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손규태 칼럼] 시국미사와 시국기도회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2013년 11월 22일 천주교 전주교구의 정의구현사제단이 주관한 “박근혜 대통령 사퇴촉구 시국미사”에서 박창신이란 신부의 강론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말벌들의 집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시끄럽다.

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끈질기게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의 대선개입을 규탄하고 거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들의 처벌 그리고 그 기관들의 개혁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책임자로서 그 사건과 자기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해 왔고 국정원은 스스로 개혁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말로 일관해 왔다. 그래서 국회는 이 문제로 여야가 갈라져서 시끄럽고 국론은 분열되어 나라가 온통 혼란 가운데 빠져들었다. 이러한 대통령의 무책임성과 민주주의 후퇴를 보다 못한 종교인들, 특히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3월부터 부산, 광주, 인천교구 등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천주교회 외에도 개신교의 “전국목회자 정의평화위원회”, “실천불교 전국승가회” 그리고 원불교 등 여러 종교단체들이 같은 요구들을 하고 나선 것이다.
 
과거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군사독재에 항거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장이었던 가톨릭과 개신교의 시국미사(기도회)가 그의 딸 박근혜 정부의 선거부정을 고발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하여 다시 열리게 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 시국미사에서 한 시골신부의 강론이 정국을 강타하고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 그의 말은 오늘날 한국의 집권세력이 은폐하고자 하는 비리와 악행들을 낱낱이 드러나게 하고 그들의 일그러진 양심을 꿰뚫는 양날의 칼처럼 날카로웠던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히브리서 4:12)
 
그의 강연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정보원, 군대 사이버 사령부 등 국가기관들을 총동원해서 부정을 자행했기 때문에 검찰은 그를 구속 수사하여 처벌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기관들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당선, 합법적으로 당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범법자들을 처벌하지도 않고 그 기관들을 개혁할 의지도 없으므로 마땅히 그 자리에서 사퇴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이전 정부와 현 정부의 비리들을 고발하던 중 박창신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날조하여 불법선거에 개입한 것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휴전협정 당시 NLL은 휴전당사자인 남북한의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남북 분계선이 아니고 유엔군사령부가 임의로 설치한 것으로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승만 정부가 북진통일정책을 내세워 남한의 해군이 서해를 통하여 북한지역으로 넘어가 진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 선을 국경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것을 국경선으로 주장하는 남한 정부와 갈등을 야기했고 몇 년 전에는 서해교전이라는 군사적 충돌도 일어났었다.
 
박창신 신부에 의하면 이러한 임의적인 NLL 근처에서 연례적으로 실시되는 한미군사훈련은 북한에 커다란 위협이 되며 그때마다 북한은 북침훈련의 중지를 요구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군사훈련이 전에 없이 대규모로 실시되자 북한은 그때마다 훈련중지를 요구했다. 그래도 NLL 근처에서 한미군사훈련이 진행되자 북한이 그 보복으로 연평도 포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박 신부의 강론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론분열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새누리당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종북세력으로까지 몰아가면서 전례 없이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다. 종편방송들과 보수신문들은 거의 매일같이 온갖 악평을 동원하여 박 신부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보수적 시민단체들은 앞다투어 박 신부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요즘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종편방송들은 그야말로 종북몰이에 총동원되어 있는 느낌이다. 통합진보당, 민주당, 전교조, 공무원노조, 심지어 종교단체들에게까지 붉은 색깔로 덧칠해서 마치 한국사회가 거의 종북주의자들로 넘쳐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러한 종북몰이를 통한 국민들 사이의 국론분열책동과 국회에서의 새누리당의 일방주의 그리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의 정치가 앞으로 한국사회에 가져올 파국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9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유신공안통치가 절정에 달하고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동되던 때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섰던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가 체포되던 살벌한 시절에 결성되었다. 사제단은 유신헌법 반대, 긴급조치무효, 민주헌정의 회복, 언론자유의 쟁취를 내세우고 당시 다른 단체들과 함께 유신정권과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이 사제단은 1987년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의 폭로로 6월 항쟁의 불길을 높이 들었었고 2007년에는 대기업 삼성의 비자금 조성사건을 폭로하는 등 한국에서 정의구현에 앞장섰었다. 최근 시국성명들을 발표하고 있는 불교단체들도 그때부터 같이 활동했고 오늘날까지 민주화와 함께 교단정화운동 등에도 깊이 참여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개신교 목회자들 가운데 진보적 인사들은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매주 “목요기도회”를 통해서 박정희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운동을 전개했었다. 당시 이 목요기도회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교파를 가리지 않고 뜻있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많은 정치가들과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지식인들도 이 기도회에 열렬히 참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 목요기도회는 그동안 감옥에 간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서 고통당하는 가족들을 위로하며 때로는 물질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 운동이 모체가 되어 그 후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위원회”가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이들 종교단체들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의를 시국미사나 기도회를 통해서 고발하고 그 개선을 촉구했던 것이다.
 
