<다시 설교를 디자인하라!> p14.)

주일마다 설교를 해야 하는 목회자들은 매 주일 이런 곤경에 처합니다. 인간인 목사가 설교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이야기, 도덕적인 교훈이나 목사가 겪은 주변의 신변잡기가 아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매번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 없었더라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설교자의 입술을 지켜 주시지 않았다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는 교인들의 간절한 눈빛이 없었다면, 목사는 한마디의 설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지나간 우리 삶의 흔적을 해석해내고, 현재 벌어지는 사건의 의미를 포착하며 다가올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비록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희망을 품고 거룩하신 분의 뜻이 사람들 사이에서 실현되는 것을 믿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 되고 힘이 되고 양식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 감동의 체험들이 강단에서 선포되고, 그 말씀들이 마음에 새겨지고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세상으로 전파될 때 설교는 완성되고, 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는 전하는 자와 듣고 실천하는 자의 공동작업입니다.

[예수님의 취임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서의 말씀은 예수님의 취임설교라고 불리는 부분입니다. 마가복음서나 마태복음서는 모두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누가복음서는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 온 지역에 두루 퍼졌고, 예수님이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자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서는 그 어린 시절에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생들과 토론하였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그런 분이 이제 고향 나사렛으로 오셔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배자들은 회당에 들어가면 먼저 개인기도를 드리고, 다 같이 신명기 6장4-9절, 11장13-21절, 민수기 15장37-41절로 만들어진 신앙고백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시편과 예언서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배의 중심인 성서낭독과 통역, 기도와 설교가 이어집니다. 성서는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최소한 3절씩 낭독하고 통역자가 낭독자 곁에 서서 한절씩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읽어서 통역하였습니다. 성서 낭독이 끝나면 기도와 설교가 이어집니다. 단 설교는 할 사람이 있을 때만 하는데(사도행전 13:15), 성전예배에서는 제사장에게만 부여된 말씀 선포의 권한이 회당 예배에서는 일반 회중에게도 부여되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예배에서 성경낭독의 기회를 얻는 것은 매우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제사장들이 읽었고, 둘째는 레위 지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대인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특별히 신랑이나, 율법학자, 심한 질병에서 회복된 사람, 위험한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이한 사람에게는 이런 기회가 먼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재야의 지도자로 많은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던 세례 요한의 이종사촌이었고, 성령의 힘으로 광야에서의 40일 시험도 이겨내신 예수가 새로운 능력을 입고 고향에 돌아왔기에 성경 낭독과 설교의 기회가 주어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회당 예배를 도와주는 수행원으로부터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말씀을 찾으셔서 낭독하기 시작하십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 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모든 눈길이 예수를 향해 쏠립니다. "예수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까?" "무슨 말을 하며, 어떤 가르침을 베풀 것인가?" 모두들 궁금한 마음으로 예수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구절절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습니다. 딱 한 문장으로 설교를 마치십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누가 4:21).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알고 싶었던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야 성경 말씀에도 관심이 없겠지만, 성경을 사모하고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도록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말씀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도록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본인의 말과 삶으로 읽어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다. 이제 내 영은 하나님의 영과 깊이 소통한다. 그래서 옛날 기름 부은 받은 이들처럼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내 삶을 산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가지고 저 세상에 나아갈 것이다. 너무나도 가난하기 때문에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늘 주눅 들어 사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나와 함께라면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무지에서 벗어나게 되어 그동안 몰라서 당한 고통이 사라질 것이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거나 빚더미에 앉는 일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평등해서 온 이스라엘이 공평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희년의 기쁨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과 가르침과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내십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예수님의 출현을 통해 성취되고, 구원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를 구성하는 저와 여러분들 또한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즉 우리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이루었다고 하신 것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 눈먼 사람들이 눈을 뜨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가지 내용입니다. 포로 되고 눈 멀고 억눌린 것은 사실 가난 때문에 그리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빚을 갚지 못해서 돈을 벌려고 용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것이고, 가난해서 배우지 못해 눈 뜬 장님처럼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또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온갖 멸시와 조롱에 억눌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해, 즉 희년(레위 25:8-55)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땅을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되어 포로나 종에서 풀려나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가족과 함께 다시 땅을 일구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소식이 어디 있을까요?

