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16세기 종교개혁운동과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의 한계(II)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입력 Nov 02, 2017 07:35 PM KST

편집자주] 기독교한국침례회역사신학회(침례교역사신학회)와 침례신학대학교 침례교신학연구소가 10월 16일(월), 30일(월) 종교개혁 500주년기념 논문발표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주제는 "자유교회 전통의 관점에서 본 종교개혁"이다. 이 발표회에서 김승진 교수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과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의 한계"를 발제했다. 전 편에 이어 발제문을 전재한다.

2. 근원적 종교개혁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조지 윌리암스 박사는, 종교개혁 당시에 교회는 어디까지나 예수 믿은 신자들(believers)의 공동체여야 하고, 따라서 중세 1,000여 년 동안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이었던 유아뱁티즘은 성경적이지 못한 인간적인 발명품(human invention)이어서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며,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근원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이라고 명명하였다(William R. Estep, Renaissance and Reformation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6], 197). 기본적으로 근원적 종교개혁가들은 교회의 뿌리인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를 "회복"(restitute, restore)하고자 하였다. 윌리암스 박사는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과 신령주의자들과 복음적 이성주의자들이 권위의 원천이 무엇이냐에 따라 약간씩 신앙의 강조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믿음의 뿌리를 찾아가고자 했다"(cutting back to that root)는 점에서 위의 세 그룹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바로 이런 점이 그들의 개혁을 "근원적 종교개혁"이 되게 했다고 진술하였다(G. H. Williams and A. M. Mergal, Spiritual and Anabaptist Writer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7], 22).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이 16세기에 추구했던 신앙공동체가 바로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원시기독교의 교회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Early Church) 혹은 "신약성서적 교회"(New Testament Church)는 세속정치에 물들지 않은 교회였고, 세속정치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머리로 하고 그 분만을 따랐던 "신자들의 공동체"(believers' community)였다. 그들은 단순히 16세기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는데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그리고 영국국교회는 여전히 유아뱁티즘이라는 로마가톨릭적 잔재를 유지하고 있었고,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구약적이고 신정정치적(theocratic)이어서, 신약성서적 교회의 모습으로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윌리암스 박사는 근원적 종교개혁가들을 크게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 신령주의자들, 복음적 이성주의자들 등 세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이러한 분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서 각 부류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재세례파"라고 하면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집단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물론 근원적 종교개혁가들 가운데 신령주의자들(Spiritualists) 중 일부는 지나치게 성령의 직통계시를 강조하여 너무나 주관적이고 종말론적이고 폭력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하였고 예수님의 교회("나의 교회," 마16:18)를 이 땅 위에 세우고자 하였다.

1)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Biblical Anabaptist)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있어서 권위는 바로 성서, 특히 신약성서였다. 이들은 지상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교회(visible church)를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가시적인 교회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믿는 신자(believer)가 되는 것이 전제조건이었고, 자신의 신앙을 뱁티즘을 통해서 고백해야 했다. 이들은 뱁티즘의 형식보다도 내용, 즉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는 신자에게만 뱁티즘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종교개혁 당시에 이들은 물을 머리 위에 붓는 관수례(Affusion)를 주로 행하였다(김승진, 「근원적 종교개혁: 16세기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의 역사와 신앙과 삶」, 42). 이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성서에 집착하는 "천진난만한 성서주의자들"(naive biblicists)이었다.

초창기의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쯔빙글리의 개혁에 동참했던 제자들이었다. 그는 "예언모임"(Prophezei, Prophecy Meeting)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희랍어 성경을 읽히며 제자훈련을 시켰다.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 펠릭스 만쯔(Felix Manz), 마이클 자틀러(Michael Sattler), 게오르게 블라우락(George Blaurock) 등 이후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이라고 불렸던 제자들이 이 모임에 참여하였다. 발타자르 휩마이어(Balthasar Huebmaier), 한스 뎅크(Hans Denck), 필그람 마펙(Pilgram Marpeck), 제이콥 후터(Jacob Hutter) 그리고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등도 성서적 아나뱁티스트에 해당되는 개혁가들이었다.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순수한 사도적 신앙과 세속국가나 그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때 묻지 않은 신앙을 견지하고자 했으며,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로마가톨릭교회와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로부터 오는 격심한 핍박을 기꺼이 감내하며 순교하기를 각오한 신자들이었다. 오늘날 그들의 "직접적인 역사적 후예들"로는 메노나이트들(Menonnites), 후터라이트들(Hutterites), 그리고 아미쉬(Amish)가 있다. 또한 이들의 "간접적인 신앙적 후예들"에는 침례교인들(Baptists), 퀘이커 교도들(Quakers,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크리스천 교회(Christian Church),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 교회(Brethren in Christ Church), 그리고 제자들(Disciples) 혹은 자유교회(Free Church)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있다.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자유교회 전통" 혹은 "신자들의 교회 전통"(believers' church tradition)의 원천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2) 신령주의자들