정치적 밤 기도회(독일 쾰른)
 
이러한 시국미사나 기도회는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시국기도회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여러 나라들에서 그 나라들의 잘못된 정치적 불의들을 고발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 예배 혹은 정치적 봉사(political service)의 일환으로서 행해져 왔다.

그 예를 하나 소개하자. 1968년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달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이 미국과 유럽에서 치열하게 일어났을 때 독일 쾰른(Köln)에서는 이른바 “정치적 밤 기도회”(politischer Nachtgebet)라는 정치적 개혁을 위한 종교모임이 결성되었다. 저명한 여성신학자 도로되 죌레(Dorothe Sölle)와 진보적 작가인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을 필두로 해서 많은 가톨릭과 개신교회 사제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다수의 지식인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그해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밤 기도회를 가졌다. 원래는 가톨릭 교회당에서 모이려고 했으나 쾰른의 대주교의 허락을 얻지 못해서 개신교회당인 안토니터 교회(Ev. Antoniterkirche)에 모여서 기도회를 가졌었다. 당시 라인란트 개신교 지방교회의장이었던 요아킴 베크만(Joachim Beckmann)은 이 모임이 순전히 정치적 집회가 되지 않고 종교적 봉사의 장이 될 것을 전제로 이 기도회를 허락해 주었다.
 
이러한 정치적 밤 예배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히틀러의 불의한 억압에 대해 하나님의 교회가 과연 고통 받는 약자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를 반성하는데서 출발한다. 1933년 독재자 히틀러가 불법적으로 정권을 잡자마자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 비오 11세(1933-1939)는 7월 20일 히틀러와 이른바 제국협정(Reichskonkordat)을 체결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재자 히틀러의 불법적 집권, 강권통치와 유대인학살 그리고 전쟁정책을 승인해 주었고 그 정권이 몰락할 때까지 가톨릭교회는 히틀러의 만행에 대해서 이렇다 할 예언자적 발언과 사명을 전혀 감당하지 못했었다.
 
개신교회도 히틀러의 집권초기에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목사나 신학자 본회퍼를 필두로 해서 목사긴급동맹(Pfarrernotbund)과 형제단(Brutherschaft) 등을 통한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히틀러에게 굴복하지 않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른바 고백교회(Bekennde Kirche)를 설립하고 저항을 계속했다. 고백교회는 1935년 바르멘 총회에서 신학선언을 통해서 어려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갈 길을 제시한다. 그 신학선언의 초안자인 신학자 칼 바르트는 히틀러의 불법적 집권을 암시하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10장 1절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다”를 인용하여 히틀러의 불법집권을 비판하고 국가의 책임성을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국가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 세상에서 인간의 통찰력과 능력의 정도에 따라 권력행사를 하되 정의와 평화를 이룩할 과제를 가진다.” 말하자면 국가는 권력을 행사하되 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의 과제를 실행할 때 교회는 이러한 국가의 행위를 인정한다.”(바르멘 신학선언 5항) 본회퍼목사와 같은 신실한 신학자와 몇몇 그의 친구들은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실패로 들어나서 모두 처형당함으로써 순교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히틀러의 억압통치에 굴복하여 그의 독재정치, 유대인 학살 그리고 이웃나라들에 대한 전쟁정책에 동조하고 말았다.
 
