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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십자가복음, 재정장부의 한 항목인가?

입력 Apr 02, 2015 07:57 AM KST
▲서초동에 소재한 사랑의교회 전경. ⓒ베리타스 DB

지난 3월24일(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재판장 조용현 판사)는 사랑의교회 갱신위가 교회측에 대해 제출한 간접강제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갱신위는 그 동안 입수할 수 없었던 교회재정장부의 열람권을 사법적 강제 아래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측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하루에 2천만 원의 금전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사랑의교회 내홍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보다 앞으로 전개될 논쟁에 대한 우려를 더 크게 한다. 교회재정 운영의 투명성에 대한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회 내의 분쟁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서 5:15)는 말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애초 담임목사의 개인적 일탈로 제기되었던 교회갱신의 주장이 진정성 없는 회개와 어설픈 사법적 강제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재정운영의 문제에로 비화되어 “서로 물고 먹[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교회가 재정장부를 두고 분쟁을 벌인다는 사실 자체가 교회의 기본적인 의미[하나님을 믿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의미에 충실해서 보면, 교회가 분란을 일으킬 큰 곳간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교회가 커졌다, 부흥했다’라는 말이 ‘곳간이 커졌다’는 말과 동일시되고 있는 현실에서 재정장부와 관련된 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성전 곳간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쌓아두고 있다가 부패의 냄새를 풍기게 된 상황인 것으로 들린다. 교회가 세속사회의 부패한 회사의 경우와 흡사한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느헤미야의 치세에 성전 곳간에 도비야의 세간(느헤미야 13:5)이 들어가 있어서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느헤미야 13:9)이 바깥에 방치되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도비야는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암몬 족 출신의 방백으로서 당시 유대의 제사장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성전 곳간에 자기의 거소를 마련했다.  
그러나 성전 곳간에는 느헤미야의 명령대로 성전에 쓸 물건을 보관하고 나머지는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그 방을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 성전의 곳간은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 이외의 것은 모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 흘려보내는 원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비야가 터를 잡고 그 방을 더럽히는 사태가 벌어진다. 물론,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그들의 곳간으로부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로 흘려보내는 헌금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재정과 관련하여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형교회들의 구제와 봉사가 여유로운 가운데 나눠주는 행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유 있는 돈으로 친구를 사귀는 정도의 태도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흘려보내기 운동의 촉매가 된 유튜브 영상 <흘려보내야 산다>(https://www.youtube.com/watch?v=DcDPtobRgZ4)를 보면, 그 속에서는 자신도 힘들지만 남의 고난을 껴안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교회와 개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어려움을 겪는 개척교회에로 자신의 교회에서 신앙 훈련을 잘 받은 신도들을 파송하여 그 교회에서 헌금도 하고 전도도 하며 섬기게 하는 교회가 보이는가 하면, 자신도 투병 중이면서 옆자리의 환자를 돌보는 목사도 보인다.   
교회는 이처럼 성전에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을 곳간으로부터 흘려보낼 때 그 기본적인 의미를 구현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누가복음 12:21)해질 수 있다. 대형교회가 큰 곳간으로 한국교회의 지평에서 실행한 업적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같은 재정운용에 대한 분란을 접하게 될 때는 그 곳간에 여전히 있어서는 안 되는 도비야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비야는 성전 곳간에 도사리고 있을 때 “밖으로 다 내어 던질” 대상이 되지만 흘려보내게 될 때는 생명을 “살린다.” 그래서 ‘흘려보내야 산다.’ 애초에 한 개인의 일탈로 시작된 교회의 내홍이 급기야 재정운용을 두고 ‘추태를 부리는’ 양상으로까지 전개된다면 교회는 죽는다. 기본적인 의미가 희석되어버린 단어는 용도폐기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벌어진 분란의 양당사자들 중 어느 쪽이든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교회의 기본적인 의미를 지탱하는 개념인 십자가의 복음은 재정장부 속의 한 항목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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