"신령주의자들"은 신앙생활의 권위를 성령님(Holy Spirit)께 두었다. 성경 말씀보다도 성령님의 조명과 직통계시를 보다 더 중요한 권위로 인정하면서 역동적인 신앙을 중요시하였다. 자연히 이들은 지상의 가시적인 교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만을 중시하여 자칫 신비주의와 극단적인 주관주의(extreme subjectivism)에 빠지곤 하였고, 지상에 "새 예루살렘"이 도래한다고 믿는 위기적인 시한부 종말론에 집착하곤 하였다.

또 이들 중 일부는 당시의 피압박계층이었던 농민들이 폭동이나 전쟁을 일으킬 때 선두에 서서 지휘하기도 하였고, 무력을 동원하여 이 지상에 천년왕국의 건설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독일 농민전쟁(German Peasants' War, 1524-1525)이나 뮌스터 폭동(Muenster Revolt, 1534-1535) 사건도 이런 부류의 시한부 종말론에 빠졌던 극단적인 신령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불미스러운 사건이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신령주의자들로는 토마스 뮌쩌(Thomas Muenzer, 1490-1525), 니콜라스 스토르크(Nicholas Storch)와 같은 쯔비카우 예언자들(Zwickau Prophets), 카스파르 폰 스벵크펠트(Carspar von Schwenckfeld), 세바스챤 프랭크(Sebatian Frank), 그리고 뮌스터 폭동의 주역이었던 얜 마티스(Jan Matthys)와 라이덴의 얜(Jan de Leiden) 등이 있었다.

3) 복음적 이성주의자들(Evangelical Rationalists)

"복음적 이성주의자들"은 신앙생활에서 인간의 이성(Reason)을 권위로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성경말씀이나 기독교의 주요교리들 가운데서 이성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들만 받아들이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론인 삼위일체론을 부인하는 자들(반삼위일체론자들, anti-trinitarians)이었고, 성서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내용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들(반초자연주의자들, anti-supernaturalists)이었다.

대표적인 복음적 이성주의자들은 파우스투스 소치너스(Faustus Socinus), 마이클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후안 드 발데스(Juan de Valdes),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 게오르게 비안드라타(George Biandrata) 등이었다. 이들은 18세기의 이신론자들(Deists)과 계몽주의자들, 그리고 19세기말의 신학적 자유주의자들(Theological Liberals)의 출현을 예고하는 자들이었다.

IV.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의 한계(본장은 필자의 저서,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서울: 나침반출판사, 2015]의 제9장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319-34]의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임).

일부 양식 있는 크리스천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16세기 초의 성직계급제도와 관료적인 교권체제의 타락한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개혁가들의 주장에 공감하였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들로부터 정치적인 후원을 입었던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이 지상에 출현시킨 교회들은, 중세 1,000여년의 전통을 가진 로마가톨릭교회를 많은 영역에서 개혁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완성적이었다(Williams, The Radical Reformation, "Introduction," xxvi). 신약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16세기의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이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 국가교회 혹은 시교회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16세기 당시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세속권력가들의 후원을 입으며 개혁활동을 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교회가 국가나 시 권력과 결탁하고 있었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초대교회 혹은 신약성서적인 교회는 세속국가나 세속권력과는 무관한 교회였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로마제국이나 그것의 식민정부와 통치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교회였다. 그런데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16세기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영적인 타락과 성직자들의 비행에 비판을 가하며 당시의 교회를 "개혁"(reformatio, reform)하기는 했지만,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교회, 즉, 세속권력과 무관하거나 분리되어 있었던 교회를 "회복"(restitutio, restitute)해내지는 못하였다.

