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이성 중심의 인본주의를 상대화시킨 아브라함 카이퍼"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기독교철학』 최신호에 특별 기고

sonbongho
(Photo : ⓒ베리타스 DB)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기독교철학』 최근호(제37호)에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철학'이란 제목의 손봉호(85) 서울대 명예교수의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손 교수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형성사를 논하며 현대 기독교 세계관의 특징과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헬레니즘 문화권에 복음이 전파된 시점에서부터 지식과 신앙의 긴장 관계가 형성됐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른 바, 믿음과 학문은 서로에 각각의 권위를 내세워 다른 길로 발전을 거듭했다. 학문이 이성의 권위에 기댔다면 믿음은 성경의 권위에 의존했다.

하지만 근대 과학혁명에 따른 과학기술의 발전은 "삶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고 이에 따라 지식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으나 거기에 비해서 "기독교 신앙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손 교수의 분석이다.

이성 중심의 인본주의가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무렵 이러한 인본주의를 여러 세계관 중 하나로 상대화시키는 전략을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형성시킨 인물이 등장했다.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였다.

손 교수는 카이퍼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성에 근거한 철학과 신앙에 근거한 기독교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양자 간의 조화를 시도한 이후 학문의 세계에서 계속 주도권을 행사했던 이성의 권위에 가장 과감하게 도전했다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독교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확인했다. 손 교수는 "기독교 세계관은 그와는 달리 그 자체가 당위적(prescriptive)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관점이 아니라 창조, 타락, 구속을 전제하면 "마땅히 가져야 할" 관점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즉 기독교 세계관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목적이다"라고 했다.

기독교 세계관은 당위적인 관점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세계관들과 구별된다는 주장이다. 손 교수는 기독교 세계관이 당위로 설정되는 이유로 "대부분의 다른 종교들이 자연종교인 반면에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란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들었다.

손 교수는 "구원의 방법 외에도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거나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바람직한 상황은 자연적으로 이미 주어지거나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개발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다른 세계관과 내용만 다를 뿐 아니라 세계관의 성격 자체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세계관과 이념에 대한 비교 분석도 이어갔다. 손 교수는 기독교 세계관이 이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념에 대해 "단순히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설명에 따라 상황을 바꿔야 하는 당위와 행동 지향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원화되고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회변혁 운동은 저항을 받을 수 있고 특히 정치적 행동으로 표현되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 손 교수는 나치즘과 막스-레닌주의와 같은 종교적 열정이 동반된 이념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철학과 기독교 세계관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손 교수는 "아직도 분명하게 개념화되어 있지 않은 기독교 세계관은 그것을 개념화하는 철학에 의하여 인식될 뿐만 아니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철학은 일종의 해석학적 순환을 거치면서 상호 발전할 수 있고,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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