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불신의 시대를 넘어서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미가서 7장 1-8절

설교문

[내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오늘 함께 읽은 성서는 미가서입니다. 미가서에는 철부지 신앙이 아닌 성숙한 신앙인이 평생에 걸쳐 묵상하며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바로 미가서 6장 6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예언자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묻습니다. "제가 무엇을 드리면 하나님 마음에 들까요?"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물은 이런 것들입니다. 일년된 송아지, 수천 마리의 양,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고대 사회에서 가난한 일반인들에게 고기를 맛보는 것만큼 큰 기쁨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잘 사는 나라가 되어서 육식이 흔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고기는 명절이나 어른들 생신 때가 되어야 맛볼 수 있는 것이었지요. 양고기는 유목민들의 주식이고,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는 지역,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매우 즐겨 먹는 고기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자주 먹지 못하니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실컷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서가 수천 마리의 양이라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일년 된 송아지의 고기는 평생에 가야 한두 번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고기였습니다. 결혼식과 같은 큰 잔치를 벌일 때야 한 두점 맛볼 수 있지요. 너무 어린 송아지는 고기가 연하지만 육향이 나지 않고, 마블링도 별로 없어서 고기의 풍미를 느끼기 어렵지만, 1년 된 송아지는 고기가 연하면서도 고기의 맛을 최대로 느낄 수 있고, 마을 잔치에 쓸 만큼 충분한 양이 나오기 때문에 아주 값진 것입니다. 올리브 기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고급 요리에는 다양한 풍미가 나는 올리브 유가 들어갑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자 새우깡도 일반 새우깡이나 매운 새우깡은 90g에 1,500원인데, 트러플(송로버섯) 오일향이 첨가되고, 올리브기름도 0.16% 들어가 있는 새우깡 블랙은 72g에 2,000원이나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록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실 가난한 민초들의 고달픈 삶과 소박한 바람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성서 구절 하나에도 사실 마음이 짠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왜 귀한 제물을 준비해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일까요?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함입니다. 고대인들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하나님이 재앙과 재난, 불행을 내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도록 신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라는 구절은 실제로 인신공양(人身供養)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그래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고, 신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까지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벌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신의 비위에 맞게 좋은 것을 바쳐서 재앙을 피하고 복을 받으려는 생각과 행위는 유한한 존재로 불안을 달고 사는 모든 종교적 인간에게 보이는 보편적 특성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어린아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매우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참된 신앙이란 나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내 삶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쥐락펴락해 보려고 하는 행위 속에서의 관심이란 여전히 자기 문제의 해결입니다. 내가 중심이고 신도 나를 위해 필요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신앙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험난하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또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고통을 스스로 초래하기 때문에, 또 어떤 경우는 생각지도 않은 일이 발생하면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 찾아오기도 하기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줄 초월적 존재, 전능하시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를 찾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급박한 상황이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기에 사실 그때의 행동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자기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만 하나님을 찾는 방식은 결국은 자기의 탐욕을 강화시키게 됩니다. 기복적 신앙으로 성장한 한국교회가 이제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와 손잡고, 기업처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종교와 사회의 부패]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기대어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만을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미가서는 바로 사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포도나무 같다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이 땅에 신실한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정직한 사람이라고는 볼래야 볼 수도 없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다만, 사람을 죽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는 자들과, 이웃을 올가미에 걸어서 잡으려고 하는 자들뿐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는 이력이 난 사람들이다. 모두가 탐욕스러운 관리, 돈에 매수된 재판관,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자뿐이다. 모두들 서로 공모한다. 그들 가운데서 제일 좋다고 하는 자도 쓸모 없는 잡초와 같고, 가장 정직하다고 하는 자도 가시나무 울타리보다 더 고약하다. 너희의 파수꾼의 날이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날이 다가왔다. 이제 그들이 혼란에 빠질 때가 되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아라. 친구도 신뢰하지 말아라. 품에 안겨서 잠드는 아내에게도 말을 다 털어놓지 말아라. 이 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다툰다.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 사람일 것이다."(미가서 7:2-6)

예언자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탄식 가운데서 정말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픈 이야기는 품에 안겨서 함께 잠드는 배우자에게도 모든 말을 다 털어놓지 말라는 것이며, 가족들마저도 원수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만을 챙기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사실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되어 모두가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고 맙니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너무 끔찍한 일들이 벌어져서 정말 걱정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였나 싶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는데 제가 잘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요즘 와서 더 심해진 것인지 모르지만, 벌건 대낮에 묻지마 폭행과 강간, 살인들이 너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점점 늘어나는 세상이 되어서, 도심에 장갑차까지 끌고 나오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처럼 신뢰가 없는 사회는 설 수 없고,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을 때 우리 인생은 황량한 사막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언자는 절망적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절망으로 끝내지는 않습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기다린다. 내 하나님께서 내 간구를 들으신다. ~중략~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주님께서 곧 나의 빛이 되신다."(미가서 7:7-8) 예언자 미가의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이야기일까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주님께서 직접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에서 우리가 그토록 경계한 자기중심적 신앙 태도와 하나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실로 주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영이 활약하시도록 우리가 주님의 손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언자 미가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서 6:8)