1945년 5월 히틀러의 제3제국이 연합군에 의해서 몰락하고 나서 다시 독일의 개신교회가 재건되어 가는 과정에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세계기독교의 대표들이 그해 10월 독일의 남부도시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했을 때 독일 개신교회의 대표들은 그들 앞에서 자신들의 죄책을 고백하는 선언(Schuldbekenniserklärung)을 발표한다. 그들은 세계교회 대표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편에 서서 히틀러 나치독재를 막지 못했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 한 문장을 여기에 옮겨보자. “우리는 보다 더 용기 있게 (주님을) 고백하지 못했고, 보다 더 신실하게 기도하지 못했고, 보다 더 즐겁게 믿지 못했고, 보다 더 열렬히 사랑하지 못한 것을 고발합니다.”
 
말하자면 히틀러 독재의 강권통치와 범죄행위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처음부터 교황청과 나치정권 사이에 체결된 협정으로 인해서 이렇다 할 저항 한번 못하고 모든 만행을 승인해줌으로써 나치정권의 암묵적 동반자가 되었었다. 그리고 개신교회도 초기에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 보려했으나 무서운 탄압에 눌려서 소수의 교회지도자들은 적극적 협조자가 되고 다수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은 침묵의 동조자가 되었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고통을 당했고 망명자가 되고 순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나치시대의 어두운 역사적 경험을 반성한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세계대전 이후 5년이 지나서 터진 미소의 대리전쟁인 한국전쟁, 10여년 후 강대국 미소의 헤게모니 투쟁에 의한 월남전쟁 등 세계적 차원에서의 이데올로기적 냉전체제의 등장과 갈등 그리고 동시에 유럽과 독일 내에서의 노동과 자본의 갈등, 칠레의 구테타와 함께 미국에 의한 남밍에서의 일련의 군사독재정권들의 등장에 직면하여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리고 지식인들로서 책임적 윤리를 실천하려는 목표에서 그들은 “정치적 밤 기도회”를 조직했던 것이다.
 
그들은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정치적 정보들이나 나누고 토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배를 통해서 성서를 보다 새롭게 현실에 맞게 해석하고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에 주목하면서 출발했다. 정치적 성서해석과 정치적 설교를 통해서 이제까지의 교리적 성서해석이나 추상적 설교행태를 벗어나서 우리의 역사와 현실과 대화시킴으로써 오늘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가를 체현하게 했다. 그리고나서 같이 모인 사람들 모두가 참가하는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 당시 진행 중이던 그리스의 군사독재 문제, 독일에서의 노사공동결정권의 문제, 헌법 218조 낙태금지법의 문제, 연방의회 선거제도의 문제, 월남전쟁의 문제, 남미 군사 구테타와 군사정권의 인권침해의 문제, 동독에 구금당한 정치범 석방문제 등을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정치적 밤 기도의 운동은 1980년대 초 동독으로 퍼져나가서 라이프치히에서 크리스토프 본넬베르크(Christpher Wonnelberg) 목사의 지도 하에 “월요일 평화기도회”(Montagsfriedensgebet)가 시작되었고 니콜라이 교회의 기도모임과 더불어 이후에 월요 데모모임(Montagsdemonstration)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예배라는 시국기도운동들은 마침내 동독에서의 민주화에 기여했고 마침내 동서독 통일의 기초를 놓아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종교의 정치참여의 문제
 
이번 가톨릭교회의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사건을 계기로 교회(종교)의 정치참여 문제가 한국에서도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현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정치가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성직자들의 정치참여 활동이나 강론내용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인가? 우선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개념부터 생각해 보자.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한 편의 긴 논문을 써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시간도 지면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정교분리를 주장했던 신학자의 원조로 오해받고 있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생각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한다. 
 
