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설교] 구원의 축제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신명기 33장 26-29절, 요한복음서 2장 1-12절

[무엇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가?]

hanmoonduk_01
(Photo : ⓒ 김진한 기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

인터넷 상담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정말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너무 교회에 빠졌습니다. 이거 어떻게 고치는 방법이 없을까요? 정말 너무나 괴롭습니다. 매일 밤마다 아버지께 설교를 들어야 한다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해요.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제발 교회에서 벗어나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거기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음... 교회에 빠지셨다구요? 당신은 정말로 행운아입니다! 저희 아버진 불교에 빠져서, 지금 산에서 안 내려 오신 지 10년입니다! 교회에 빠진 걸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아버지, 보고 싶어요. T_T"

인생을 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직장과 가정의 생활도 행복하고, 만사형통이라 별 문제가 없다면 아마 종교가 생기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힘든 문제를 겪다가 주변의 소개로 종교생활에 발을 디디게 되고, 그것이 삶의 큰 위안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일상생활을 제쳐두고, 때론 주변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거기에 푹 빠져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전에 말씀 드렸던 우스개 이야기도 나온 것이겠지요!

종교라는 한자어는 "으뜸 가르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종교는 인간이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더욱 올바르고 의미 있게 고귀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돈과 욕심, 권력과 아집의 노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바른 종교의 역할입니다. 세상의 다양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도록 도전과 투신을 통해 더 깊은 세계로 우리를 초청하는 것이 또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이비 종교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체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자신의 종교단체로 끌어 들이고, 처음에는 잘해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단체나 교주, 소수의 이익을 위해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합니다. 반복되는 주입식 교육으로 왜곡된 신앙을 만들고 가치관을 바꿔서 정상적인 일상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요즘은 이단의 유혹이 너무 교묘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이단에 깊이 빠졌다가 나온 어떤 청년의 사례를 듣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초청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심리 상담사가 좋은 목사님을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그 목사님과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성경공부도 했답니다. 또 다른 기회에 선물 받은 티켓으로 친구와 함께 연극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연극 장소 전체가 바로 이단이 빌린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는 절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6개월 정도 이단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성경공부를 같이 하다가 재림하는 분이 그 단체의 총회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나서 나왔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청년 하나를 자신의 종교단체에 소속시키기 위해 1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미리 짜인 각본대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빚도 갚아 주는 일이 있고, 워낙 친절하게 잘 해주기 때문에 한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때가 악하고,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닌가 합니다. 참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합리적 이성과 균형 잡힌 감정, 그리고 선한 의지와 실천으로 이 사회에 빛이 되고 자신의 삶에도 기쁨이 넘치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의 말씀처럼 참된 신앙의 삶은 평화와 안전을 누리고, 경제적인 착취가 없고, 방패이시요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온갖 영적인 원수로부터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종교는 바로 이런 인간의 안녕과 복지와 해방을 위한 것인데, 잘못된 종교는 인간을 도리어 억압하고, 맹목적인 광신자가 되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기적과 표적]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의 말씀은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되어 갔다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이지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바로 물을 술로 만든 것이라면서 이 요한복음의 이야기를 근거로 얘기를 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보인 행동 때문에 머리를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약간 알쏭달쏭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요한복음서의 이 본문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다양한 암시와 장치를 곳곳에 설치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혼인잔치 집에 정결예법에 쓰는 여섯 개의 돌항아리가 있다는 것, 물이 언제 포도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일꾼들은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안다는 것, 그리고 이 표징이 첫 번째라는 것. 또 이 사건으로 예수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제자들은 또 예수를 믿었다고 요한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갈릴리 사역(1:14-28)을 통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드러냅니다. 마태는 산상설교(5-7장)를 통해서, 누가는 취임설교(4:16-30)를 통해 예수님의 첫 행적들을 보도합니다. 요한 또한 오늘 이 표징을 통해 예수가 누구이신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벌이시는지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 세상을 창조하신 빛이요, 생명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영광을 보았고,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외아들의 영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과 증언이 거짓이 아니라면, 정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면 구체적으로 어딘가에서 그 분의 활동과 활약이 펼쳐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바로 오늘 갈릴리 가나의 사건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려고 합니다.

표징이라는 말은 요한복음서에 모두 17번 나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경우 기적이 전체 복음서의 41%나 되는데, 요한복음서의 기적적인 표징은 딱 일곱 번입니다(물로 포도주를 만듦, 오천 명 급식, 물 위를 걸은 일,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베데스다 연못에서 앉은뱅이의 치유, 맹인으로 태어난 자의 치유, 나사로를 살린 일).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또 기적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며 열광합니다. 또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이 전파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의 기적은 다릅니다.

오늘 본문을 읽은 우리는 분명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물이 변하여 좋은 포도주가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물을 물항아리에 갖다가 부었을 때에 포도주로 변했는지, 물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결혼 잔치의 주인에게 가져다주었을 때에 변했는지, 물을 받은 사람들이 입을 대고 마실 때 포도주로 변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복음서 저자는 이 부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물이 포도주로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없습니다. 물이 언제 어떻게 포도주로 변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요?

