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제주4.3 기념주일설교]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역대지하 10장 12-19절, 시편 82편 1-8절, 누가복음서 8장 30-39절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의 시간]

지난 3월 22일에 제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3월 28일 자정까지 자가격리를 하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온전히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아내와 둘째 아이도 같이 확진되었는데, 다행히 첫째 아이는 걸리지 않아서, 우리 가족 전체의 손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확진되기 2-3일 전부터 약간의 느낌이 있었는데,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에서는 계속 음성이 나오다가, 증상이 조금 더 심해진 이후에 양성이 나왔고, PCR 검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두통과 몸살, 기침과 코막힘 등으로 조금 고생을 했고, 이후로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다른 후유증 없이 괜찮습니다.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제가 몇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 시스템입니다. PCR 검사를 받고 양성 확진 후 우리 가족은 전화로 동네 병원에서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가장 가까운 약국에서 무료로 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방역 당국과 구청에서는 계속 문자로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저의 몸 상태를 점검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대면하지 않고 이런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우리나라가 꽤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중이었지만, 저는 인터넷을 통해 사순절 아침 묵상을 매일 전교우들에게 보낼 수 있었고, 줌으로 원격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자료를 부교역자를 통해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꼭 가지 않아도 될 일들은 집에서 거의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새롭고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셋째로 우리 부교역자들의 능력입니다. 제가 갑자기 교회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수요기도회와 주일 설교를 부교역자들께서 해야 했는데, 우리 육성한 목사께서 미리 준비된 사람처럼 척척 해내었습니다. 급하게 준비하셨을 텐데, 설교 내용도 매우 좋았습니다. 더구나 설교 본문을 제가 정한 것인데도 아주 잘했습니다. 곧 안식년이 시작되는데 미리 예행연습을 한 느낌이었고, 우리 부교역자들이 서로 협력해서 저의 안식년에도 모든 목회 활동을 잘 해내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일주일 동안 집에서 골골대는 동안 정말로 많은 분들이 염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우선 우리 교회의 친교부가 제공하는 갈비탕을 받아서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분들이 저의 건강을 챙겨 주시고, 반찬도 주시고, 온라인 상품권으로 집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제 한 몸이 그저 저만의 몸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강제로 쉬면서 푹 잘 수 있었고, 편한 마음으로 책도 볼 수 있었는데, 가끔 이런 시간들이 참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를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한 개인에게 닥치는 예기치 못한 곤경 속에서 함께 보살펴 줄 신앙공동체가 있다는 것,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우리들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꼭 필요한 이들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4.3 기념 주일]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제정한 제주 4.3 기념주일이고 날짜도 딱 4월 3일입니다. 제주 4.3 사건이란 아주 간단히 말해서 일본이 패망한 후 무주공산이 된 제주에서 권력을 장악한 미군정과 우익 세력이 스스로 자치를 행사하려던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사건입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주민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 단독선거, 단독 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까지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게 됩니다. 7년의 세월 동안 3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었습니다. 4.3 사건은 군사정권 내내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되었기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까지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0월 31일 국가 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이후에야 제대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4.3 사건을 단순히 좌익세력의 무장 봉기와 토벌대 사이의 무력 충돌과 진압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가 않습니다. 일제식민지의 고난, 갑자기 다가온 해방 정국의 혼란, 친일파들의 경찰 등용, 미 군정의 잘못된 통치와 정책,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그리고 한국 전쟁 등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과 연결되어 벌어지는 여순 사건과 국가보안법의 제정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주 4.3 사건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1945년부터 1953년 사이 북쪽에 있던 80만에서 12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이들은 1946년 이후 북한에서 진행된 토지 개혁과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탄압을 받고, 전쟁 중 인민군에게 가족이 학살당한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학살의 피해자인 동시에 북한 지역에서, 그리고 남한으로 내려와서 월북자나 좌익 가족을 학살하는 가해자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남한에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1945년 말에 월남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이거나 계층적으로 중상류층에 속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미군정 산하 각 기관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다수의 청년이 영락교회로 모였고, 영락교회 청년회는 이후 서북청년단 같은 반공단체로 발전합니다. 이들은 군과 경찰에 들어가서 남로당을 평정하는데 신명을 바쳤습니다. 이들이 제주도에 내려와서 자행한 폭행과 테러는 너무나도 잔혹한 것이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소수의 희생자를 남기고 며칠 동안 소란했던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 반대를 외치는 제주도민의 무장봉기라 하지만, 이들의 무장은 구식 일제 소총 27자루, 권총 3정 그리고 죽창이 그 무장의 전부였습니다. 봉기에 참여한 사람도 수백명이었습니다. 그나마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한 사람들은 매우 소수였고, 나머지는 미군정의 그릇된 행정과 당시 강력한 힘을 지닌 경찰들의 만행에 분노한 제주도민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꿰뚫어 본 김익렬 중령, 당시 제주도에 주둔하던 9연대장은 무장봉기를 즉시 진압하라는 미군정을 설득하여 "인민유격대" 사령관이라는 김달삼을 만나 협상을 합니다. 그런데 5월 1일 우익 청년단이 오라리 마을에 불을 지릅니다. 그래서 민가 열채가 불탔는데, 경찰은 이것을 좌익의 소행이라고 우겼습니다. 한편 미군정은 김익렬 중령을 해임시키고 9연대는 11연대에 편입시킨 뒤 박진경 중령을 그 자리에 앉혔는데, 이 사람이 취임하면서 이런 취임 훈시를 합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이런 훈시와 함께 부임한 지 한달 열흘만에 10대와 부녀자들 그리고 노인들인 '포로'를 무려 6000명이나 잡아 가둡니다. 제주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휩쓸어 버리는 작전을 통해서 수만명의 제주도민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아직도 역사적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논란이 분분하지만, 분명 이 사건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의 가슴에 매우 깊은 한과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시간에 멈춰 있게 됩니다. 언제나 과거로 회귀합니다. 제주 4.3 사건을 널리 알린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에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렇지를 못했다. ...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 총알이 30년의 우여 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 (93-94p)