그는 1520년에 쓴 세 개의 종교개혁문서들 가운데 첫째 문서 “그리스도교적 신분을 가진 독일 민족의 귀족들에게”라는 글에서 교황이 가진 3개의 수장권 문제를 비판한다. 그 중 첫 번째 수장권은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왕이나 황제와 같은 세속적 권위 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톨릭의 신학자 아퀴나스의 토마스의 논제인 “은총의 질서”가 “자연의 질서” 상위에 있다는 신학적 논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가장 구체적으로 관철된 예는 황제권과 교황권의 다툼의 역사에서 교황 그레고리 7세의 위대한 승리에서 드러난다. 교황 그레고리 7세가 독일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여 퇴위시키자 황제는 교황이 머무는 카노사 성채로 찾아와 3일 동안이나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참회함으로써 파문을 면하게 되어 황제가 되었다(1077년 10월 25-28일). 이 때 유럽에서 세속적 황제를 파문하고 용서하는 권세를 가진 가톨릭교황 그레고리 7세의 위엄은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세속적 권위 위에 있는 영적 수장권을 비판하고 하나님은 두 개의 권세 즉 교회라는 영적 질서와 정치적 권위라는 세속적 질서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그것들을 통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통치한다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의 오른 손인 영적 질서인 교회는 세상에서 말씀으로 통치하고 하나님의 왼손인 세속적 질서는 세상에서 검으로 통치한다고 했다. 루터에 의하면 이 하나님의 이 두 개의 질서는 분리(separation)되지 않고 다만 구별(distinction)될 뿐이다. 이 두 개의 하나님의 통치기관들 사이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고 대립적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전통에 따르면 정교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전통에 기초한 정교구분의 원리는 히틀러의 제3제국의 독재체제 하에서 활동했던 신학자 칼 바르트에 의해서 구체적 실천방안이 제시된다. 바르트는 바르멘 신학선언 제5항에서 국가와 교회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그의 계명과 정의 그리고 통치자와 피치자의 책임을 기억한다... 우리는 교회가 자기의 특수한 위탁을 뛰어 넘어 국가적인 것, 국가적 과제들 그리고 국가적 존엄성을 가짐으로써 국가기관이 될 수 있다는 왜곡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즉 교회는 국가기관 자체가 되거나 그 과제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가가 교회기관이 되거나 그 과제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와 종교가 서로 분리되어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서로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바르트는 성서에 나타난 “파수꾼의 직무”(사 56:10)를 내세워 교회는 국가권력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의 과제를 바로 실행하는가?”를 감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질서가 하나님의 질서에 상응(相應)하게 통치하도록 정치적 봉사를 하게 된다(칼 바르트,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와 시민공동체). 그 예로서 바르트는 교회의 삼위일체론에 상응하는 것으로 정치의 삼권분립을 들고 있다. 신학에서 삼위일체론에서처럼 정치에서는 삼권분립, 즉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전적으로 독자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면서 다 같이 하나의 국가를 위해서 봉사한다. 따라서 히틀러 통치 시절처럼 입법부나 사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총장이 자유롭게 수사를 할 수 없거나 사법부가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재판해서는 안 된다. 또 정당이나 입법부인 국회가 독자성을 상실하고 박정희 유신시대처럼 정부의 거수기나 통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국가가 정의와 평화를 해치는 불의한 정치를 할 때는 교회는 파수꾼으로서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고 저항하며 때로는 순교도 하게 되며,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에 의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통치자를 살해해도 된다(본회퍼목사는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
 
