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예레미야 애가서 2장 1-13절

설교문

[하늘이 무너지고, 호랑이에게 물려갈 때]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 처하더라도 살아나갈 방도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도 있지요. 이 또한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정신만 똑똑히 차리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하는 사람이 매우 위급하고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토대가 무너지는 지구 전체의 문제이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은 객관적 상황에 더 초점을 둔 말이지만,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이야기는 어려움에 처한 당사자의 주관적 태도와 의지에 강조점을 둡니다. 그러나 이 옛 속담들은 모두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하늘이 무너지고 호랑이에게 물려갈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 재앙은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에 빗댈 수 있고,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각 개인이 당하는 어려움은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에 견줄 수 있습니다. 호랑이 한 마리가 살려면 멧돼지 수십 마리가 있어야 하고, 멧돼지가 살려면 충분한 녹지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3/2가 산악지대고, 온대 지역이어서 상수리 나무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분포합니다. 그래서 멧돼지가 살기 좋은 환경이었고, 멧돼지의 포식자인 호랑이도 많았습니다. 살기 좋은 환경과 호랑이의 재앙은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사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전반적으로 우리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는 노동의 시간을 줄여 주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여가를 누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신속한 도래는 누군가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큰 불편함을 안겨 줄 수 있으며, 소외감마저 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의 발달에 의한 세계의 변화 못지않게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정치(政治)입니다. 한 나라를 잘 이끌어가는 문제,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갈등을 해소하는 문제,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문제, 변하는 시대에 어떤 인재들을 양성하고 기를 것인가 하는 문제 등 정치는 실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합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여실하게 느낀 것이지만, 어떤 정권을 창출하느냐가 그 나라 국민의 삶에 있어서 엄청 중요합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휴전협정 70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휴전이라는 말 그대로 전쟁을 종식하지 못하고 아직 쉬고 있는 상태입니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으로 가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의 서명한 당사국도 아닌데다가, 복잡한 국제질서 속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금은 어떤 발전된 모습도 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경제교류 등의 물꼬를 틀려고 노력하면서 이를 위한 다자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의 한복판에서 운전자 노릇을 하려고 했던 반면, 지금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의 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미국과 일본에 바싹 붙은 기울어진 외교정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북한은 우리와는 만나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들이 직접 일본과 미국을 상대하려 하지만,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지난 오바마 정부처럼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는 명목으로 냉랭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런 틈새를 타서 북한의 자원들을 노리고 계속 협상을 시도합니다.

한편 미국과 중국, 양대 강국의 패권 싸움 속에서 우리가 한쪽 편만을 들고 있는 관계로 대중국 무역은 악화일로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서 우리만 피해를 보는 형국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에게는 납작 엎드렸는데, 결과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지도 못하고, 일본보다 더 일본편을 들고 있는 이상한 장면들을 계속 목격하게 됩니다.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로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사회적 대 전환기에 외교는 불안하고, 경제마저도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무능한 정부가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앞날이 더욱 불안한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생각지 못한 위기가 닥쳐서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믿음으로 더 세심하게 변화하는 세계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레미야 애가서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는 다섯 개의 시를 모은 책입니다. 방금 저는 지금의 위기를 말씀 드렸지만 애가서는 나라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라는 엄청난 파국을 겪고 탄식하는 노래입니다. 하늘이 실제로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이들은 다시 솟아날 구멍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도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을 때 하늘이 무너졌었고, 온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에는 우리도 애가를 불러야 했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잘 표현된 애가는 그야말로 절절합니다.

"주님께서 노하셔서, 야곱의 모든 보금자리를 사정없이 불사르시고, 유다의 도성 성채들을 무너뜨려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통치자들을 욕보이셨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라도 되신 것처럼, 그를 삼키시고, 모든 궁을 삼키시고 성채를 부수시어, 유다의 도성에 신음과 애통을 더하셨다. 주님께서는 성막을 들에 있는 원두막처럼 부수시고, 회막도 그렇게 허무셨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명절과 안식일을 없애셨다. 진노하셔서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단도 버리시고, 당신의 성소도 역겨워하셨다. 궁전 성벽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시니, 그들이 주님의 성전에서 마치 잔칫날처럼 함성을 지른다."

"내 백성의 도성이 망하였다.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성 안 길거리에서 기절하니, 나의 눈이 눈물로 상하고, 창자가 들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숨져 가면서, 먹을 것 마실 것을 찾으며 달라고 조르다가, 성 안 길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처럼 쓰러진다. 도성 예루살렘아, 너를 무엇에 견주며, 너를 무엇에 맞대랴? 도성 시온아, 너를 무엇에 비겨서 위로하랴? 네 상처가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할 수 있겠느냐?"