다시 말해서 313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에 의해 선포된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 이전의 교회를 재현해내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교회는 국가권력이나 시권력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었고 교회는 국가권력과 공생(symbiosis)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16세기 당시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의 교회는 국가교회(state church)나 시교회(city church) 체제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로마가톨릭교회가 중세시대에 유럽 내에서 모든 국가들의 국교였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교체제가 헌법적으로 해체되었던 것은 공무원을 채용할 때 종교가 시금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규정한 미국의 연방헌법(Federal Constitution, 1789) 제6조와 새로운 공화국에서는 국교를 제정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한 제1차 수정헌법(The First Amendment, 1791)에서 최초로 명문화되었다. 그 이후로 미국에서는 로마가톨릭교회는 물론 국교나 시교로 시작된 프로테스탄트교회들도 하나의 교파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의 기독교가 국교형기독교(State Christianity)였다면 미국의 기독교는 교파형기독교(Denominational Christianity)가 된 것이다.

2. 유아뱁티즘과 뱁티즘의 방식

1) 유아뱁티즘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공통적으로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이었던 유아뱁티즘(유아세례, Infant Baptism) 행습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 어디에도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에게 뱁티즘을 베풀었다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셨고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 말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 부모나 어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필자 주)을 가지라고 권면하셨고 그들에게 "안수"(laying on hands)를 베푸셨지만, 성경 어디에도 인지능력도 없고 신앙고백을 할 수도 없는 갓난아기(영아)나 어린 아이(유아)에게 뱁티즘을 베푸셨다는 기록이 없다. 예수님이 안수보다 신학적으로 더 중요하고 더 복잡한 절차를 요하는 "뱁티즘"을 그들에게 베푸셨다면, 왜 그 사실이 네 복음서들 중 한 곳에서라도 기록되지 않았겠는가?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영아나 유아에게 뱁티즘을 베푸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인 지상명령(마 28:19-20)에서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뱁티즘을 베풀라"고 하셨다. 여기서 제자로 삼아 뱁티즘을 베풀라고 하신 것은 "제자가 된 자들," 즉, "예수 믿은 자들"에게 뱁티즘을 베풀라고 유언하신 것이다. "제자가 된 자들과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뱁티즘을 베풀라고 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또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가 (예수님의 분부를) 배워 지킬 수 있는가?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유아들에게 뱁티즘을 베푼다"고 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고, 이 유언을 받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 역시 그들의 머리속에 유아뱁티즘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유아뱁티즘을 베푼 적이 없었고, 서신서들에서 그것을 언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집안 식구들 모두가 뱁티즘을 받았다"는 진술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가문뱁티즘, Household Baptism, 행 10:44-48; 행 16:31-34; 행 16:13-15, 40; 행 18:8 등), 집안 식구들 가운데에는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추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들에서도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말씀이 선포되거나 집안 식구들이 말씀을 듣거나 성령을 받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6장에 등장하는 빌립보 간수의 경우,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32), "자기와 온 가족이 다 뱁티즘을 받은 후"(행 16:33),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34)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의 말씀을 전해 듣거나 하나님을 믿은 집안 식구들이 뱁티즘을 받았지, 갓난아기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뱁티즘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뱁티즘을 베풀지 말라는 명령이 없지 않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는 성경해석에 심각한 오류를 낳게 된다. 불신자에게 뱁티즘을 베풀지 말라는 명령이 없다고 해서 불신자에게 뱁티즘을 베풀어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개와 송아지에게도 (개와 송아지에게 뱁티즘을 베풀지 말라는 명령이 없으니) 뱁티즘을 베풀어도 된다는 말인가? 예수님이 유언으로 명령하신대로, 모든 민족을 제자삼고 "제자가 된 자들에게," 즉, "예수를 믿은 신자들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에 충실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유아뱁티즘 행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아뱁티즘을 옹호하는 종교개혁가들과 신학자들은 구약의 할례(Circumcision)가 신약에 와서는 유아뱁티즘이 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신약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말이 없다. 유대인 부모들은 아들이 육체적 출생을 하면 8일만에 그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했다. 그리고 이방인 남자가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이 되고자 할 때 그는 할례를 받았다. 구약성경에서 할례란 "육체적인 이스라엘"(Physical Israel) 민족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들(남자)에게만 행해졌던 의식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뱁티즘이란 교회, 즉, "영적인 이스라엘"(Spiritual Israel, "새 이스라엘" New Israel)로 들어가기 위한 의식이었다(행 2:38-42). 이 공동체는 남녀 상관없이 오직 거듭난 사람(요 3:3)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동체였고, 따라서 위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거듭난(중생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동체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뱁티즘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차별 없이 베푼다는 점이다. 구약의 할례가 신약에서 유아뱁티즘으로 이어져 왔다고 믿는다면, 유아뱁티즘은 아기가 태어난 지 8일만에 베풀어야 할 것이고 오직 남자 아기에게만 베풀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 가정에서 행해진 할례가 신약성경에서 유아세례가 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성서적인 근거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발명품이며 인간적인 전통일 뿐이다. 유아뱁티즘 전통은 율법과 복음을 뒤섞는 것이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혼합시키는 것인데, 이는 사도 바울이 무척 싫어하고 비판했던 것이었다.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교회는 "영적인 유기체"(spiritual organ)이다. 영적인 출생, 즉,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체험을 한 자만이 교회가 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할례"(spiritual circumcision, 마음의 할례), 즉,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교회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 부모로부터 단순히 자연적인 출생(육체적인 출생)을 해서 유아뱁티즘을 받는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가 유아뱁티즘이라는 의식을 받는다고 해서 원죄를 사함받는 것도 아니고 자범죄를 사함 받는 것도 아니고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blood)으로나 육정(will of flesh)으로나 사람의 뜻(will of man)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but of God)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불신자나 영아 혹은 유아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은 "마른 죄인"(dry sinner)을 "젖은 죄인"(wet sinner)으로 만들뿐인 것이다.

