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보존의 은혜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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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창세기 6:17-20, 히브리서 1:1-3, 요한복음 17:11, 15

설교문

밤에 남산타워의 기둥 색깔이 그날의 공기 오염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아는 서울시민은 많지 않습니다. 빨간색이면 대기 질 나쁨, 초록색이면 보통, 파란색이면 좋음입니다. 오늘 밤에 한 번 확인해보십시오. 빨간색이면 산책하러 나가시면 안 됩니다.

실로 '숨 쉬는 게 두려운 시절'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남산타워가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푸른 하늘은 왜 미세먼지로 가득하게 되었습니까? 지구는 왜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까?

어느 <어린이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오늘 하늘이 너무 예뻐요.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게 꼭 잔잔한 바다 같아요. 그런데 저는 하늘을 볼 때면 좋으면서도 슬퍼져요. 우리가 언제까지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앞으로 더 병든 지구에서 살아야겠지요... 어른이 되어서도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고 파란 하늘 밑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하나님, 제발 우리의 미래를 지켜주세요. 하나뿐인 지구를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2022년 <지구복원 10년을 위한 생태 살림 기도> 중에서)

코로나 이후 하늘은 다시 미세먼지로 더러워지고 자연의 신음소리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눈앞에 닥친 감염병 위기에 '우선 살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엄청난 일회용 제품 쓰레기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인간의 생활폐기물이 40%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택배 물류, 포장 폐기물, 그리고 인테리어 건축폐기물이 급증했습니다. 투표를 한번 할 때마다 전 국민이 쓰고 버린 일회용 비닐장갑이 63빌딩 높이만큼 쌓였습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는 썩는 데 400년이나 걸립니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비닐봉지는 약 400개로 세계 2위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플라스틱은 약 100kg으로 세계 1위입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신음하는 바다코끼리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정처 없이 여행하다가 결국 하천을 따라 강을 지나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바다로 간 플라스틱은 우리의 생각보다 아주 먼 곳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대단히 긴 시간을 삽니다. 태평양의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에 지금 거대한 쓰레기 바다가 만들어졌는데 그 크기는 한반도의 7배나 됩니다. 누군가 일회용 비닐봉지를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 했다고 하지요.

자연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인간이 만든, 썩지 않는 쓰레기로 피조물이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순환의 진리를 거부하니 자연이 신음합니다. 자연이 탄식하니 인간의 고통이 더욱 커집니다.

로마서 8장에는 모두 세 가지의 탄식이 나옵니다. 피조물의 탄식, 인간의 탄식, 그리고 성령의 탄식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22절)라고 바울 사도는 운을 뗍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도...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23절)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성령께서[도]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26절) 신-인간-자연의 '3중 탄식'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상에 탄식 소리가 가득합니다. 바울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을 걸까요?

바울은 구원을 인간만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자연 만물의 구원도 포함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운명공동체, 구원공동체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좋다/아름답다/사랑스럽다"라고 감탄하신 이 세계에는 인간의 범죄로 사망과 고통이 들어왔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게 아니라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창세기 3:18) 냈다 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우리와] 함께 신음하며, [우리와]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로마서 8:22)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로마서 8:21)를 소망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피조물이 받은 저주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될 때 함께 끝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왜 탄식합니까?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로마서 8:23)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다는 말은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음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몸의 속량(贖良)', 곧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왜 탄식합니까? 사람이 시련과 환난 속에서 고난을 이겨내려 인내하지만 연약하고 무지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조차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이 현재의 고난을 감당하기에 연약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로마서 8:26)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로마서 8:27)하십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서 8:19)라고 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까? 바울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에베소서 4:22-2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바로 거짓된 욕망으로 부패해 가는 옛날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입니다.

