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나무의 시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나무의 시 

                                                                                                                                         류시화(안재찬)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시인(1958- )은 시란 무엇이며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시란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소재와 하나가 될 때 씌어진다.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눈을 감[는]" 이유는 눈을 감을 때 현실의 관점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소재와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시란 공상 속의 현상이 아니라 소재의 존재 자체를 경험하는 것을 일컫는다. 체험적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상상 속에서 시인은 나무가 되고 나무는 시인이 된다. 나무에 앉은 새는 나무의 일부로서 그 역시 동일시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그러니까 시란 시인이 상상력을 통해 소재와 하나가 되어서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시는 삶과 일체가 되는, 즉 삶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의 기록이다.

우선, 시인이 나무와 하나가 되는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단순히 현실에 대해 눈을 감고 나무에게로 눈을 돌린 때가 아니다. 그때는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이다. 황혼의 시기처럼 세속적인 잡념들이 잠잠해지고 인생에 대한 고독한 성찰이 시작될 때이다. 즉 비로소 자신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 때이다. 비록 "흔들[리며]" 숙성해온 과정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어도 그 흔들림의 끝자락에 찾아온 정일(靜逸)의 순간에 인생이 하나의 형상으로 떠오를 그때 시인은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시는 생각의 유희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고백이다.

인생은 기나긴 여정이다. "해질녘"에야 닿을 만큼 그 여정은 길다. "해질녘"에 들리는 나무의 노래는 하루 종일 바람에 흔들렸던 경험담을, "세상의 모든 새"가 가지에 앉아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처럼 시인도 세파와 풍상과 온갖 인연의 굴레를 경험하고 난 뒤 비로소 그 인생을 노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때가 반드시 노년일 필요는 없다. 소재와의 동일시는 본질상 순간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동일시의 끝자락에서는 자신의 인생만이 절대적인 듯 여기지 않고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았음을 겸손히 노래하게 된다. 왜 겸손한가?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는 겸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황혼에 그림자가 길어지는 만큼 자신이 혼자 서 있는 존재임을 두드러지게 깨닫게 된다. 그러면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즉 체험이 응축된 삶의 이야기가 소재에 이입될 때가 온다. 그때 비로소 "[인생]에 대한 시"가 씌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말로 그려진 나무의 모습이 바로 그 시인의 인생이다.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시를 쓴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 시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인간]에 대한 시"를 쓰려고 먼저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전 생애 동안 인간처럼 "흔들[리셨다]." 그렇게 인간과 일체가 되신 그분은 이런 "시"를 한 편 쓰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5-7)

이 "시"는 그분이 포도나무가 되어 "해질녘 [그분의] 그림자가 [인간]에 가 닿을 때" 그 가지인 인간과 일체를 이룬 순간을 읊고 있다. 그분은 인간과 같이 "흔들[리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인간의 운명을 체현하실 수 있었다. 인간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형극의 삯을 대신 져야겠다는 결정은 그분이 인간과 완전히 일체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그 일체의 순간에 그분은 이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일체가 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내가 죄의 삯을 대신 치렀기 때문에 나의 결행을 너의 것으로 동일시할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단순히 현실에 눈을 감고 공상의 세계로 도피하기 위해 내게로 온 것이라면 그 삶은 "밖에 버려져 마르[는]" 가지에 불과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에 던져 사[를]" 것이다. 그러니 나와 하나가 되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그러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 그때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분의 "시"는 이처럼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그분의 "시"는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대한 시를 쓰고자 할 때, 즉 우리가 인생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분의 "시"와 일체가 될 것을 일러주고 있다. 그분의 "시"는 자신의 인생의 깨달음이니까 우리가 그 깨달음과 일체가 되면, 우리는 인생의 열매를 많이 맺는 "해질녘"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동일시의 과정에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 상상력은 성령께서 공급하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속에서 깨닫게 하는 존재이므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도록 활동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게 된다. 그 말씀을 "해질녘"에 이를 때까지 품고서 외로이 서 있다가 노래로 부르게 되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시인"으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 시인은 어떤 나무일까? 시인이 나무에 투영한 그 자신의 삶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인생의 "해질녘"에 이 세상 어딘가에 서 있게 될 나의 나무는 그 나무를 보며 시를 쓰고자 하는 그 누군가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만큼 풍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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