유아뱁티즘은 대표적인 "대리종교"(Proxy Religion,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종교행위를 가리킨다. 고해성사도 또 다른 대리종교 행습이며, 목회자를 지나치게 의존하는 신앙도 그러하다-필자 주) 가운데 하나이다.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에게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교회에 교적을 두고 있는 그들의 부모를 보고 그들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대리종교를 배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 각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보로 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것(direct access to God the Father)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God the Father)이시지 "할아버지 하나님"(God the Grandfather)이 아니시다.

침례교회를 비롯한 자유교회 전통에서는 유아뱁티즘을 행하지 않고 헌아례를 한다. "헌아례"(Child Dedication Service)란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의 "부모"(parents)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키우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헌신의식이다. 헌아례의 대상은 아기의 부모나 아이의 부모이지 아기나 아이가 아니다. 오늘날 유아뱁티즘을 행하는 교회에서도 실제로는 헌아례적인 의미로 행하고 있다. 부모로 하여금 그 아이를 믿음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아뱁티즘 의식의 대상은 부모가 아니라 그들의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다. 아기나 아이가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헌신할 수 있는가? 그에게 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이 있는가? 아기나 아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가? 헌아례적인 의미로 유아뱁티즘을 행하는 것이라면, 아기나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부모를 대상으로 해야지, 왜 아무런 지적인 혹은 영적인 의식도 없는 아기와 아이를 대상으로 하여 뱁티즘을 베푸는가? 유아뱁티즘은 유아에게 뱁티즘을 베풀면 원죄가 사함 받는다는 로마가톨릭적인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의 잔재요 관습이다. 이는 결코 신약성서적인 신앙이 아니다.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가 죽었을 때 그 영혼이 구원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유아뱁티즘을 행하지 않는 침례교회에서도 일반적으로 긍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고 그것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는 스스로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죄인인 줄도 모르고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지 왜 부활하셨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책임(accountability)을 질 수 없는 그에게 책임을 물으시겠는가?

필자는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이 "오직 믿음!"(sola fides!), "오직 은혜!"(sola gratia!)를 그토록 부르짖었으면서도, 중세적인 유아뱁티즘 전통을 타파하지 못하고 그 행습을 그대로 견지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개혁은 불완전했으며 미완성적이었다고 본다. "오직 믿음!"을 주창하면서도 신앙고백을 할 수도 없는 갓난아기와 어린 아이에게 뱁티즘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가당착이었다. 성서적인 뱁티즘은 "내면적, 비가시적, 영적 체험을 외면적으로, 가시적으로,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Biblical Baptism is "an outer, visible, physical expression of an inner, invisible, spiritual experience")이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16], 473-5). 내면적인 거듭남의 체험이 없이 받는 뱁티즘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물을 적시는 것일 뿐이다.

2) 뱁티즘의 방식

뱁티즘의 방식에 있어서도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초대교회 혹은 신약성서적 교회가 행했던 "침수례"(침례, immersion)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1311년 라벤나종교회의(Council of Ravenna)에서 살수례(sprinkling)를 공식적인 뱁티즘 방식의 표준으로 결정을 한 바 있었다(William Clapper, "A Short History of Immersion").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교회전통을 그대로 답습했다. 쟝 깔뱅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뱁티즘의 초대교회적인 형식은, 바로 "침수례"(immersion)이었음이 명백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뱁타이즈'라는 말은 '침수시킨다'(잠근다)는 뜻이며 고대교회에서는 침수례를 행한 것이 분명하다"("Yet the word 'baptize' means to 'immerse,' and it is clear that the rite of immersion was observed in the ancient church," John Calvin, The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I. II, ed. & trans. John T. McNeil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1], 『기독교강요』 Ⅳ. 15. 19).

