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습니다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1장 14-22절

설교문

[삶을 오롯이 담은 말의 깊이]

우리가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그것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려면 바울이 편지를 쓰는 교회의 상황과 그 교회가 처한 사회가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지난주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있듯이, 일상어에서도 오해가 발생하는데, 2,000년이나 된 고대의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때-거기'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성경을 읽을 때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와 사유, 삶의 경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 저자가 전하려는 하나님 체험을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우선 같은 말을 해도 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립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이나 집, 길 가나 바닷가에서 가르치셨을 때, 듣는 사람들이 저마다 "그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라고 말하지요.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전문성을 가지고 남들이 모르는 것이나 잘못 알고 있는 것까지 세세하게 알려 줄 때, 말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정확한 효과가 나타날 때 우리는 그 말에 권위를 느끼게 됩니다.

또 같은 사람이 한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합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라는 속담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되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바로 이런 것들을 주의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의 한 구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고후 1:20)

여러분께서는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바울 사도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예수님, 하나님의 약속과 그것의 실현,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과 우리가 지녀야 할 신앙에 대해서 여러분은 이 구절을 통해 무엇을 깨달으시나요?

[값싼 은혜와 얕은 믿음을 넘어서]

그동안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을 예수님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신다는 뜻으로 읽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욕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나님 믿으면 다 잘 된다는 '삼박자 구원'이나, '번영 신학', '기복 신앙'을 부추기는 구절로 읽어낸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마음먹은 대로 뭐든 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전파한 사람 중에 하나는 미국의 대형 교회인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 조엘 오스틴입니다. 미국에서도 20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 2005년에 출간되었던 <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라는 책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2009년 판으로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나름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여 성장을 멈춘 상태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부부를 차에 태우고 섬 곳곳의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다. 얼마쯤 가다가 그들은 차를 멈추고 언덕 위의 눈부신 집 한 채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푸르른 야자수와 아름다운 화초가 가득한 집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는 문득 아내와 친구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저런 집을 꿈도 꿀 수 없겠지?"

순간 그의 마음에서 뭔가가 속삭였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넌 안 돼. 너는 저렇게 멋진 곳에서 절대 살 수 없어.'

깜짝 놀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아니, 왜지?'

'상상하지 않는 한, 마음으로 보지 않는 한, 그런 멋진 일은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않아.'

그는 평범한 생각과 태도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나아가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을 믿기로 결심했다.

이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다.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적은 마음속에 있다. 하나님의 자원이나 우리의 재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다.

'난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어. 이게 내 한계야. 내가 그렇지 뭐.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어? 이제 난 글렀어.'

슬프지만 맞는 소리다. 당신이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가장 먼저 '큰 비전'을 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최선의 삶을 살려면, 먼저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봐야 한다.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번창하는 모습을,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라. 마음에 품고 굳게 믿어야 꿈은 이루어진다. (조엘 오스틴 저/정성묵 역, <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 긍정의 힘, 2009. 1부 비전을 키우라. 15-16p)

저는 조엘 오스틴 목사가 말하는 "긍정의 힘"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적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고, 생각을 품지 않으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없다는 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백조인 줄 모르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많은 희망과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준 것이 사실입니다. 긍정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또 더 강한 사람이 되고,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조엘 오스틴 목사가 이것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 매우 큰 모욕을 느낍니다.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라면서 이 사회에서 높은 단계로 도약하고 가정이 번창하고 자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신앙의 전부인 양 떠벌이는 것을 무척 수치스럽게 느낍니다. 책의 어딘가에서 조엘 오스틴 목사는 "비행기 일등석으로 옮겨 탈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받은 거"라고 씁니다. 과연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진리와 신앙의 깊이가 이 정도일까요?

