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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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예레미야 15:19-21, 로마서 8:35-39, 요한복음 16:31-33

설교문

오늘이 2023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1년 365일 중 정말로 마지막 날입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좋은 일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상처 많은 한 해였습니다. 몸에도, 맘에도 상처가 많이 났습니다. 어느 작가의 글, <인생의 흉터들>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둥글다고 말하지만 / 나는 가끔씩 세상이 모나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여기저기 모서리에 부딪쳐 / 자잘한 상처를 입으니까. / 하지만 내가 세상을 [살]면서 발견한 / 인생의 중요한 진실 하나는 / 정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엘라 윌콕스)

그래서 더 아픕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준 상처이기에 더 아픕니다. 정말로 "우리를 아프게 하고 전율하게 만드는 상처는 모두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준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상처를 입은 것만은 아닙니다. 나도 수 없는 상처를 주며 살았습니다. "낯선 타인에게는 곧잘 / 최상의 옷, 가장 달콤한 품위를 내보이면서도 / 정작 우리 자신의 사람에게는 / 무신경한 표정, 찌푸린 얼굴을 보인다. /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 잠깐 만난 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도 / 정작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 생각 없는 타격을 수없이 날린다." 그래서 작가가 다시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유일한 사람들은 / 바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모든 인간에게는 가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가시는 원래 누구를 공격하러 만든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닥치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입니다. 주엽나무를 아시는지요. 나무를 좀 아는 사람이면 줄기 전체를 덮고 있는 가시부터 떠올립니다. 원래부터 그랬나 보다 하겠지만 사실 무성한 가시들은 사람들이나 초식동물로부터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생겨 난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크게 자란 주엽나무는 가시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근처를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한두 해 사이 몰라볼 만큼 굵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납니다. 누가 자신의 몸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서성대기만 해도 주엽나무는 어느새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을 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손길이 멀어지면 무성했던 가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듭니다. (이종영,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사람의 삶도 주엽나무를 닮았습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닥치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지키기 위해 가시를 만듭니다. 그 가시로 서로 찌르고 찔립니다. 그래서 상처 없는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아프게 하고 전율하게 만드는 상처는 모두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준 것"이라는 사실이 진정 나를 아프게 합니다. 2023년도 이 상처들로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살길 헤맬 때 /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1, 2절) 이 찬송을 부를 때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요. 평범한 듯한 가사 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가 숨어 있습니다.

지구는 둥근데, 둥글지 않고 모난 세상이라 여기저기 수많은 모서리에 부딪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나 깨나 항상 살펴주시는" 누군가의 손이 있다는 말씀은 너무 큰 위로가 됩니다.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신다는 약속은 너무도 큰 힘이 됩니다.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 일용한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찬송가 393장)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기가 막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로마서 8:31-34)

바울은 지금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감정적 어조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기대고 있는 문학적 양식은 구약성서에서 발견되는 법정소송(lawsuit) 양식입니다. 검사의 역할을 하는 마귀 세력은 변호사 역할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권세에 대적이 되지 못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철저히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 증거 있습니까? 증거로 말해야지요. 바울은 그 결정적 증거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주신 사실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에게 그리스도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우리에게 내어주셨다는 것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더 다른 증거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다시 이렇게 자문자답합니다. 오늘 읽은 신약서신 본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39)

여러분은 2023년 한해 어떤 환난과 역경과 박해와 굶주림과 헐벗음과 위험과 칼의 위협을 받으셨습니까? 어떤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아픔을 줍니까? 바울은 자신이 받은 온갖 환난과 역경을 기억하면서 성경 말씀 시편 44편을 떠올렸습니다. 시편 44편은 기원전 722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 공동체의 한탄스러운 운명 앞에서 비통하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13-15절, 22절) 바울은 이 성경 말씀처럼 우리가 종일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공동번역)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새번역) 혹은 "거뜬히 이십니다"(현대인의 성경)라는 뜻입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하늘의 천사들이 수호천사처럼 중보(中保)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천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가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믿음'이 무엇인지 이렇게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그가 말하는 '확신'이 바로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믿음의 요체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절) 천상천하(天上天下) 그 어떤 존재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공동번역)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위협적인 존재들이라 하여도 모두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어떠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세상 끝날까지 모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또 거룩하게 보존되리라는 확신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하나님의 그 영원하고 신실하신 사랑이 보증하는 이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1서 5:4)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15:19-20)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절로 이런 감사의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게 문득 외로워져 / 집을 나와 겨울거리를 걸어보니 / 차가운 바람에 한기를 느끼며 / 그동안 나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던 / 두터운 외투에게 고맙고, / 외투가 없으면 춥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 내 몸에게도 고맙다 // 사랑에 실패한 후 /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 이별에게도 고맙고, / 쓰린 이별 덕분에 /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 아직도 내 머리 위에서 / 무너지지 않고 든든하게 서 있는 / 푸른 하늘에게도 고맙다 //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 문득 흐려져,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을 느끼며 / 인생을 산다는 건 / 행복하다가도, 문득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을 / 몸소 알려준 하늘에게 / 다시 또 고맙고 / 그걸 느낄 수 있게 /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신 / 하나님께도 감사한다 // 고맙다 고맙다 / 다 고맙다 / 이 세상은 고마운 것투성이다."(김종원, <고맙다, 고맙다, 다 고맙다>)

저는 채송화를 참 좋아합니다. 어릴 적 지천(至賤)으로 채송화가 피었었지요. 요즘엔 왜 그리 보기 힘든 꽃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요 중 하나도 어효선 작사, 권길상 곡 <꽃밭에서>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나팔꽃도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노래의 2절 가사는 참 쉬우면서도 철학적입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 날 보고 꽃 같이 살자 그랬죠." 날마다 꽃을 보며, 꽃 같이 살고 싶은데 왜 우리는 올해도 이리 아픈 생을 살았을까요. 꽃 한 번 쳐다보지 못하고 가시처럼만 살았을까요.

채송화가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 지으신 창조세계 안에 모든 존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존재들입니다. "난쟁이 꽃 / 땅바닥에 엎드려 피는 꽃 // 그래도 해님을 좋아해 / 해가 뜨면 방글방글 웃는 꽃 // 바람 불어 키가 큰 꽃들 / 해바라기 코스모스 넘어져도 // 미리 넘어져서 더는 / 넘어질 일 없는 꽃 // 땅바닥에 넘어졌느냐 / 땅을 짚도 다시 일어나거라! // 사람한테도 조용히 / 타일러 알려주는 꽃"(나태주, <채송화>) 올해 넘어진 자 계십니까? 조용히 타일러 알려주는 채송화에게 들을 일입니다.

오늘의 교독문이지요. 송영으로도 함께 불렀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이게 무슨 말입니까? 왜 산을 향하여 눈을 듭니까? 살다가 지쳐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혹여라도 높은 산에서 무슨 도움이라도 올까,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도움은 그 산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도움은 그 산을 지으신, 그 산의 산을 지으신,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아! 하나님은 산(山) 너머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산신(山神)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이렇게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아름답게 노래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5-8절)

이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로마서 8:31-34)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이 좀 더 따스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나 지금 누군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이 갑자기 눈부신 세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믿음과 이 확신을 가지고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갑진년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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