그러나 깔뱅에게 있어서 뱁티즘의 방식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직자 중심주의(sacerdotalism)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화려한 행렬을 동반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예배의식에 대한 혐오의 동기에서, 뱁티즘의 방식은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William L. Lumpkin, A History of Immersion [Nashville: Broadman Press, 1962], 노윤백 역, 『침례의 역사』 [서울: 침례회출판사, 1976], 32-3). 그는 "뱁티즘 받는 사람을 완전히 물에 잠그느냐, 세 번 잠그느냐, 한 번만 잠그느냐, 또는 물을 부어 뿌리느냐 하는 이런 세밀한 점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라에 따라 교회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옳다"(Calvin, The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I. II, 『기독교강요』 Ⅳ. 15. 19)고 말함으로써, 그 방식에 대하여 적극적인 언급을 회피하였다. 뱁티즘의 방식에 대한 깔뱅의 무관심과 무책임한 언급은 서구의 많은 프로테스탄트교회들과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아 왔던 한국의 기독교계에 적지 않은 혼란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신자의 뱁티즘에 주된 관심을 가졌고, 그들 역시 초대교회에서는 침수례가 행해진 것을 알았지만, 핍박을 피해서 도망을 다니거나 실내나 야외나 동굴에서 뱁티즘을 베풀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주로 행했던 뱁티즘의 방식은 물을 머리 위에 붓는 "관수례"였다. 침례교회에서도 초창기에는 아나뱁티스트들의 영향으로 관수례를 행했으나, 키핀원고(Kiffin Manuscript)라는 문서에 의하면 영국 특수침례교회에서 최초의 침수례(immersion)가 베풀어졌던 것은 1641년이었다. William Kiffin이 기록한 회의록인 "키핀원고"에 그렇게 명기되어 있다(김승진, "침례교회의 기원과 영·미·한 침례교회 역사," 침례교신학총서집필위원회, 『침례교 신학총서』 [서울: 요단출판사, 2016], 582). 그리고 3년 후인 1644년에 특수침례교회 최초의 신앙고백인 "제1차 런던신앙고백"(The First London Confession)에서 "전신을 물속에 잠그고 빠뜨려서"(dipping and plunging the whole body under water) 뱁티즘을 베푼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William L. Lumpkin, Baptist Confessions of Faith [Valley Forge, PA: Judson Press, 1983], 167).

뱁티즘(Baptism)의 성서적인 용어는 "침례" 혹은 "침수례"인데, 한국교회에서는 주로 "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희랍어 "바프티조"(baptizo)라는 단어는 1세기 당시의 로마사회에서는 "배가 바다에 침수되다, 어떤 물건을 물속에 빠뜨리다, 옷감을 물속에 집어넣어 염색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로마서 6장 3-5절과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 그리고 신자의 그 분과의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 "바프티조"라는 낱말이 사용되었다. 여기서도 "죽음과 장사와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체험한 적이 없는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바프티조"라는 단어가 1세기 당시에 "씻는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씻는다"는 의미의 단어는 "루오"(luo)나 "니프토"(nipto)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희랍어 "바프티조"(baptizo, 동사)나 "바프티스마"(baptisma, 명사)라는 말은 전신이 물속에 잠겨서,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침례를 통해서 상징하고자 하는 원뜻은 "죽음과 장사와 부활"인 것이다. 세례를 약례(略禮)라고 하는데, 상징한 것을 약식화하면 원뜻이 파괴되거나 왜곡되어 버린다. 침례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라는 원뜻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인데, 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다보니 뱁티즘은 "죄를 씻는 표"라는 의미로 변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죄를 씻는 표"라고 정의하면 뱁티즘을 받으면 죄가 씻기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죄 씻음 받은 표"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기독교는 "죽고 사는"(die and live) 종교이지 "씻고 말려주는"(wash and dry) 종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제자라면 "뱁티즘을 베풀어라"(마 28:19)라는 예수님의 유언을 내용("신자의 뱁티즘")에 있어서 뿐 아니라 형식 혹은 방식("침수례")에 있어서도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계속) 

*발표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vN99tPerEw&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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