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 교회음악 회복 위해 헌신한 20년…한 음악가의 이야기

컬쳐 프런티어① 서울모테트합창단 박치용 단장

국내 프로 기독교합창단 중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모테트합창단’(단장 박치용, 이하 모테트)이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열악한 문화풍토를 가진 한국에서 기독교음악을, 그것도 합창으로 다루는 단체가 이토록 오랫동안 존속한 것은 ‘기적’에 다름 아니다.

늘 벼랑 끝 재정의 연속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영롱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멈추지 않은 결과, 2004년 ‘올해의 예술상’, 2005년 국내 예술가들의 최고 영예라는 ‘대한민국 예술상’(대통령상)을 받으며 국내 음악계를 대표하는 합창단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었다.

▲서울모테트합창단 20년의 역사의 흔적을 뒤로 하고 선 박치용 단장 ⓒ이지수 기자

박치용 단장(47)은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수재.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보장돼 있었지만 예술가라면 한 번쯤 갔다 오는 그 흔한 유학도 지금까지 미루며 모테트의 정착을 위해 ‘좁은 길’을 가고 있다. 그 순수와 열정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 24일 서초동에 자리한 모테트 연습실로 가 박 단장을 직접 만났다.

클래식의 깊은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클래식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그것이 한국 교회음악의 숙제이며 자신은 그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고백했다. 음악과 신(神)이 공존하는 비밀스럽고도 경이로운 세계를 조곤한 목소리로 풀어나가는 그를 보며, 세상을 비껴 음악이라는 길(道)을 통해 신에게 다다르려는 구도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비밀스러운’ 인터뷰를 공개한다.

2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를 맞으셨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합창단을 이끌어오고 계신 장본인으로서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20년 동안 존립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야 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 매 순간이 고비고 어려움이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헤쳐나갈 지혜를 주셨다. 또 함께 일하는 단원들과, 일꾼들, 후원자들을 보내주셨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합창단을 조직하셨는가

"우리나라 음악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훌륭한 독창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여건이지만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같은 ‘음악단체’가 정착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그런 단체가 많아져야 그 나라의 음악수준이 진짜 높아지는 거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 합창단을 조직한 건 그런 이유다.

▲2009년 3월 예술의전당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하는 서울모테트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굳이 기독교음악을 고집한 것은 신앙적인 동기였다. 뭐랄까.. 가장 진솔하고 정직한 음악가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싶었다. 우리나라 직업별 종교 분포에서 목회자들 빼고 예술인의 기독교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런데 음악사회가 건전한가? 물질적으로 부패하지 않고 인간적인 면에서 정결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음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 가치를 상실한 음악이 세상음악과 교회음악을 점점 지배하고 있다. 우리 합창단은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한다. 또 교회의 예배와 여러 가지 활동 속에서 어떤 음악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사명감이 매우 크신 것 같다. 단원들도 같은 사명감을 공유하고 있는가?

"1990년 1월 프로합창단으로 전향할 때, 학교교사였던 사람도 있었고 다른 연주단체의 회원, 직장인, 대학원생도 있었다.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합창단원으로 전향했다. 재정은 항상 벼랑 끝이었지만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이 뚜렷했고, 소신이 있었고, 음악가로서의 가치관이 또렷했기에 기쁨으로 견딜 수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은, 이런 힘듦을 다 알면서도 합창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오디션을 통해서 실력자들을 뽑고 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크로스오버(crossover)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래식’ 기독교음악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모든 예술 장르 중에 가장 영적인 것은 음악이다. 문학은 인간의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가장 실재적이고, 미술도 아무리 추상적인 것을 그린다고 해도 구체적인 실재가 있다. 그러나 음악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합창단 연습실에 걸려 있는 '찬양(讚揚)' 액자  ⓒ이지수 기자

예배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한데, 교회 2천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음악을 기뻐 받으셨는가? 음악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음악의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 속에 말씀이 있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말씀의 메시지를 음을 통해 극대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작곡이다.

작곡의 기법이라는 것은, 그 가사의 의미를 음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기독교 음악일수록 음악 자체가 드러나지 않고, 음악을 통해 말씀이 드러남으로 하나님이 증거된다. 음악을 통해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된다. 진정한 교회음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늘날 많은 대중음악이 어떤가? 텍스트 없이 그냥 떠오르는 멜로디를 쓴다. 그러니 영적인 감화가 없고 감성을 자극할 뿐이다. 더욱이 그런 음악은 인이 박히기 때문에 점점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클래식 종교음악은 텍스트가 있고서야 음악이 있다. 슬픈 멜로디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라,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를 음화시키는 작업을 거쳐서 만든다.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난 그 음악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고, 그 기쁨으로 인해 우리 인간도 기쁘게 된다. 우리 합창단이 클래식 종교음악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다"


‘교회음악이 회복돼야 한다’는 말 속에는 현재 교회에서 불려지고 있는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 정말로 변화가 필요하다. 음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목적인데, 현 한국교회의 음악은 ‘인간을 기쁘게 하는 음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 망가진 음악이 사람들의 정서를 파괴하고 있다.

또한 찬양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믿음의 최종단계에서 하는 행위다.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갖고, 기도를 통해 매 순간 믿음을 하나님의 뜻에 비춰본다면, 마지막으로 찬양을 통해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공부, 기도생활만 열심히 하고 찬양은 인간이 기뻐하는 말초적인 스타일로 간다면, 그것은 맞지 않다. 전인격적인 신앙을 강조하면서도 신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찬양은 감성적인 찬양만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가 말이다.

나는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성가 사역자들을 잘 알고, 복음성가의 전승을 목격하며 자랐는데, 현재 한국교회에서 불려지고 있는 복음성가는 복음전파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부흥사 무디가 전도부흥을 일으켰을 때 사용한 음악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고전적이고 클래식한 스타일의 곡들로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온갖 힙합과 락앤롤, 헤비메탈, 심지어는 사타닉한 음악까지도 가사가 하나님을 향해 있기만 하다면 찬양이다? 절대 아니다.

물론 복음성가가 성도들의 코이노니아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 또는 비신자들에게까지 영적인 감화를 줄 수 있는 음악으로서는 아니라고 본다. 시대가 점점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데,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교회음악의 개혁은 꼭 필요하다.

목회자들이 먼저 음악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신학교에 교회음악과를 개설하고, 없더라도 음악교육을 받게 해 음악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곡가와 곡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너무 많아서 꼽기가 힘들다.(웃음) 물론 작곡가는 바흐가 가장 좋고, 곡 중에서는 굳이 꼽자면 바흐의 모테트 중 '예수는 나의 기쁨'이라는 곡이 가장 좋다. 브람스의 레퀴엠도 좋아한다. 이 레퀴엠은 특이하게도 죽은 자를 보낼 때 연주하는 곡이 아니라, 인생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묵상을 그린 곡이다"

20주년 이후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교회 성가대 지휘자들, 목회자들, 평신도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실시하려 한다. 음악성과 영성을 모두 길러주는 음악교육이 될 것이다.

또 공교육에서 음악교육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청소년들이 음악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모테트 아카데미’(가칭)을 설립해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음악을 꾸준히 연주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바란다. 또한 우리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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