[지금 새 시대가 열린다]

오늘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께서 하신 일은 궁극적으로 혼인잔치의 흥이 깨지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혼인잔치와 포도주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잔치를 베푸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25장 6절을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먹을 것, 마실 것이 충분치 못했던 고대 이스라엘인의 최대의 꿈은 기름진 것과 맑은 포도주를 마음껏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베푸시는 잔치, 누구나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이런 잔칫날은 언제 올까요?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읽으며 이런 날이 속히 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파가 있었지만 이들은 로마와 타협하여 도리어 민중을 억압하였고,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바리새파가 주변에 많이 있었지만 이들은 엄격한 율법 적용으로 도리어 사람들을 옭아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80%이상을 차지하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과 자유를 주는 참 하나님의 구원의 현실은 머나먼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오늘 예수님을 통해 이런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요한의 강조점은 시대의 마지막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에서 정결예법에 사용하던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합니다. 정결예법에 사용하던 항아리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유대교가 이제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율법의 시대는 가고 예수님의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것, 역사의 종말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요한복음서를 쓴 이들은 오늘의 기적을 통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또 다른 얼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과 고통을 없애시고, 모든 것을 창조 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실 때는 언제 오는가?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셨을 때, 세상을 위하여 새롭고 영원한 생명이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7,37-39; 12,31-32; 17,1-3). 아직 그 때는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요청하고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어머니, 그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실행하는 아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종말적인 기쁨의 때가 지금 여기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은 창조가 완성되는 일곱째 날 벌어집니다. 요한복음서는 세례요한의 이야기부터 날짜를 하나씩 세고 있는데, 가나의 혼인잔치가 벌어진 날은 바로 일곱째 날이 됩니다(1,29, 35, 43; 2,1). 다른 구절에서는 "다음 날"이라는 말이 반복되다가 갑자기 2장 1절에서 "사흘 째 되는 날"이라고 한 것은 예수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종말적 구원의 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부활과 관련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게다가 붉은 포도주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와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마지막 일곱째 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축제를 벌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매주일에 모여 서로 먹고 마십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이 표징은 예수님을 만나서 매 주일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음식을 나누던 이들의 체험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마지막 날의 잔치를 기다릴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매주일 예수님과 함께 잔치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요한복음서를 쓴 이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교회인가?]

오늘 요한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을 통해 새 시대를 알리는 나팔이 이미 울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새 시대를 체험한 이들이며 그 새로운 시대는 이전의 율법을 대체하고 마지막 날에 있을 잔치의 기쁨을 여기서 누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포도주도 좋지만 새 포도주가 훨씬 더 좋다고 자랑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단 관련 이야기도 했지만, 보통 종교나 이단 사설에 중독되는 현상은 사회가 암울하고, 현실의 삶이 너무나 비참한데, 기존의 종교가 충분히 답을 해주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사회에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진리를 갈구하고 참된 평안을 누리기 원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수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아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아직 자기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꾼들에게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해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의 어머니는 상황파악을 잘하고 그 문제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새 시대를 열려면 바로 지금 이 시대가 가지는 문제를 잘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누구인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사람을 양육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개 성숙하지 못한 공동체는 문제가 발생하면 당황하고 서로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공동체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의지를 모아갑니다. 이럴 때 합리적 이성이 필요하고, 동요하는 마음의 조절이 필요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요청됩니다. 폭력이나 비상식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탄핵 선고일이 가까워지면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가치관, 삶의 다른 환경으로 인해 누구나 두 집회 중 하나에 나갈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지 않을 자유도 있지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니까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와 특검을 위협한다거나,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의 집 주소, 자주 다니는 장소를 언급하며 협박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잘 살펴야 합니다. 이런 감정적 대응과 법의 무시가 바로 구시대의 작태이고, 새 시대로 가는 길목을 막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묻지마 믿음"을 강요하면서 성서에 대해 궁금하거나, 기독교 교리나 진리에 대해 가지는 합리적 의심을 막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반드시 물질이 필요하고 그래서 헌금을 합니다. 헌금은 기쁜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해야지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운영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모든 교인들이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수의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성직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목사 마음대로 하는 독재나 권위주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의 전횡을 막으려면 교인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스스로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물이 포도주를 바뀐 사실을 안 사람들은 일꾼이었습니다. 연회장 즉 잔치를 맡은 이는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사람,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을 헌신했던 사람,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공동체에 대해 알고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때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따라 물을 포도주로 만듭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것이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때를 앞당겨야 한다고 요한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었고, 어머니 마리아는 지금 해야 한다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에 목회를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당장에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후 집회 시간에 신도회가 월례회로 모이시는데 신도회별로 우리교회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 신도회가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잠깐 의논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지속시키게 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됩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웅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과감하게 나설 필요도 있습니다. 손님으로 혼인잔치에 왔지만 주인과 같은 마음으로 나설 때 모두가 즐거운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교회의 머리요, 주인은 예수님이시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으니 우리 모두가 주인과 같은 마음을 지닙시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쁘고 즐거울 수 있고, 지금 여기서 당장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함께 직접 나섭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하여 새 시대를 열고, 날마다 구원의 축제를 베푸실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기쁨의 잔치를 베푸시고 우리를 초대해 주시는 하나님!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때로 그 행복한 시간을 깨트리고, 소중한 시간들을 망치는 위기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가 온전히 주님 앞에 나아와 지혜를 구하게 하시고, 기도하며 말씀 가운데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게 하여 주소서. 참고 견디되 주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노력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제나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