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섰던 보수 개신교계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들을 제명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충남도의회는 지난 3일 찬성 26표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재가결했다. 자유한국당 의원 24명은 전원 찬성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달 20일 충청남도기독교총연합회(아래 충기연, 대표회장 전종서 목사)는 충남 기독교 15개 시·군 연합회에 공문을 보냈다. '충남기독교교회협의회'(충남 교회협)와 '대전세종충남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대전 목정평) 소속 목사들이 부당한 행위를 했으니 각 시·군 연합회에서 충남 교회협과 대전 목정평 회원들을 제명, 탈퇴시켜 달라는 것이 이 공문의 뼈대다.
충기연의 제명 공문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 2월 19일 충남 교회협과 대전 목정평은 충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에 강한 유감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이때 두 단체들은 폐지안 가결에 적극적인 보수 개신교계를 겨냥해 "우리는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거나 사회적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일부 기독교 내 우려에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권조례를 통해 이 땅에 어둠 속에 살아가는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좀 더 당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선언했다.
충기연은 바로 이 대목을 문제 삼았다. 충기연은 공문에서 "언론을 통해 마치 기독교내에서도 (인권조례에) 찬성하는 목사들이 있는 것처럼 보여 그 구심점을 잃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잘못 해석 및 이해하는 것으로 주님의 일을 위해 함께 할 수 없는 목사들"이라고 지적했다.
또 두 단체를 "초교파 목사 및 천주교신부들이 함께 활동하는 단체로서 정치적 성향이 짙으며 특히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충기연 활동과 반대되는 행동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충기연의 공문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충기연이 지난달 29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이아무개 목사를 제명한 것이다.
그간 보수 개신교계는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극 앞장섰다. 보수 개신교계는 인권 조례와 관련해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뤄질 때마다 도의회로 몰려가 집단행동을 벌였다. 도의회가 인권조례 폐지안을 재가결했던 지난 3일에도 보수 개신교 성도 약 50여 명이 도의회 앞에서 부흥집회를 방불케 하는 집회를 연 한편, 충남 지역 일부 교회엔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보수 개신교 연합체인 충기연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들을 배제하려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충기연 대표회장인 전종서 목사와 제명 당한 이 목사 모두 진보성향으로 알려진 기장 교단 소속이다. 전 목사는 "충기연 공문은 산하 실행위원회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동성애가 인권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지난 해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앞장섰던 기장 교단 소속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퀴어성서 주석 번역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보수 예장합동 교단 등 8개 교단으로부터 이단성 심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A 목사는 "기장 총회가 답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개신교가 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선 건 부끄러운 일"
충남 교회협과 대전 목정평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대전 목정평 의장인 이종명 목사는 5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개신교가 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선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인권문제를 동성애와 연결시키는 건 물론, 동성애 자체도 함부로 다룰 주제가 아니다. 인간의 성이 참으로 다양한데 성서에 적힌 문구 몇 개 갖고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런 우리의 입장을 충기연에 다양한 경로로 전달했다. 다만 외부에서 볼 때 기독교계의 분열로 비칠 수 있고,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도 있어 교회 안에서만 자제를 촉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이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관철시키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들을 제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 우리 단체 더러 정치적이라고 하지만, 정작 충기연은 2007년 대선 당시 장로대통령 만들기 기도회를 하는 등 정치행동에 적극 나선 전력이 있다. 이대로 가다간 개신교 전체가 망신당하겠다. 이제 우리 입장을 외부로 알리고자 한다."
이에 대전 목정평은 5일 규탄성명을 냈다. 성명 중 일부를 아래 인용한다.
"우리는 충기연이 그 이름에 맞지도 않게 '충남인권조례폐지운동'을 하여 왜 세상에 기독교를 망신을 주고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충남인권조례가 어떤 역사와 과정, 취지로 만들어졌는지, 그 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피땀을 흘리고, 인생을 바쳐 싸워왔는지를 안다면 어찌 기독교의 이름으로 그리도 쉽게 '폐지' 운운을 할 수 있는지 그 교만함에 기가 찰 노릇이다.
(중략) 충기련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영역인 인권과 성의 문제를 신학적인 숙고 과정도 없이 성경의 문구 몇 가지를 율법적으로 해석하여 함부로 정죄하고, 흑백논리로 단죄하더니, 마침내는 성도들을 선동하고 동원하여 현재의 정치국면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한 일부 보수정치세력과 결탁하여 사실상 동성애 문제와는 별로 상관도 없는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일종의 참사다."
이에 앞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도 4일 성명을 내고 "'충남기독교연합회'라는 단체가 인권 조례를 지켜내려는 목회자들을 제명하는 치졸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의 인권을 짓밟고 무시하는 반 신앙적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충남시민단체연대회의(아래 연대회의)는 지난 3일 인권조례 폐지안에 찬성한 도의원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이종명 목사는 "시민들의 행동에 대전 목정평도 적극 동참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