오늘 성서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소외되어 있어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일을 하다 보니 안식일에 지켜야 하는 율법의 규정들을 지키기가 어려웠고, 또 쉽게 병들고 다치는 일들이 허다한데, 율법을 어기거나 몸에 흠이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기 때문에(레위 21:16-24) 언제나 사회의 변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4년 세계무역수출 90위에서 2015년 세계 6위로 급성장했습니다. 올해 들어 8위로 조금 하락하긴 했지만 50년 만에 대단한 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가난으로 허덕이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닿지 못하는 곳에는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수건을 깔고 누워 있거나 신발 깔창으로 대신해야 하는 아이가 있고, 급식비를 제때 내지 못해서 생수로 허기를 달래는 아이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운동화 한 켤레를 살 수 없어서 체육시간에 벌을 서야 하는 아이가 여전히 있습니다.

한번 가난의 늪에 빠지면 쉽게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회복지는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그 혜택을 주는 제도적 복지와 시장 경제가 제 기능을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보완하는 잔여적 복지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제도적 복지보다는 잔여적 복지 개념이 강하고, OECD 국가 중에서 공공 사회복지 지출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즉, 우리나라는 가난의 문제에 대해 사회구조적 차원을 보기보다 개인의 책임을 더 묻는 편이라 갈수록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지금 21세기에도 가난과 빈곤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됩니다. 설사 절대적 빈곤은 벗어났다 하더라도 상대적인 가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박탈감과 허무함,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다는 중산층들의 불안 심리가 만연해 있습니다.

한편 현대 사회는 물질적 가난과 더불어 정신적/영적인 빈곤의 상태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다보면 그 사람의 정신도 많이 피폐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분노하는 마음과 무기력함이 동시에 있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스스로 서기보다는 타인의 도움에만 의존하려는 성향이 고착화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들도 가득합니다. 돈만을 최고로 알고, 자기의 편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행동을 합니다. 특검 수사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가를 사유화하려 한 세력들의 범죄 사실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까지 지냈던 한 변호사는 법정 모독에 해당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합니다. 범죄세력을 비호하던 또 다른 변호사는 법정에서 태극기를 펼쳐 들었다가 그것을 자기 가방에 구겨 넣었습니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집니다. 바른 정신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배울 기회가 없어서 못 배웠지만 배운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욕망이 작동하거나, 편견을 진리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유머 하나를 알려 드릴까 합니다. "이스라엘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의학이 발달해서 환자의 간을 잘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 후에 6주가 지나면, 벌써 자기의 일을 찾게 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독일 의사가 자랑합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독일에선 뇌를 이식했는데도 4주만에 완쾌되어 다시 직장을 구하러 간다고!' 러시아 의사가 끼어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장을 이식하고도 2주 만에 완쾌되어 일자리를 찾으러 간다니까' 마지막으로 미국의사가 웃으며 말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우리보다는 한 수 아래요! 이틀 전에 우리는 뇌도 없고 심장도 없고 간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대통령을 만들었다오! 그래서 지금 온 나라가 일자리를 찾고 있지!"

바른 정신을 가진 정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풍자하는 이야기이지요. 우리나라 정부가 지난 몇 년 동안 역사를 바로잡는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편향된 서술로 만든 국정 교과서는 단 한곳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어느 학교에서도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45억 원의 혈세를 그냥 낭비해 버렸습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정확하게 가르쳐서 바른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은 물질적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글을 읽으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그 부분에 해당하는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읽어 보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다른 부분이 나옵니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언급하지만 예수님은 주님의 은혜의 해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는 눈먼 사람을 눈 뜨게 해 준다는 말이 없지만 누가복음서에는 상한 마음을 싸매어 준다는 이사야의 말씀 대신 눈이 먼 사람을 눈 뜨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어둠에 쌓여 있지 말고 제대로 눈을 떠서 바른 정신을 지닐 때만이 가난도 극복하고, 우리를 억압하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보복하고 싶은 마음 없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제대로 눈을 떠서 올바른 정신을 지니고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삼일정신]

오늘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삼일절 기념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삼일 만세 운동은 우리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했던 운동입니다. 500년을 지탱해 온 유교의 정신이 기득권을 누리던 양반들의 권력 유지 수단이 되어 왜곡되고 타락하자 조선은 외세의 침략 아래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망하게 됩니다.

