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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생수를 경험한 사마리아 여인의 주체선언
이병학·한신대 신학과 은퇴교수

입력 Aug 26, 2019 11:05 PM KST

3. 생수를 경험한 사마리아 여인의 주체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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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시스토 바달로치오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예수는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요구한다. 그 여자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파탄이 난, 죄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결코 창녀도 아니고, 이 남자에서부터 저 남자에게로 옮겨가면서 이득을 취하면서 사는 경박한 여자도 아니다. 그녀에게 남편을 불러올 것을 요구한 예수는 그 여자의 죄를 찾으려고 뒷조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그러한 요구를 한 것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그녀의 참된 생명에 대한 갈증이 바로 그녀가 강요당하고 있는 억압적인 환경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아주 짧게 그리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것은 억압적인 남편 혹은 남자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주체로 홀로서기를 시도하겠다는 주체선언이다. 이 선언은 불의한 권력관계에 대한 저항이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평등한 형제자매적인 공동체에 대한 희망이다. 지금까지 그녀를 동여매고 있던 억압적인 환경으로부터 그녀 자신을 해방시키는 첫 단계가 이 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서 생수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았기 때문에 이러한 선언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결혼이 억압적인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같이 동거하고 있는 남자는 슬픔과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인생의 동반자는 아니다. 그녀는 동거하는 억압적인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살았다.

예수는 그 여자의 대답을 듣고 그녀의 선언을 옹호한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그녀는 자신의 홀로서기 선언을 지지하는 예수의 말을 듣는 순간에 가슴속에서 맺힌 한이 풀려지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생수"가 가슴속에서 일어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녀는 예수를 통해서 자신을 격려해주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녀가 동거하는 억압적인 남자를 위해서 물을 길어서 집으로 운반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한, 그 여자의 가슴속에서 생수가 솟아나지 못할 것이다.

예수는 그녀의 선언을 지지해주는 말을 다시 한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왜 그녀는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는가? 그 당시는 여자가 먼저 이혼을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였다. 그러므로 그 여자가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는 것은 단지 차례대로 남편과 사별했거나, 혹은 거듭해서 이혼을 당했기 때문에 재혼했을 것이다. 사별하거나 이혼한 상태에 있는 여자는 다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이미 여러 번 결혼을 했고 또한 점차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결혼의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한 남자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 버림받을 지도 모르는 불안한 동거 생활을 해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가장 가슴 아픈 슬픔과 고난과 실망과 무력감을 연속적으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예수는 그녀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보듬었고 그녀의 주체선언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4. 예배를 통한 민족분단의 극복과 민족통일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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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안니발레 카라치(Antonio Carracci, 1583-1618)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와 나눈 대화를 통해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오래 된 적대감이 두 사람 사이에 눈 녹듯이 완전히 제거된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했다. 이제 추체로 변화된 그녀는 그러한 치유와 화해의 경험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의 공동의 경험이 되도록 함으로써 오랜 민족분단으로 인한 상호간의 적대감을 풀고 민족통일을 이루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민족분단을 유지시키는 종교적 차별의 현실에 대해서 묻는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녀는 이제 예수를 "선지자"라 인식했다. 그녀는 마치 예수가 유대인들의 대표인 것처럼 2인칭 복수로 그를 호칭하면서 유대인들이 그리심 산에서의 사마리아인들의 예배를 인정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의 유대인들의 예배만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삼 산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룩한 장소이고,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장소이다. 그녀는 "우리 조상"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자신이 사마리아인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말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세겜에 있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참조, 신 11:29; 27:12). 또한 예루살렘은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선조들과 결부되어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예수의 시대에 그리심 성전은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어 없어졌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 서 있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는 그 여자를 사마리아인들의 대표로 간주하고 "너희"라는 2인칭 복수로 말한다. 예수는 왜 사마리아인들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기 위해서 그리심 산에 가거나 또는 예루살렘으로 갈 필요가 없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 이유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부활한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는 성전이기 때문에 예배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어떤 특별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녀에게 중요한 말을 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들에게서 남이라." 이것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장이다. 예수는 그 여자를 "너희들"이라는 2인칭 복수로서 사마리아인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에, "우리"라는 1인칭 복수로 자기 자신을 유대인들을 대변하는 자로 간주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예배는 예수 안에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 안에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이며 하나님이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마리아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유대인들은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진술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구원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순간에도 그와 함께 하였으며, 그를 부활시켰다. 부활한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참된 예배이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지금까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리심과 예루살렘이라는 분리된 장소에서 각각 따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 갈라진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민족통일을 이루어서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고 있는 예수 안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함께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러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는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어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원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는 자들은 예수가 주는 생수를 경험하고 구원을 얻은 자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참된 생명을 방해하는 차별과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와 억눌린 여성의 편에 서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 위해서 일한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여자를 포함한 사마리아인 전체를 가리킨다. 그녀가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유는 차별당하는 사마리아인들의 구원과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대리자이며, 그의 역할은 심판자, 구원자, 해방자, 그리고 함께 싸우는 투사이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 수많은 약자들과 성도들을 희생시키는 이 폭력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대안적인 공동체를 시작할 것이다(참조, 계 22:1-5). 예수는 그 여자에게 자기 자신이 바로 그녀가 장차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것을 선언한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가 지금까지 그녀에게 설명한 것을 모두 잘 이해했다. 그녀는 성서의 말씀과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열된 민족의 현실을 인식하고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소망하는 여자다. 제자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수가의 우물가에서의 예수와 그 여자 사이의 긴 대화는 중단되었다.

