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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21세기한국찬송가에 대하여

입력 Jul 16, 2014 06:52 AM KST
한국교회찬송가대책위원회(위원장 안영로 목사)는 15일(화) 오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소강당에서 제2차 한국교회찬송가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21세기한국찬송가에 대하여”라는 주제 아래 한국찬송가공회 이사장인 서정배 목사가 한국찬송가공회의 법인화와 저작권에 관해서, 한국찬송가위원회 위원인 김정일 장로가 21세기한국찬송가의 개발원칙과 내용에 관해서 발제했다. 
발제 내용을 검토한 결과, 한국찬송가공회의 사유화에 대한 주장과 관련하여 모든 사무를 하나님의 은혜를 거론하는 차원에서 처리하지 않고 일반 사회법적 확증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바람직한 조처라고 평가한다. 물론 지적재산권 적용 시한 내에 있는 창작곡들에 대해서도 엄밀한 법률적 확증을 설정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은 사회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본연의 사명으로 되돌아가서 한국교회 부흥에 매진”하기 위해 개척자가 져야 할 십자가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21세기한국찬송가의 개발원칙과 내용에 관해서는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은 “잘못된 번역, 약간의 오류가 있더라도 이미 전통적으로 불려오고 사용되어 온 것을 고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들이 많아,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식의 태도를 교정하는 일이다. 찬송가를 ‘곡을 붙인 기도문’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미 전통적으로 불려오고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잘못 번역된 부분을 고치지 않겠다는 발상은 ‘적절치 않다.’ 이미 2006년에 개발 완료된 찬송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시기를 놓친 지적에 해당하지만, 기왕 개편을 하려고 할 때 전문가들이 ‘잘못된 번역’이라고 지적한 부분을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둔다는 것은 신앙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새롭게 고치게 되어서 초반에는 익숙하지는 않을지언정, 개편된 찬송가를 몇 년 쓰다가 말 양이 아니면 옳게 고쳐진 가사가 수록되어서 그것이 익숙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두 번째, 곡조를 평가하는 용어가 ‘아름다운,’ ‘자연스러운,’ ‘좋은’ 등 매우 주관적인 점은 찬송가를 선곡한 사람이나 위원회의 평가가 객관적 기준에 따르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음악은 정서적인 실체여서 비록 전문가가 ‘아름답다,’ ‘자연스럽다,’ ‘좋다’라고 평가해도 듣는 사람이나 시대의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찬송가가 신앙의 정서적 표현 중 하나임을 인정한다면 신앙이 ‘아름다운,’ ‘자연스러운,’ ‘좋은’ 곡조로만 표현되지 않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용어들이 종합적인 평가를 단순화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지 않다면, 화성학적으로나 음역(音域)상으로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곡조를 선별하거나 곡조의 특성을 기술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20세기 말부터 세계 찬송가의 흐름이 “시대성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특성에 따라 한국찬송가에도 그러한 특성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결국 현대에 유행하는 창작곡과 영어권 이외 지역의 찬송가를 한국찬송가에 도입했다는 말로 들린다. 세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의 정서도 변하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조처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가 130여년에 이르는 현재, 한국찬송가에도 고전의 범주가 생겼기 때문에 고전에 해당하는 작품을 보전하는 노력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한국적 신앙표현의 집적이자 전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혹시 한국찬송가와 관련된 논란이 기존의 찬송가를 일시에 대체해서 판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는 시도 때문이라면 한국찬송가공회는 단 시간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책을 도모하지 않기를 바란다. 21세기한국찬송가 경연대회를 개최하거나 합창단을 조직해서 개별교회를 순회하거나 신학대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 및 홍보를 하는 등의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변확산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옳다. 세몰이나 압력이나 거래 등의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순간 “각 교단 선교배당금을 지급할 ... 약속”은 오염된 상거래의 미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저변확대의 방식을 취하다보면 성경과 찬송가의 합본을 제작하는 일에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출판사가 알아서 할 일이지 ‘한국찬송가공회’가 미리 염려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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