1750년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 이후 이 인류의 성장은 가속화되었습니다. 1950년에 25억이던 인류는 지금 78억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전 세계의 GDP는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대형 댐, 물 사용, 교통과 통신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지금은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잘 먹고 사는 시대'입니다. 우리 근육의 힘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구로부터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써서, 그리고 엄청난 쓰레기를 지구에 버림으로써 이룬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0.01% 증가했습니다. 겨우 1만분의 1 증가했는데 그 결과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약 1도 올랐습니다. '겨우 1도'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 할지 모릅니다. 사실 1도는 직관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온도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일교차가 10도 이상인 날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후변화는 지구와 인간에게 급소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허벅지에 강한 충격을 받으면 멍이 들고 맙니다. 그러나 멍들 정도의 충격을 급소에 가하면 즉사합니다. 온실가스는 지구의 급소입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겨우 1도' 올랐는데 우리는 매년 '역대급 폭염'이니, '1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더위'니 하는 보도를 듣습니다. 이 말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100배나 증가했다는 말입니다.

기후변화가 감염병의 창궐과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지난 2천 년의 역사만 봐도, 서기 200년 이후 세계기후가 한랭 건조기에 들어섰을 때 농업생산량이 뚝 떨어졌고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리자 감염병이 창궐했습니다. 로마제국을 강타했던 '유스티니아누스 병'이 그것입니다. 서기 800~1300년 중세 온난기에는 기후 조건이 좋아져 농업생산량이 매우 증가하고 감염병은 돌지 않았습니다. 사실 인간에게 최고의 백신은 주사가 아니라 식량입니다. 그러나 서기 1300년 이후 지구에 소빙하기가 찾아오자 식량 생산량이 다시 형편없이 떨어지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멸절시킨 흑사병이 그것입니다. 18세기 초까지 이어진 이 소빙하기에는 우리나라도 조선 현종 임금 때 1670년 경신 대기근이 들어 당시 인구 1300만 명 중에서 85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소빙하기(Little Ice Age)라 하니 지구의 온도가 급속히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겨우 0.2도 낮아졌을 뿐입니다. 이 작은 온도의 차이가 지구의 기후를 바꾸고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지난 100년 만에 인류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1도나 올렸습니다. 그 결과가 갈수록 온 인류가 경험하는 기후 재앙입니다. 한반도에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아열대 기후가 되어간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2018년부터 역대급 폭염과 초강력 태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한반도만이 아닙니다. 2019년에 호주를 6개월 동안이나 집어삼켰던 초대형 산불을 기억하시는지요. 인도양 서쪽과 동쪽의 바닷물 온도가 2도나 차이가 나면서 발생한 이 산불로 호주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3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악마의 불'(fire devil)이라 불린, 중심부 온도가 1,000도가 넘는 수백 미터 높이의 화염 토네이도가 시속 200km의 바람을 타고 호주 전체를 집어삼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캐나다가 불타고 있습니다. 벌써 남한 면적의 40%가 초토화되었고 연기가 미국의 워싱턴 D.C.까지 날아가 숨쉬기 어렵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태우고 버린 온실가스로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태양에서 왔다가 지구를 덥힌 복사열은 다시 우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온실가스에 갇힌 열에너지가 지구에 쌓이고 있습니다. 1초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가 터지는 양으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하루 43만 5천 개 원자폭탄이 폭발한 것과 같은 막대한 열에너지가 날마다 지구에 갇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문명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비롯된 것"(조천호 전국립기상원장)입니다. 과거의 위기는 결핍 때문에 왔습니다. 둑이 결핍해서 홍수가 왔고, 저수지와 댐이 결핍해서 가뭄이 왔습니다. 보건 위생이 결핍해서 감염병이 왔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원인은 결핍이 아닙니다. 과잉입니다. 성공입니다. 탐욕의 과잉과 문명의 성공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패보다 성공을 더 조심해야 하지요. "역경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성공과 번영을 잘 견뎌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토마스 칼라일)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지나친 성공과 번영으로 지구가 깊이 병들었습니다.