망한 조선을 뒤로하고 새로 나라를 세울 때 크게 세 가지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개화와 자주독립, 민권이었습니다. 발전하는 세계의 문명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근대화를 해야 했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 외세의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는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그런 국가는 바로 주인인 국민 전체가 행복한 나라, 국민의 권리가 충분히 실현되는 민주주의의 나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외세를 물리치고 백성들의 권리를 세우려던 동학 농민 항쟁이 실패로 돌아가고, 무능한 정부가 끌어들인 외세에 의해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백성은 나라를 잃었고, 나라는 주인을 잃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와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일본의 야욕에 의해 우리나라도 근대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그것은 독립과 민권이 없는 식민지 근대화의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반성 없이 이루어진 근대화는 지금도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습니다.

3․1 독립운동은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 식민무단통치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 민주적 국가를 세우겠다는 우리나라 민중의 의지가 한 물결이 되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일제가 이 나라를 침탈하자 독립을 위해서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국내외무장투쟁조직을 지원한 비밀결사운동이 생겼고, 독립을 하려면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문화운동이 일어났으며, 식민지 경제수탈에 맞서 농민,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수호하려는 투쟁과 저항들이 이 땅에서 생겨났습니다.

3.1운동의 정신적 뿌리는 구한말 계속된 의병 투쟁과 그리스도교 민족주의자들의 주체적인 자주독립정신이었습니다. 여기에 일본놈들과 친일파들의 착취와 압박 속에서도 근근이 견뎌온 일부 민족 자본가들은 독립을 위해 물질적 후원을 합니다. 또 새로 생긴 학교들과 또 전국적 조직을 가지고 있던 교회를 통해 배출된 교사·학생 중심의 지식인들, 식민지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상인·노동자·농민들이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삼일독립 운동의 전국적 확대의 계기가 되었고, 유교지식인을 제외하고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지식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삼일독립선언서를 보면, 조선왕조나 왕에 대한 충성에 관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독립선언서 어디에도 신분질서나 신분의식을 반영하는 언급이 없고, 오직 나라를 구하고 살리는 주체로서의 국민을 내세우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민주정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사제국주의의 폭력과 불의에 맞서 비폭력 평화와 정의, 도의와 진리를 내세우고,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 민족국가주의 시대를 넘어서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삼일독립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은 세계 강대국들의 지배와 침략에 맞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당시 모든 약소국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삼일운동은 중국의 5.4 운동과 인도의 독립운동에 직접 영향을 미쳤고, 다른 제3세계 식민지 민중들에게 큰 자극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삼일운동은 이후 약소국들의 독립 선언과 100개가 넘는 나라들이 독립하는데 하나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전쟁과 폭력에 기반한 국가주의를 넘어서 상생과 평화의 세계문명을 이뤄내고자 지역과 신분, 종교와 정파, 이념과 신앙, 남녀노소의 차이를 넘어서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손마다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외쳤던 운동이 바로 삼일독립운동입니다.

돌아오는 수요일, 사순절이 시작하는 성회수요일이자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세계평화를 생각하는 98주기 삼일절입니다. 이런 날에 친일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부 보수단체가 국정농단 세력을 옹호할 목적으로 태극기 집회를 계획했다고 합니다. 오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정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시장에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주인에게 이 가게는 무엇을 파느냐고 묻자 하나님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팝니다.' 여인은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고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행복과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인 하나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부인, 우리 가게에서는 열매를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사랑하는 생명 사랑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가르침과 행위로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심고 키우고 자라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씨앗을 심고 땀을 흘려 농사를 지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명을 키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심고 하나님 나라를 키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바로 알고, 또 아는 그대로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은혜의 해를 매 순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찾는다면, 오늘 여기에서 그 나라와 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하나님!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시고, 포로 되고 억눌린 자들에게 자유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매 순간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어, 우리 또한 예수님 따라 가는 곳마다 하나님 말씀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열매만을 따먹는 이가 아니라 씨앗을 뿌리고 노동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땀을 흘리며 보람을 느끼듯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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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