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독교 언론은 하나님 말씀이 육화된 네 번째 형태"
서광선 박사, <베리타스> 제2대 회장 취임 인터뷰(1)

입력 Jun 15, 2017 09:40 AM KST

편집자 주] 본지는 제1대 이장식 박사(한신대 명예교수)의 회장 임기만료에 기하여 제2대 회장으로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본지 논설고문인 서광선 박사를 모셨다. 서광선 회장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해방정국, 군사독재정권,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구하는 삶을 올곧게 살아왔다. 그리고 다년간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의와 평화를 외치다 해직 당하기도 했다. 본지는 이러한 서 회장의 연륜과 철학 및 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함께 어우러져 기독교 언론의 방향을 계도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서 회장의 취임을 기념하며 서 회장의 언론관, 신앙관, 사회관 등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 자리에는 김진한 대표와 이인기 편집국장이 배석했다. 대담은 2부로 나누어 전재될 예정이다. (대담 정리 = 지유석 기자)

-. 우선 베리타스가 창간 10주년을 맞는다. 덕담 한 마디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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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김진한 기자)
▲베리타스 2대 회장 서광선 박사가 최근 종로 5가 신문사 사무실에서 진행된 공식 취임 인터뷰에서 편집국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간 <베리타스>의 독자로, 칼럼 등을 기고했다. 또 논설 고문으로서 참여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항상 독자의 시선에서 <베리타스>가 다른 기독교 인터넷 언론과 차별되는 지점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바라봐왔다. 구성원들이 한국교회의 문제점,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에 대해 기독교적인 시선에서 정론을 펼치고 있다고 본다. <베리타스>가 에큐메니컬, 즉 교회 일치를 추구하고 있기에 특정 교파에 속해 그쪽 입장만 대변하는 부담스러운 입장도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에큐메니컬 정신에 입각해 한국 교회와 사회, 정치, 타종교까지 광범위하게 취재했고,, 이 과정에서 에큐메니컬 언론의 정체성을 왜곡하지 않고 견지하느라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나름의 정체성을 지켜온데 감사하고, 축하한다.

-. 회장직을 맡게 됐다. 회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조심스럽고 떨린다. 인터넷이든, 종이 신문이든 언론사 회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다 은퇴해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데 중책을 맡기니 말이다. 이 참에 온라인 언론에 대해 배우고,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회장직을 맡게 됐다.

-. 기독교 언론은 어떤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는가?

먼저 구체적인 이야기에 앞서 기독교 언론의 신학이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생각해봤다. 그러던 차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이 떠올랐다. 말씀은 육신이 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말씀을 전파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로고스는 언론과 연결된다고 본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세 가지 형태로 육화돼 나타난다고 했다. 첫째가 글자화된 성서이고 두 번째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말씀, 세 번째가 설교자의 입을 통해 매주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이다. 기독교 언론을 고민하면서 칼 바르트의 이 말이 떠올랐다.

난 기독교 언론이 하나님 말씀이 나타나는 네 번째 형태라고 생각한다. 지면과 인터넷 화면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해석해준다는 말이다. 이걸 기독교 언론의 신학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이 대목이 기독교 언론에 종사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의 신학적 입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이냐, 또 하루하루 일어나는 정치적 격동의 와중에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이냐 등이다. 단순히 말씀을 전파하는 수준을 넘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정치가 과연 무엇이냐? 이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비추어서 말하는 것과 동시에 성서에 비추어 오늘의 사회가 어디로 향해가고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때 사회, 정치, 정권을 비판하고,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모든 근거는 성서다. 성서를 텍스트로 해서 오늘의 사회적 현상에 비추어 성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동시에 성서의 입장에서 오늘의 사회문제를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느냐를 선포하는, 양면적인 일을 이뤄나가야 한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 한국 사회는 '보수 대 진보'로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교회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성소수자, 이슬람 확산을 두고 갈등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갈등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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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김진한 기자)
▲베리타스 2대 회장에 공식 취임한 서광선 박사가 취임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핵심은 반공 이데올로기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교회의 우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신앙이나 신학의 모든 문제를 반공이라는 잣대 하나로 판단하려 든다. 또 반공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논하고, 인권, 다양성, 포용성을 신봉하는 언론이나 사람을 탄압한다. 이런 행태는 중세시절 횡행했던 마녀사냥과 다름없다.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인간이 천부적으로 가진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교리에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 이단으로 몰아 화형을 가했다. 반공 이데올로기 역시 이와 비슷하게 편협하고, 독선적이다. 반공은 오늘날의 마녀사냥인 셈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 말씀보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시했다. 말하자면 우상이 된 것이다. 이 우상은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핵심으로 여기고 회개해야 한다. 다른 신앙이나 신학을 지닌 이들을 죄악시하고, 이단 낙인을 찍는 행태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진다.

-.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러나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반공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종북 프레임'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여전히 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모양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보는가?

한국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무서운 건 분단과 한국전쟁일 것이다. 해방 직후 북한은 공산당이 집권했고, 남한엔 미군정이 실시됐다. 이때만 해도 기독교는 북한에서 융성하고 부흥했다. 공산주의의 무신론에 영향 받은 북한 공산정권은 기독교가 집권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이라고 판단해 가장 먼저 교회를 적대시했다. 김일성의 가족사는 기독교와 관련이 깊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에도 기독교의 지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옛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정권을 잡았기에 기독교를 적대시했다.

기독교는 공산당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당했다. 선친께서도 기독교도 연맹 가입을 반대하고, 반공 설교를 하시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납치돼 총살당했다. 순교의 아픔을 겪었을 정도로 공산당과 기독교는 적대적이었다. (편집자 주: 서광선 회장의 부친은 함경북도 출신의 서용문 목사로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경찰에 끌려가 구타를 당했고, 해방 이후엔 공산체제에 반대하다가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군에게 총살을 당했다. 한국순교자기념사업회는 "서 목사의 시신은 대동강 하류에서 발견됐으며, 발견 당시 온몸에 총상이 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 공산정권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남한에 온 기독교인들은 반공을 내세운 이승만 정권과 미 군정당국에게 보호를 받았다. 이때부터 기독교 정체성이 반공과 결합하기 시작했고, 이후 이들은 권력도 잡을 수 있는 권력집단으로 커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서북청년단이다.

1947년과 48년 사이 미 군정 당국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남한 사람의 80%가 북한 공산정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자 이승만 정권은 긴장했다. 김일성이 오판한 것도 바로 이런 여론조사 결과였다. 만약 남한에 옛 소련군이 진주하고, 미국이 기독교인이 많은 북한에 들어갔으면 잘됐을지도 모르겠다. 남한에서 좌우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나?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은 한국 기독교에서 반공주의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난 순교자의 아들이다. 나는 평화를 말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말하고, 북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화해해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면에서 순교자 아들의 말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전에 북한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때 '아버지, 제가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원수라도 사랑해야 순교자의 뜻을 실제적으로 펴는 것 아닙니까?'하고 고민했었다. 이런 가운데 반공 이데올로기 문제를 고민한다. 거듭 말하지만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은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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