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의학적 '영생' 기술이 가리지 못할 '죽음'의 의미와 교훈
김소윤 이관표 교수 '현대 의학의 영생 기술과 그 신학적 성찰' 논문에서 죽음의 의미 해석

입력 Nov 12, 2017 08:00 PM KST
theology
(Photo : ⓒ한국신학연구소)
▲신학사상 178집 겉표지

복제양 돌리를 가능케 했던 유전자 편집기술(Gene Editing)은 이제 동물 유전자 뿐만 아니라 인간 유전자도 사정거리 안으로 끌어올 정도로 진보되었다.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편집기술'이 식물에게 적용될 때 불거질 문제는 GMO에 대한 찬반논쟁 등에 불과하지만,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비교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게 된다. 동식물 유전자 조작의 결과물은 인간에게 '소비'되어 결국은 없어지지만, 인간 유전자를 조작하면 이론적으로는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어 계속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여기고 특히 인간 생명의 근원을 창조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믿는 그리스도교에 상당한 도전이다. 인간이 자기 생명에 대한 주도권과 결정권을 쥐고 생명을 연장하고 심지어 끝나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기술이 첨예한 윤리적 논란과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치명적 오용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부정적 측면에도 결국 기술은 진보를 거듭할 것이다.

최근 연세대 김소윤 교수(의학)와 이관표 인천대 교수(기독교윤리)가 이 문제와 관련해 「현대 의학의 영생 기술과 그 신학적 성찰」 논문을 발표하면서 해석한 '죽음의 의미'와 '죽음의 교훈'이 눈길을 끈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공동체에 속한 모든 인간의 생명과 삶은 타자의 죽음과 같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며, 타자의 희생 없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가능케 하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

"매 끼니의 식사도, 우리가 걸치고 있는 옷도, 또한 우리가 숨 쉬는 공기까지도 우리 스스로가 직접 만들어내어 취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다른 것들이 그들의 생명을 잃고 희생함으로써 산출되는 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의 연장을 위해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른 이들의 희생을 통해 살기에 우리 역시 다른 것들의 생명을 위한 희생으로 내줄 수 있어야 하며...."(논문 중 발췌)

저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타자의 생명을 위한 희생이고 이 희생(즉 죽음)을 통해 세계의 생명이 유지되어 왔으므로, 자기의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고 그저 자신만 영원히 살고자 하는 생각은 개인 이기주의를 넘어 세상을 망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들이 제시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모두가 함께 타자를 위해 자신을 제한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저자들은 유전자 조작기술(텔로미어 및 유전자 가위)이 가진 긍정적 입장들도 기술했는데, 여기에는 ▷창조주가 인간 창조 후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으므로 영생기술이 곧 신의 뜻일 수도 있다는 것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이 공동창조자 지위로 신의 창조작업에 동참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 즉 ▷인간이 스스로 획득한 영생은 인간의 자기중심주의로 귀결될 뿐이고 ▷영생 기술은 죽음의 극복이 아닌 죽음의 연기에 불과하며 ▷이 기술을 적용받을 수 있는 계층이 한정되므로 사회경제적 차별로 연결될 것이라는 분석도 아울렀다.

이 논문은 신학사상 178집(한국신학연구소 출판, 2017 가을)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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