이렇게 값싸고 얕은 은혜와 신앙을 말하는 이들은 오늘 바울 사도의 말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라는 이 말씀도 이런 식으로 읽어냅니다. 바울 사도가 과연 조엘 오스틴 목사 같은 사람이 하는 의미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이 구절을 바르게 읽어내는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독일의 본 회퍼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본 회퍼 목사는 1944년 8월 28일 성서묵상집에서 바로 오늘의 이 구절 고린도후서 1장 20절 말씀을 묵상하고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에버하르트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디트리히 본회퍼 지음/손규태, 정지련 옮김, 『저항과 복종』 대한기독교서회 2010. 729-730.)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고 간구해도 되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네. 모든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는 무관하지. 하나님이 약속한 것과 그 분께서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매우 오래, 그리고 침착하게 예수의 삶과 말씀, 행동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깊이 생각해야 하지."

본 회퍼 목사는 여기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모든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는 무관하지."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비그리스도교적인 생각입니다. 본 회퍼 목사님은 하나님을 로또나 만능열쇠로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을 차근차근 고쳐줍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과 그분께서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매우 오래, 그리고 침착하게 예수의 삶과 말씀, 행동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깊이 생각해야 하지." 핵심을 바로 짚었습니다.

매우 오래 그리고 침착하게 예수님의 삶과 말씀, 행동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오늘 바울의 하나님을 이방 종교의 잡신으로 취급하는 꼴이 됩니다. 바로 바울 사도가 오래도록 그리고 침착하게 예수님의 삶과 말씀, 예수님의 행동과 수난과 죽음을 깊이 생각했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 하나님의 성취를 깨닫기 위해 "매우 오래, 그리고 침착하게 예수의 삶과 말씀, 행동과 수난, 죽음을 깊이 생각했습니까?" 여러분이 진실하게 그렇게 했을 때만 사실 오늘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 회퍼 목사님의 말씀을 계속 이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과 임재 안에서 살아도 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삶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삶이라는 것이지. 또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네. 또한 세상의 세력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며, 위험과 곤궁을 통해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뿐이지."

본 회퍼 목사님은 오늘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과 임재 안에서 살아도 되는데, 그런 삶이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삶이고, 우리가 하나님 곁에서 산다면 불가능한 것도 없고, 세상의 세력도 절대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바로 우리에게 닥치는 위험과 곤궁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임마누엘의 신앙과 긍정의 힘]

본 회퍼 목사님이 신앙의 알짬 가운데 하나를 짚으시는데, 바로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 편이 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은 편들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편'과 '다른 편'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깊은 적대감과 혐오의 풍랑, 분열과 다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순간 놀랍게 지독한 교만에 물들고, 나만 옳다는 착각 속에서 상대를 너무 쉽게 모독하고 멸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물론 다른 이들 곁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모두의 곁에서 묵묵히 그리고 끈질기게 견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은 누구에게나 부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하기에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그래서 너무 힘들고 지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 회퍼 목사님이 우리에게 정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해 보여도 "세상의 세력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며, 위험과 곤궁을 통해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뿐이지."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안에 거하기에 우리에게도 위험과 곤궁이 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굳은 믿음 안에 거하기 때문에 바로 그 곤궁과 위험 속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회퍼 목사님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요구할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을 간구해도 된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할 것은 없지만, 옳은 일을 하다가 받는 박해와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고, 간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계속 본 회퍼 목사님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의 기쁨이 수난 가운데, 우리의 삶은 죽음 가운데 숨겨져 있다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에서 우리가 우리를 지탱해 주는 사귐 안에 서 있다는 것이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Ja)과 '아멘'을 말했지. 이러한 '긍정'과 '아멘'이 우리가 서 있는 확고한 기반이지."