그녀는 예수로부터 "생수"를 얻었으며, 그녀 자신이 남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되었다. 그 여자는 객체에서부터 주체로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지금까지 남의 시선을 피하면서 소외된 생활을 했지만, 이제 그녀는 사림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물동이를 우물가에 두고 사마리아 시내로 달려갔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가 마지막 때에 일어날 "모든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녀는 사마리아 수가에서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그녀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한 것은 사마리아 선교의 시작인 동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화해를 촉진시키는 민족통일 운동이다: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녀의 선교로 인해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적개심과 편견을 버리고 유대인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다(참조, 행 8:4-25).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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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지아코모 프란체스키의 <예수와 우물가의 사마리아여인>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인종적, 종교적, 사회적, 성적 타자성으로 형성된 경계들을 넘어선 화해와 민족 통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분단과 차별과 억압과 배재의 사회에서 참된 생명을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다. 그녀는 예수를 만나서 생수를 경험하고 참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불의한 환경과 서러움에도 불구하고 객체에서 주체로 변화되었다. 그녀가 홀로서기를 결심하면서 주체선언을 한 것은 참된 생명을 방해하는 불의한 권력관계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고 또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평등한 형제자매적인 공동체를 위한 희망을 의미한다. 예수는 그녀의 주체선언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녀는 마침내 사마리아인들에게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함으로써 목마른 사람들의 생명을 후원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그녀는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오랜 적대감을 극복한 치유와 화해의 경험을 예배라는 공적인 차원에서 여러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승화시켜서 갈리진 민족의 장벽과 차별을 허물고 형제자매적인 민족통일을 이루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이 각기 그림심산과 예루살렘을 참된 예배의 장소라고 주장하지만, 예배의 장소는 어는 한 곳으로 제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참된 예배의 장소는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고 있는 살아있는 성전인 죽임을 당하고 부활한 예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서 내한한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에서 단장 현송월이 부른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이라는 노래는 통일을 바라는 절절한 마음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였다.

해 솟는 백두산은 내 조국입니다.

한라산도 독도도 내 조국입니다,

백두와 한라가 서로 손을 잡으면

삼천리가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

아 통일 통일 통일이여라.

슬기론 우리 겨레 한 핏줄입니다.

그리움 안고 사는 한 식솔입니다.

북과 남 형제들 서로 정을 합치면

우리민족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

아 통일 통일 통일이여라.

오늘의 남녀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민족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북한의 형제자매들과 연대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북한을 악마화하고 평양에서의 예배를 가짜라고 부정하고, 서울에서의 예배만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분단 현상유지 세력에 그리스도인들은 저항해야만 한다. 한국교회는 참된 생명에 대한 목마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생수를 제공하는 생명의 후원자가 되어야하며, 약자들과의 연대와 성평등과 여성의 참여를 민족통일 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실천해야만 한다.(끝)

※ 외부 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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