서재환 시인의 <걱정>입니다. "하늘나라 하나님은 / 요즘 / 걱정이 많으실 거야. // 무거운 돋보기를 손에 들고 / 벌레 먹은 사과 같은, 복숭아 같은 / 상처 난 지구를 멀리서 내려다보며 / - 저런, 내 별 하나 못쓰게 됐군. / 쯧쯧쯧...... // 밤이면 손전등 달로 / 낮이면 손전등 해로 / 우리가 사는 모습 비추시며 / 맨 처음 만든 세상 생각하실 거야. / 지 / 금 / 도 // 지그시 눈을 감고 / 이마에 깊은 주름 새기고 계실 거야."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당신께서 손수 지으신 이 세계를 바라보시며 땅을 파괴함으로 스스로 파괴하는 무지하고 연약한 인간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저희가 성령의 탄식을 멈추게 해드릴 수는 없을까요.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크리족 예언,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스위스의 개혁주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1889-1966)는 절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의 유명한 논쟁에서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preserving grace)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창조 당시의 은혜를 모두 걷어가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빛을 비추시며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과 힘 그리고 자연계의 삶과 모든 물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브루너는 이것을 '보존의 은혜' 혹은 '보편은혜'(general grace)라고 불렀습니다. 현재 이만큼이라도 세계가 지속할 수 있는 것은 타락하고 멀어진 피조물까지도 거부하지 않고 자비와 긍휼로 여태 돌보시고 도우시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는 말입니다. 자연에는 하나님의 계시도 없고 은혜도 없다고 주장한 칼 바르트에 맞서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를 말한 에밀 브루너의 생각이 요즘 얼마나 저를 위로하는지 모릅니다.

실로 성서는 하나님의 이 보존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히브리서 2:10, 새번역)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하나님의 본체대로의 모습"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히브리서 1:3, 새번역)이라고 했습니다. 실로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를 예고하시며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가]...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셨지만,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창세기 6:17-20)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헤미야 9:6)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간절히 고별기도를 드리실 적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셨고, 또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한 17:11, 15)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전(保全, 온전하게 보호해서 유지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만물을 보존(保存, 보호하여 간수하여 남김)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오만과 끝도 없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이렇게 파괴되었음에도 오늘까지 우리가 이렇게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8:9) 하신 하나님의 의지가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9) 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려왔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고통에 신음하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에 둔감한 채 달려왔습니다. 세상이 병들었는데 나만 건강할 줄 알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달릴 수는 없습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필요에 따라 만들고, 사용한 뒤 그냥 버리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만들고 너무 쉽게 버렸습니다. 더 좋은 옷, 더 맛있는 음식, 더 안락한 집에서 살려는 욕망만 무한정으로 키워왔습니다. 이웃과 자연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은 키우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번 쓰고 버린 썩지 않는 쓰레기들이 수많은 생명을 질식시키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어가게 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너무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삶이 성령의 큰 근심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큰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아, 언제 인간은, 그리고 온 피조물은 이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르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에스겔 18:30-32) 하나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베드로후서 3:9)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종래의 제도, 관행, 생활방식, 그리고 신앙습관으로는 이제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en Christo)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서 8: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입니까? 거짓된 욕망으로 부패해 가는 옛날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여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사랑으로 지으신 온 창조세계가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바라보시며 땅을 파괴함으로 스스로 파괴하는 무지하고 연약한 인간을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께서 바로 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개역개정)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 약속을 신뢰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가려 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서 8:19) 한국의 대문호 박경리의 <기다림>입니다.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 산은 무너져 가고 / 강은 막혀 썩고 있다 / 누가 와서 /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 물에는 물고기가 살게 하고 / 하늘에 새들 날게 하고 /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 정다운 것들 /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 다 떠나기 전에 // 누가 와야 한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바로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리는 바로 이 '누구'이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2023년 6월 11일 이화여대 대학교회 주일예배에서 장윤재 목사가 전한 설교문 전문입니다. 설교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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