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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믿음이냐 사랑이냐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설명하기 위하여 이성의 힘을 필요로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어서 아는 데까지’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을 단순하게 ‘알기 위해서 믿는다’고 번역하면 좀 곤란하다. 아무튼 그가 제시한 신학의 이 과제가 중세기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의 논제로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규명하는 과제가 되었었다. 
 
중세기의 대표적 학자 안셀무스(1033-1109)는 말하기를 “나는 나의 이해력을 두고 숭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이 믿고 사랑하는 주의 진리를 이해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 말은 사람의 이성의 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며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어서 이해되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피터 아벨라드(1079-1142)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해서 믿어서는 안 된다. 다만 이성으로 그것이 진리라고 승복되기 때문에만이 믿어라”고 파리에 모여든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말하였다. 그러면서 안셀무스가 하나님이 사람이 된 이유(Cur Deus Homo)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반박하며 이단자로 몰려서 곤욕을 치렀다. 아벨라드는 안셀무스가 하나님의 성육신 신앙을 이성으로(신학적으로) 설명한 것에 대해 그 진리의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즉 하나님이 자기의 영예를 추락시킨 인간의 범죄를 용서해주기 위해서는 인간이 합당한 대가(속죄의 제물)를 치러야 하는데 인간은 그럴 힘이 없으므로 부득이 죄 없는 자기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해서 인간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하셨다는 안셀무스의 논리(해설)가 하나님을 법적이고 타산적이고 엄격한 분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실종된 신학이었다는 것이다. 

아벨라드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기 아들을 무조건 세상에 보내서 사람이 되어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기를 희생시키게 하셨으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이 사랑에 감격하여 감화를 받아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변화를 받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안셀무스가 말하는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계획을 알고(지식)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을 배격한 것이다. 
 
안셀무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방법을 알고 믿는 지식과 그것을 믿는 신앙을 연결시켰고, 아벨라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것에 응답하는 사람의 심정을 연결시켰다. 전자를 이성적 신앙이라고 말한다면 후자는 정서적(마음)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사람의 믿음이 공리적이고 타산적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믿음이 비이기적이지만 맹목적일 수 있다. 그것은 이성과 심정의 성향 차이 때문인데, 지식(이성)은 객관적인 것을 살피고 심정은 주관적인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아벨라드의 신학강의가 안셀무스의 전통적인 강의 형식과는 달리, 토론적이고 변증법적이고 비판적인 것이어서 유럽 각지에서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파리로 몰려들어 파리대학의 설립의 토대를 놓은 셈이다. 
 
그의 강의를 듣던 수많은 학생 중에 젊은 미모의 한 여학생 헤로이제(Heroise)가 육정의 이성애에서가 아니고 그의 유능하고 새로운 신학사상과 강의에 매료되어 그를 극진히 사랑하고 따르게 되었다. 아벨라드 역시 미남에 들어갈 만한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헤로이제에게 육정의 이성애를 가지고 접근하여 결국 그녀와 불륜의 성관계를 저질렀고 이것이 중세교계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결국 정식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두 사람이 각기 수도원과 수녀원으로 들어갔고, 여러가지 악평과 교회의 핍박을 받았으나 계속해서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을 고백했고 하나님 앞에 속죄의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헤로이제는 자기가 아벨라드를 사랑한다고 미혼 상태에서 자기 몸을 허락한 것이 결코 남성에 대한 육정의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결혼 후에도 그렇게 고백하면서 아벨라드를 호되게 질타한 편지에서 그녀는 말하기를, 만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제국의 모든 것을 나에게 재산으로 준다고 해도 그 재물이 탐나서 결혼하여 왕후가 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은 매춘 행위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당신(아벨라드)에게 여성의 몸을 내어준 것이 매춘 행위와 같은 것이었지만 당신에게 무엇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비이기적인(disinterest) 마음으로 당신의 학문과 공적(merit)을 사랑해서였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결혼했다 해서 결혼 전의 불륜의 죄가 가시지는(고쳐지지는) 않지만 순수사랑(비이기적인)이 결혼의 진리라고 말했다. 
 
헤로이제의 비이기적이고 비타산적인 순수사랑은 상대편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려는 욕심이 없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안셀무스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치밀하고 어김 없는 방법의 이치를 알고 그것을 믿으면 구원 받을 것이라고 설명한 (이기적이고 타산적인)구원론을 비평한 아벨라드의 신학사상을 헤로이제가 바로 이해하고 그리고 실천한 것이 되었다. 즉 하나님의 비타산적인 사랑에 순진한 심정으로 감사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생활이 참 신앙생활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신자의 마음은 단순하여 하나님을 믿어서 어떤 복을 받겠다는 생각, 즉 내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섬기면 무슨 대가가 있을 것을 바라고 믿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생명을 얻게 되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30:6)” 한다. 마음의 할례는 바울이 말한 손할례가 아니며, 또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세례가 아니고 성령의 세례, 곧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머리의 지식의 할례도 받아야 하지만 반드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지식의 할례는 잘못된 신학적 고집과 교만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그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는 말씀했지만 나를 사랑하고는 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감화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모르는 것(지식)이 너무 많았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그를 믿고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를 믿고 따른 것은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들이 예수를 믿고 따른 것이 무슨 타산적이거나 이기적인 욕심(까닭)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예수가 사람들에게 보여준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타산적이었던 가룟 유다는 배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안셀무스나 우리 신자들이 믿음이 좋다니 나쁘다니 있다니 없다니 하면서 자랑도 하고 교만도 부리고 남을 비판하기도 하는 그러한 믿음은, 예수님이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신 그 믿음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신학에는 정통주의니 보수주의니 복음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 어느 신학이 구원의 신비한 진리를 바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믿어서 알게 되는 지식은 신학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학 자랑과 믿음 자랑을 일삼지 말고 믿어서 얻는 지식과 체험과 감격을 가지고 순수한 비이기적인 심정으로 교회를 섬길 때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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