그리고 이번 가톨릭의 박 신부의 강론은 오늘날 (기독교)정치윤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의 관점에서도 다루어볼 수 있을 것이다. “법이 불법이 되는 곳에서 저항은 의무가 된다”는 명제에서 볼 수 있듯이 박 신부의 강론은 불법에 대해서 저항을 표시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정보원과 여러 국가단체들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선거법을 어긴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처벌해야 할 합법적 기구들이 책임을 방기할 때 종교인들은 양심에 따라서 그것을 비판하고 그 책임자인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저항권이란 법치국가에서가 아니라 독재국가들에서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법치국가들에서도 정의와 평화, 공공복리에 반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민들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광우병 위험을 가진 소고기를 수입하려는 시도, 또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이 강행되었을 때 다수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들도 여기에 항거했었다. 1983년 독일정부가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치 않는 미국의 핵탄두를 독일영토 내에 배치하려고 했을 때 독일인들은 격렬한 저항을 했었다. 당시 소설가 하인리히 뵐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같이 저항한다. 저항은 인간 삶의 실존적 자명성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고 해도 이번 대통령선거에서처럼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불법을 자행하고 그것을 처벌해야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게 압력을 가하고 방해할 때 “즉 법이 불법이 되는 곳에서 정항은 의무가 된 것이다.” 따라서 박창신 신부의 강론이나 여기에 대한 종교단체들의 성명들에 나타난 대통령 퇴진이나 개선에 대한 요구는 오늘날 근대국가에서 통용되는 저항권의 발동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적대적 대북정책의 폐지
 
따라서 이번 가톨릭의 정의구현 사제단의 선언문이나 신부의 강론은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파수꾼으로서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었다. 흔히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들이나 정치가들은 교회의 사명은 사랑과 화해와 통합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옳은 말이다. 그것은 국가가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일할 때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부와 새누리당이 선거부정을 은폐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교회와 야당을 종북세력으로 몰아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바로 청와대와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이 아닌가? 이러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어떻게 사랑하고 그들과 화해하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한국의 보수기독교들처럼 불의를 보고도 짓지 않는 “벙어리 개”가 되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두둔하고 그들을 비판하는 야당과 비판적 종교인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는 데 동조하란 말인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부정선거를 감추기 위해서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또 독선과 불통의 현 정부를 지원하는 어리석은 종교인들을 정권유지를 위한 도구로써 이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그러한 종교지도자들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백성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것들은 눈이 멀어서 살피지도 못한다. 지도자가 되어 망을 보라고 하였더니, 벙어리 개가 되어서 야수가 와도 짖지도 못한다. 기껏 한다는 것이 꿈이나 꾸고, 늘어지게 누워서 잠자기나 좋아한다.(이사야 56:10). 신약성서에서 예수도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누가복음 12:51-53).
 
특히 비판적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안보 위주의 대북정책을 폄으로써 남북한 사이의 갈등은 점차 첨예화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중지되었던 한미군사훈련 특히 서해 NLL 근처에서의 군사훈련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외세에 의해서 강제로 분단된 남북한이 하루 빨리 화해하고 통일되어 평화로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남북한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달성할 것을 일차적 국가과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정권은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평화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통하여 국가안보라는 분단정책을 앞세워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짓누르고 그들을 친북이나 종북이니 하면서 적대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정부가 안보 위주의 친미분단정책이 아니라,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남북통일 정책을 추진할 것을 원한다. 박근혜 정부는 선거공약으로 남북한의 신뢰프로세스를 통해서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이전의 이명박 정부를 따라서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여 최신무기를 사오려고 한다(최신예전투기 8조3천억, 공중급유기 1조원 이상, 5년 동안의 국군현대화를 위해서 23조 사용 예정). 이러한 대북적대정책과 압박정책을 위한 막대한 군사비 지출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악화되어가는 한국의 경제사정과 고통 받는 서민생활에 막대한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남북한 사이의 적대정책은 남북한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 오직 현재의 남북한의 집권세력들의 권력투쟁일 뿐이다. 이로 인해 남북한의 국민들은 더욱더 정치적 억압 가운데 살아야 하고 이로 붕괴되어가는 경제로 인해서 더욱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남북한은 이제까지의 적대정책을 그만두고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정책으로 나아갈 때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미래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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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영성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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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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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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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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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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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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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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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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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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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