남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바벨론 제국이었습니다. 바벨론은 고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리적 중심지에 위치하면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농경지를 바탕으로 성장한 제국입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왕이 당시 강대국인 페르시아 지역의 엘람 왕국을 제압하고 지금의 이라크 지역의 군소 국가들을 병합하여 이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함무라비는 시와 예술, 학문을 장려하고 세금과 공공노역 시스템을 제도화하며 주변 이민족들을 받아들여 바벨론을 통합된 국제도시로 만들었는데, 이들을 다스리고 사회적 안정을 위하여 마르둑을 주신으로 하는 정치종교 시스템을 마련합니다. 기원전 12세기 느부갓네살 1세 왕에 의해 마르둑 신화를 중심으로 한 사회체계가 더욱더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왕은 마르둑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집니다.

느부갓네살 2세는 바벨론 도시 문명을 정점에 올려놓은 사람인데 기원전 7세기에 바벨론을 18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 도시로 만들었고, 바벨탑 모양의 지구라트, 푸르른 공중정원, 화려한 문양의 거대한 문과 건축물들을 지었습니다. 이 왕이 바로 남유다를 침공하여 멸망시킨 왕입니다. 열왕기하 24장은 그때의 상황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때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이 도성을 포위하였다. 느부갓네살은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보물과 왕궁 안에 있는 보물들을 모두 탈취하여 갔고,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만든 주님의 성전의 금그릇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어서 깨뜨려 버렸다. 더욱이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관리와 용사 만 명 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갔다. 그래서 그 땅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 말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왕을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그의 어머니와 왕비들과 내시들과 그 땅의 고관들을 모두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또 칠천 명의 용사와 천 명의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는데, 이들은 모두 뛰어난 용사요, 훈련된 전사들이었다."(24장 10-16절 요약정리)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물자를 약탈하고 종으로 삼는 일들은 인류의 역사 내내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21세기인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서 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우크라이나 젊은이, 러시아 젊은이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나쁜 일이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어리석게도 인류는 계속 전쟁을 일으킵니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괴롭히고,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계속 당하는 역사가 이어집니다.

[한국 땅에서 일어난 세계 전쟁]