역사의 상처는 두고두고 씻어야 합니다.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罪)이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악(惡)입니다. 잘못한 것을 숨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하면서 한 맺힌 사람들을 없는 사람들처럼 여기는 것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높은 도덕적 정신을 훼손하고 좀 먹는 일입니다. 한 사회의 뿌리가 되는 고귀한 가치와 정신이 훼손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면 약한 사람들부터 엄청난 고통에 휩싸이게 됩니다. 따라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거대한 폭력의 치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서에는 "거라사 지방의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간밤의 폭풍우를 견뎌가며 이방 땅 데카폴리스로 선교하러 왔는데, 예수님께서 뭍에 내리시자마자 만난 첫 사람은 귀신 들린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고, 집이 아닌 무덤에서 지내던 이 사람은 예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께서는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셨는데, 귀신들은 자기들을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놀라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고, 사람들이 보러 왔는데,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 발 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모든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거라사 지역 사람들이 예수에게 떠나 달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와 일행은 데카폴리스 선교를 하지 못하고 되돌아가게 되지만, 귀신 들렸다가 고침받은 사람이 온 읍내를 다니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예수님은 왜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죽는 것을 그냥 보고 계셨을까? 마을 사람들은 이 귀신 들린 사람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자 왜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까?

오늘 본문에서 심상치 않은 것은 귀신 들린 사람의 귀신의 이름입니다. 이 귀신의 이름은 "군대"인데, 여기 군대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레기온"입니다. 레기온은 로마 제국의 군사 용어로서 6,000여 명으로 구성된 거대한 군사 단위를 뜻했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의 정체는 바로 로마제국의 군대이고, 이 사람을 이렇게 망쳐 놓은 것도 로마제국의 군대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 곳에서 로마제국의 군대가 사람을 망쳐 놓았다는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라사"라는 지역의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이것이 좀 이상합니다. 돼지 떼 이천 마리가 내리달려 갈릴리 호수에 빠져 죽었다고 말합니다. 분명 이 돼지 떼는 거라사에서 키우는 돼지겠지요! 그리고 호수는 분명 갈릴리 호수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라사와 갈릴리 호수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으로 거의 60km나 떨어진 곳입니다. 저의 고향인 파주 교하에서 서울까지 40km가 조금 넘는데, 이 정도 거리라면 과연 돼지가 갈릴리 호수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의미이며, 왜 누가복음은 거라사라는 이 지역 이름을 밝히는 걸까요?

이제 우리는 거라사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 합니다. 거라사는 열 개의 도시, 즉 데카폴리스의 하나의 도시이며, 로마의 행정과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로마 황제들은 로마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로마군의 주둔지를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군단 레기온은 실제로 거라사에 주둔하였습니다. 이는 아라비아 남부와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유지시켜서 로마의 대상들과 비즈니스 기업인들을 그 지방의 상류층 인사들과 연결시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원래 거라사는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 그의 후계자들이 근동 지역에 세운 헬라식 도시들 중 하나였고 거기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추후에 로마인들이 이 도시들을 점령하게 됩니다. 로마의 정복은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살해당하고, 도시는 불에 탔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후 거라사 지역 주민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갔을 것입니다. 로마에게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 장군은 로마제국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약탈, 살육, 강탈을 제국이라 부르고, 폐허로 만드는 것을 평화라 부른다."(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적 예수> 111p)

이제 이 귀신 들린 사람의 상황이 조금씩 그려집니다. 귀신 들린 거라사 사람의 모습은 로마제국의 군사적 점령과 살육 경제적 착취와 수탈 그리고 문화적 말살로 인해 비인간화되고 미쳐 가는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유대인 젊은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조상 대대로 땅을 이어받아 살고 있었겠지요. 마카비 정부에 의해 정복되었고, 다시 로마에게 정복당하는 과정에서 아마 가족과 친구, 형제와 친척들을 모두 잃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땅도 빼앗겼겠지요. 그러니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가 생긴 것입니다. 그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무덤가를 헤맵니다. 어쩌면 자신의 가족의 시체조차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시신이 즐비한 곳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며 울분을 참지 못하는 이 청년의 한을 우리는 깊이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로마 군대가 저지른 학살의 상처를 보셨고, 이제 이 사람을 고치시려 하는 것입니다.