본 회퍼 목사님에게 "긍정의 힘"은 어디에서 발휘되나요? 바로 수난 한복판에서, 죽음 한 가운데서 발휘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귀기 때문에 사랑과 섬김, 정의와 평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다가 당하는 수난 속에서 기쁨을 누리고, 자기를 죽이고 남을 용서하며 고스란히 누명 속에 살아도 참된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아멘"과 "긍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만 편하고 자신만 넉넉하고 자신만 떵떵거리며 사는 자리에서 "아멘"과 "긍정"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을 위하다가 당하는 고난 속에서, 약자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모험 속에서 기쁨과 삶을 누리고 거기에서 "아멘"하는 신앙이 진짜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성탄절의 의미]

이제 끝으로 본 회퍼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면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의 때에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네. 이러한, 혹은 저러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네. 즉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감당할 자격이 이 세계에 주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와 같은 인간이 살았기 때문에, 오직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살 의미가 있는 것이라네. 예수가 살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알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도 불구하고 무의미하겠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런 저런 사람이 살고 있기에 삶의 의미를 느낀다고 하지만, 사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혼돈을 겪으며 삶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혹(惑)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립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또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그런 것 같지요. 갈팡질팡합니다. 요즘은 사람말보다 인공지능의 말을 듣는 게 더 낫다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정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로 오신 예수님을 축하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의 의미를 본 회퍼 목사님은 두 가지로 얘기합니다. 첫째는 이 세계에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감당할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세상을 보시고 아들을 보내셔도 되겠다고 긍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신 세상이라면 그래도 살아볼만한 거지요. 둘째는 예수님 같은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인간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같은 인간이 살았기에 오직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왜 아기 예수의 탄생이 거룩한 탄생, 즉 성탄(聖誕)인가요? 왜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무력하게 강보에 쌓여 말밥통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오시나요? 왜 천군만마를 이끌고 내려오지 않나요? 왜 영웅의 탄생이 아닌 살해의 위협 속에서 태어난 무력한 아기가 헤롯과 예루살렘을 뒤숭숭하게 만드나요?

하나님은 가장 약한 곳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희망을 만드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셔서 모두를 떠받치기로 마음 먹으셨습니다. 우리가 "예"라고 긍정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그냥 받아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도 그런 하나님을 따라 "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못난 사람도,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도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그저 넉넉하게 "예" 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 하면서 "아니오"를 동시에 말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말을 듣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 "예"가 되는 하나님의 성취와 의미, 그리고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욕심이 아니라, 세상 생각, 세상의 이데올로기, 세상의 힘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붙들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펼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에 "아멘"할 때만이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으로 세상을 품으시는 하나님! 주님은 놀라운 기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글자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광대한 우주를 품으시고 역사를 이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곁에 계셨고 늘 우리와 함께 하셨지만, 우리는 딴 길, 세상으로 가는 길을 택하고야 말았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헛소문에 속아 로마를 향했지만 그 길은 고단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된 고향으로 가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가는 모든 길목에서 우리를 살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걷는 모든 길 위에서 우리를 돌보시고, 성령님께서 우리가 머무는 육지와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해 주소서.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 하며 올곧게 나아가게 하소서. 듣는 마음을 주시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게 하소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기 예수로 오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고요한 밤 구유에 누이신 귀한 아기 예수께 우리의 몸과 마음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일깨우셨고, 게으른 잠에서 눈을 뜨게 하시며, 우리 안에 거룩한 사랑의 불을 피우셨습니다. 한 해 동안 주님께서 지피신 불로 우리 인생을 태우며 살아왔습니다. 거룩한 불이 내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왔습니다. 깊은 바다를 건너듯, 엷은 얼음 위를 거닐 듯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디뎠습니다. 그 발걸음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드리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추운 겨울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곳에 써 주소서. 우리는 우리의 것을 드림으로써 날마다 비워내는 훈련을 하게 하소서. 움켜쥔 손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향해 활짝 열어 놓은 마음에 생기 있는 삶이 펼쳐짐을 늘 깨닫게 하소서. 늘 우리를 지켜 주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십시오. "예" 하면서 "아니오"를 품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펼치시는 하나님의 "예"를 믿고 신뢰하십시오.

* 축도

여러분이 걷는 모든 길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여러분이 오르는 모든 언덕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여러분이 건너는 모든 개울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해안의 절벽과 산등성이, 빈들과 황무지, 초원과 바다,

평야와 사막의 한 복판에서도,

누울 때와 일어날 때,

일렁이는 파도와 자욱한 물보라에서도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내딛는 모든 걸음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