고대 근동 지방의 신들이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을 흠향하며 기쁨을 누리고 만족하였다면, 야훼 하나님은 이런 신들과는 다른 분이라는 사실이 오늘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야훼 종교는 '공의'와 '사랑'의 종교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 모든 생명에게 적용될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의를 세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본능적 성향으로 인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만 잘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공의와 사랑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모두가 자기만 챙기는 이 험악한 세상에 마지막 남은 빛의 보루입니다.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종교가 양이나 소를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사려는 종교라면 그리스도교는 야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는 종교입니다. 고대 종교는 희생제물을 바쳐서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지만, 야훼 종교는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합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쓰는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롬 12:1) 그렇습니다. 소나 양 같은 제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의 윤리적이고 거룩한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서기 590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신앙의 백성들이 불경건한 삶, 죄악의 삶에서 방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곱가지 대죄(septem peccata capitales) 목록을 공개합니다. 교만(Superbia), 인색(Avaritia), 질투(Invidia), 분노(Ira)(분노), 음욕(Luxuria), 탐욕(Gula), 나태(Pigritia)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늘 조심해야 할 것들이지요.

한편 인도의 사상가인 마하트마 간디는 56살이던 1925년 '젊은 인도'(Young India)라는 잡지에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곱가지 사회악'(The Seven Social Sins)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합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7대 사회악은 자신의 손자인 아룬 마닐랄 간디(Arun Manilal Gandhi)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날에 그에게 남겨주었던 말이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성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희생 없는 예배'(Worship without Sacrifice).

[불신의 시대를 넘어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요? 법 위에 서서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권모술수의 정치, 검찰 공화국이 되어 압수수색으로 윽박지르는 정치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원칙이 사라진 세상이다 보니 땀과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중학생들까지 마약에 노출되고, 권력에 눈치 보는 언론과 어용 지식인들이 가득합니다. 돈이 된다면 몸에 해로운 것도 거리낌 없이 팔고, 상인들의 비양심적인 눈속임에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집니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시지만 거기에 과연 인간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인류가 진보한다고 하지만 죄의 목록들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 사회도 간디가 말한 7대 사회악이 점점 더 확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모양으로 가게 된 것의 근원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아서, 고귀한 가치를 내동댕이치고 돈이면 다 된다는 착각 속에서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물질적 이기주의, 자아도취적 자기중심주의가 있습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면,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에 '불신의 시대'라는 말을 넣은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다면 바로 이 불신의 시대를 넘어서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디가 종교를 언급하면서 "희생 없는 예배"가 악이라고 했던 것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저만 살겠다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 나를 내어 주겠다는 희생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은 바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 주신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내어 줄 때 남이 살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가 삽니다. 죽으면 오히려 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함께 생명나눔 예배를 드립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는 1991년에 설립되어서 110만 여명의 장기기증 등록자를 모집하여, 우리가 죽음 이후나 뇌사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의 인체 조직 일부를 고통받는 환자에게 제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단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자라고늙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2013년에 이미 장기기증 등록을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신 분들은 다시 한번 확인을 하시고, 하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 함께 동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설교 후에 곧바로 안내 동영상과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기획국장이신 박은영 선생님께서 안내를 해 주실 것입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장기이식을 희망하는 환자는 4만 여명이나 되는데, 매일 7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 때에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 새로운 생이 열렸을 것입니다. 잠시 후에 박은영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시겠지만, 각막 기증의 경우 생후 6개월부터 85세 미만까지 모두 기증이 가능한데, 각막 이식을 기다리는 시각장애 환자는 2만여명이나 됩니다. 장기기증을 한다고 해서 장례절차에 문제가 생길까를 염려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무런 지장이 없고, 장기기증 서약은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희망등록이기도 합니다. 하실 분만 편하게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서약서 작성에 드는 시간은 1-2분이면 되고, 장기기증 희망 등록증도 바로 발급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통해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야 합니다. 불신의 시대를 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 자기를 넘어서서 믿음의 형제자매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세상의 불의와 맞서 싸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여 아끼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할까요? 늘 넘어지기 쉬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미가 예언자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서 6:8)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매를 찾으십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포도나무가 되거나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은 갈수록 하나님은 없다 하면서 제멋대로 굴러가려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고통과 두려움, 불안과 절망이 가득합니다. 흉흉한 소식들 때문에 언짢은 마음이 들고, 편한 밤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찾기도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주님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게 하소서. 주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으로 불신의 시대를 극복하게 하소서. 우리가 먼저 믿을만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는 초 한 자루가 되게 하소서. 주위가 어둡다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한 자루의 초를 켜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님을 증명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인자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주님, 앞으로도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드러내소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예물을 드릴 때, 우리에게도 기쁨이, 감사가, 자유가 넘쳐나게 하소서. 주님께 드리는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소서. 예물에 깃든 우리의 정성과 마음도 보아주소서. 생명을 살리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세워 주셨음을 압니다. 주님께 드린 예물로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감당할 사역을 잘 이뤄가게 하소서. 이 모든 감사를 주님께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세상 욕망을 따라가지도 마십시오. 세상에서 착실하게 살면서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희망을 찾으십시오. 그 희망이 실현되도록 공의를 실천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행하십시오.

*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람이 되어 여러분을 주님 곁으로 데려가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생명이 되어 여러분의 영혼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전능하신 주님,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히 여러분 곁에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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