돼지 떼 2000마리를 그냥 농가의 손실로 본다면 예수님이 큰 잘못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의 축산업을 망친 것이니까요! 그러나 오늘 돼지 떼의 몰살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돼지를 키우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돼지들은 누가 먹었을까요? 누구를 위한 돼지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민족을 학살한 로마 군인들을 위한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에 로마 10군단의 깃발의 심볼이 멧돼지였다고 하니, 2000마리의 돼지가 몰살하는 장면은 바로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생명을 유린한 악의 세력의 종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일행이 데카폴리스에 가서 선교를 하지는 못했지만, 귀신 들린 사람의 치유와 이 사람의 선교로 인해 이제 데카폴리스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싹이 틉니다. 예수는 한 사람을 고쳐서 데카폴리스 전 지역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일제가 물러난 후 제주 땅에서는 '민주주의 민족전선'을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건국 5원칙>은 다름과 같았습니다.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지주와 농민이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이런 좋은 제안들이 있었지만, 이념 갈등과 국정의 혼란, 권력을 쥐려는 자들의 무한한 욕망, 살기로 가득한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 결국 우리 역사는 무고한 피를 흘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학정 그리고 하나님의 법정]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서의 본문은 통일왕국이었던 다윗과 솔로몬 왕국이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 북이스라엘와 남유다로 갈라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은 애굽을 탈출하여 13지파 중 성전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지파를 제외한 12지파가 평등하게 땅을 분배하고 왕 없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도우며 살려고 했습니다만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결국은 왕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왕정 시스템은 사무엘 예언자의 예언대로 결국 백성들에게 과도한 중노동을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통해서 보면 지혜의 왕이라고 알려진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게 했던 왕임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원로 신하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솔로몬보다 더 심하게 백성을 억누르는 정책을 쓰게 됩니다. 강압과 독재 정치를 통해 국가적 발전을 도모합니다. 그러자 야훼 하나님 신앙에 따라 평등 정신을 지키려고 했던 실로 계열의 예언자 아히야는 에브라임 출신인 여로보암과 함께 르호보암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유대 땅 이스라엘은 남유다의 다윗과 베냐민 지파와 북이스라엘의 10지파로 나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분단은 바로 권력자의 횡포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분단 또한 강대국들의 야욕과 전쟁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까지도 너무나 큰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분단되어 섬처럼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념 갈등 속에서 소모적인 논란을 거듭하고, 왜곡된 역사 인식과 빨갱이 몰이 속에서 잘못된 선택과 판단들을 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의 하나님은 법정에 나오셔서, 신들을 모아들이시고 재판을 하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읽어 보니, 신들이라고 표현된 이들은 진짜 신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사람처럼 죽을 것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람이지만 신처럼 군림했던 당시의 권력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도 황제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이라고 해서 천자라고 불렸듯이, 고대에는 거대한 나라의 왕들은 모두 신의 아들들로 여겨졌고, 또 그렇게 마치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그런 왕들을 전부 불러놓고 심판을 합니다. 심판의 핵심은 이 왕들이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고, 악인들의 편을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변호하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풀어야 하는데, 공평해야 할 법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고 시편의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는 땅의 기초를 흔들고, 그러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입니다.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돌보고 치료할 뿐만 아니라, 고통 자체가 생겨나지 않도록 권력을 감시하고 그들이 나쁜 짓을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재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려는 종교이고, 그래서 언제나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둡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하셨고, 함석헌 선생님은 역사의 구원 없이 개인의 구원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을 치유하고, 올바른 정권, 올바른 역사 세우기를 하지 못하면 각 개인의 구원도 요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역사의 구원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위정자들도 하나님의 법정에 서겠지만,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가 진정으로 공정했는지,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변호해 주었는지,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었는지,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었는지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악인의 편을 들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려면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자들, 그러면서도 힘으로 남을 억누르고, 자기 배를 불리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기도 해야 합니다. 바로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만물이 소생하는 사월입니다. 우리의 삶이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한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의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모두 극복하고 희망찬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마음 아픈 일들이 있고, 너무나 오랫동안 쌓여 있는 한들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의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거두어 주소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오직 주님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판데믹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코로나 19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며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동시에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선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어둠 속을 헤매며 악인을 편들지 말고, 공의를 펼쳐 역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갑시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도도하게 흐르고 쌓여가는 역사를 기억하며 눈물 없는 세상, 한을 치유하는 구원을 이루어가는 생명사랑 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고 생명사랑교회와 함께 좁은 길 걸어가는 전국의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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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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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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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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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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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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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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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