우리나라도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언제나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한국 전쟁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 국민 누구 하나 우리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 어리석음은 전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한국 전쟁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김일성의 침략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당시 국제 정세와 전쟁의 진행을 살펴보면 한국 전쟁은 그저 남북한의 싸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세계는 각 열강들이 패권을 다투는 제국주의의 시대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일본 등 세계의 열강들은 자신들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강압과 무력을 통해 다른 민족과 나라를 병합하고, 그들을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지배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려 갔습니다. 열강들의 다툼 속에서 세계 전쟁이 두 차례나 벌어졌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오래도록 제국의 그늘 밑에 있던 식민지 백성들은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경제적 착취에서 벗어나 누구든 인간으로 존중받는 평등을 강렬하게 열망하게 되는데, 자유와 평등! 이 두 가지 가치를 내세우는 과정에서 세계의 세력이 양분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자유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평등을 내세우며 서로 이념 대결을 합니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와 연동되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었고, 경제적 평등을 내세우며 인민에 의한 정치를 지향했던 세력은 공산사회를 이루어가고자 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나라를 되찾았지만, 세계 질서가 냉전 체제로 재편되면서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나뉘고 맙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남쪽의 이승만이나 북쪽의 김일성은 각각의 이념을 중심으로 북진과 남진 정책을 썼고, 하나의 이념으로 통일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서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물론 한국 전쟁이 전면적으로 일어난 것은 스탈린의 허락을 받은 김일성의 오판이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도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과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쟁의 판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서울을 수복하고 이승만과 맥아더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3.8선을 넘어 북진합니다. 이들은 3.8선을 넘지 말라는 중국의 경고도 무시했는데, 압록강이나 두만강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평양과 원산까지는 정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이 개입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대로 자신의 야망이 있었고, 평양과 원산 북쪽의 땅을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30만 대군을 파병합니다. 이제 전쟁은 미국과 중국 간의 싸움이 되어 버립니다. 낮에는 미국의 강력한 공군의 힘으로 승기를 잡았으나, 밤에는 중공군의 기습 침투와 매복 등으로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김일성은 남한을 일제의 잔재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하겠다는 기치를 내세우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한국을 돕고, 중국은 함께 일제와 싸운 조선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참전했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부 자기 이익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김일성이나 이승만은 모두 자기 지배력을 확대시키려 한 것이고, 미국은 소련과 중국의 세력 억제를 위해, 또 소련과 중국은 우리나라를 자신의 세력권 안에 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백성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 삶을 살아야 했고, 일본이 물러간 다음에는 소련과 중국, 미국의 세력 다툼 속에서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고, 마치 섬처럼 되어 버린 이 작은 땅에서 아웅다웅 살게 된 것입니다. 2년 10개월의 전쟁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혔음은 물론 우리 사회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양쪽 모두 권위주의적인 정치 세력이 등장하게 만들었고, 특히 북쪽은 수령론이라는 유일지배체제가 생성되어 3대째 김씨 일가가 지도력을 세습하였습니다. 남북 사이의 대결과 이념 갈등으로 인한 손실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끊임없이 정치적 이념 공세를 하여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인민"이나 "동무"라는 말은 참 좋은 우리 말인데, 남북의 이념 갈등으로 남쪽에서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금기어처럼 되어 버렸고, 전쟁 속에서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생긴 집단 트라우마는 70년이 넘도록 우리의 건전한 정신을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을 지나면서 지금 세계는 다시금 자국 이기주의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신(新) 냉전 질서가 싹트고 있습니다.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과거에 당한 일을 또 당하지 않으려면 그야말로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우리의 정신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애가서는 나라 잃고 폐허가 된 땅과 도시를 보면서 슬퍼하는 구절이었지만, 3장에 가면 변함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희망을 걸면서 왜 자신들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어떻게 하면 이 고난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위한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입니다. 왜 우리는 아직까지도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주체적인 외교를 못하는 것인지, 왜 아직도 우리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는지, 왜 우리는 전쟁 후 70년이 지나도록 남북한의 자유로운 왕래조차도 하지 못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평화를 일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왜 하필 기독교인들의 언어가 계속해서 혐오와 증오의 언어로 가득한지 우리는 차분히 성찰해야 합니다.

지난 6월 6일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평화 지킴이를 길러내는 국경선 평화학교 준공식과 평화 음악회, 1만 시민 DMZ 노래 부르기에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함께 부른 노래 중 "우리 겨레"라는 노래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하나 될 금수강산 생각에 내 가슴이 다시 설레고 손잡고 함께 할 날 떠올리며 또 하루가 새롭다. 무궁화 목란꽃을 안고서 우리 함께 노래 부르세, 얼마나 소원했던 통일인가 꿈에서도 그립다." 남한의 국화인 무궁화와 북한의 국화인 목란꽃을 안고서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들이 있고, 삼일절에도 일장기를 내거는 얼빠진 인간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은 참된 정신입니다.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의 태도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깨어 있는 마음입니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늘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을 간직하시고, 태양을 바로 볼 수 있는 독수리의 시선을 갖추시길 빕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새롭게 솟아날 구멍을 찾고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남북이 갈라져서 각자 살아온 날이 벌써 70년이 됩니다. 아직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증오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돕고 한 마음이 되어 한 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함께 만들어야 하지만, 낡은 이념에 사로잡히고, 정치꾼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주님 원하시는 평화는 자꾸 멀어집니다. 갈수록 세상은 더 깊은 혼돈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 세계는 뜨거운 폭염과 산불과 태풍과 강풍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온 나라들이 협력해야 하지만 자국 이기주의의 늪에서 단 한 걸음도 빠져나오고 있지 못합니다. 주님! 우리 인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슬피 울며 탄식하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여 주소서. 깨어 있는 정신이 되게 하소서. 역사에서 배우고, 주님의 가르침에 성실하게 따르게 하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방황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반항할 때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할 사람들을 주시고, 아름다움은 누리게 하시며, 고요히 머물 장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놀라운 선물들, 우리가 배운 진리와 성취할 수 있던 선한 일들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받은 천국의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바쁜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더욱더 평화의 아들딸로 살아가며, 한 형제자매, 한 겨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축도

지금은 산 자에게 사랑을, 죽은 이에게는 평화를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사귐, 애틋한 위로가 사랑과 지혜의 영, 거룩한 영의 가르침에 따라 혼란스러운 세상,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실천하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거룩한 영을 힘입어 주님의 자녀로 평화를 일구는 전국의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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