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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1] 사람의 존엄성과 신성을 지키는 것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kimkyungjae
(Photo : ⓒ베리타스 DB)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연말연시에 지구촌과 한국사회의 주목받을 만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마다 그 반응이 다양하겠지만, 필자에게는 두 가지 뉴스가 충격이었고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그 중 하나는 한국사회의 가정에 '효도계약서' 작성가정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 의회조사국의 연례무기판매 보고서에서 한국이 작년(2015)에 무기수입국가중 세계 제1위인데 미화 78억달라(한화 9조 1299억원)를 썼다는 뉴스이다. 앞의 뉴스는 한국사회의 도덕적 가치체계가 붕괴되어간다는 조짐이요, 뒤의 소식은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의 자가당착적 모순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과계는 '천륜관계'라고 해서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무조건 주고자 하는 맘이고, 자녀들의 부모에게 효도는 '백행의 근본'이요 사람됨의 제1차 도리라고 수백년 가르치고 행해왔던 나라다. 그런데, 그 부모자식간의 천륜관계가 상거래관계로 까지 전락하여 "효도하지 않으면 상속재산 무효"라는 각서를 써둔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역겹도록 창피하다. 실업청년의 일자리 마련걱정과 되살아나지 않는 한국경제의 위기 앞에서 걱정이 태산인데, 동족 북한의 무력침공을 막는다는 명분 때문에 9조 1299억원을 무기구입에 썼다는 것이다. 세계 앞에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죄스럽다.

남한 한국 땅에 종교인구는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고, 그중 불교와 천주교와 개신교가 종교인구의 90% 이상을 점유한다는 국가통계청 자료가 있다. 현대사회는 세속화된 사회요 경제와 과학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 시대라고 말들 하지만, 종교계 영향과 발언이 가장 강한 나라들 중의 하나가 한국사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필자가 느낀 우리들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자화상' 그 상징적인 참담한 일이 왜 일어나는가? 종교계가 그 책임을 다 짊어질 수는 없지만, 종교의 책임이 막중한 것은 피할 수 없다. 종교는 결국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의미와 가치추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그 1차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일차적 임무는 무엇인가? 사람의 존엄한 가치를 죽도록 지켜내는 일이다. '인간 존엄성의 파수꾼'이라는 임무가 첫째 임무라는 것을 다시 각성해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세를 불려나가는 것도 아니고, 한국을 온통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일도 아니다. 본말이 바꿔지거나 뒤집어져서는 안 된다. 예수가 오셔서 하신 일은 잃어버린 인간들을 찾기 위함이요, 참새 한두 마리 값에 팔려나가는 인간 값을 온 우주보다 큰 존재라고 가르치고 회복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파스칼이 말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바람 한 점, 물 한 방울이면 인간을 죽이기에 족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를 죽이는 우주보다 더 고귀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과 물리적 힘으로는 우주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지만, 우주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소위 '생각하는 갈대'로서 인간의 사유능력, 생각하는 존재, 각성하고 자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갈파한 것이다. 물량적 사고가 지배하고, 수량적 크기가 성공실패의 규준으로 타락해버린 현대사회풍조 속에서 교회와 종교가 해야 할 제1차적 임무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생각하는 사람'을 회복해내는 일이다.

모든 세계적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가르침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만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존엄성만이 아니라, 믿어지기 어렵지만 '신성성'(神聖性)을 가능태 형태로, 잠재성으로, 씨앗처럼, 영적 DNA처럼 갖춘 존재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부르고, 불교는 '불성'이라 부르고, 힌두교는 '아트만'이라 부르고, 유교는 '본연지성'이라고 부른다. 그 것은 그 자체가 신령한 것이고, 밝게 비취는 것이고, 불멸하는 성질의 것이다. 돈보다도, 권력보다도, 명예보다도 귀중한 것이어서 그것을 발견하면 다른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살만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했다. 이른바 인간영혼이 지닌 영성이요 신성이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합리주의라는 과학의 이름으로써 이 '영혼의 신령성'을 부정하고 인간을 생물학적 동물의 살덩어리로 전락시켰다. 사람더러 "너도 정글 동물들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싸움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라고 각인시키기에 바쁘다. 어느새 종교와 교회마저도 '정글의 법칙'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유물론적 사회진화론자들이 되었다. 깊고 순수하고 맑은 인간 내면세계의 지성소가 관심이 아니라, 집회에 모이는 신도숫자와 교회 살림 예산이 '복음적 진리'의 표지가 되었다. 강자는 더 강해지고 살아남되 약자는 없어지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오늘의 교계이다.

빅토르 유고의 '레 미제라블' 작품에서, 장발장이 사제관에서 대접받고 밤엔 사제관의 금은촛대를 훔쳐 도주한 범죄로 다시 잡혀왔을 때, "형제여, 왜 그리 급히 떠나셨는가? 내가 그대에게 준 금 촛대를 왜 몇 개 남겨놓고 가셨는가?"라고 말하는 사제는 임기응변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영혼의 존엄성과 신성성의 값이 교회당과 그 안에 비치된 '성물들' 보다도 더 귀중하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당시 교회의 금은촛대가 사실은 장발장의 몫으로 갈 것을 '헌금'이라는 신성한 절차를 거쳐서 쌓아둔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적 현실은 참담하고 모순적이다. 평화통일 말하면서도 무기구입비로서 9조 1299억원을 신무기 구입비로 쓰면서 세계1위의 무기 수입국이 되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병참산업 발전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북한은 국가체제의 보존과 자위권을 명분으로 하여 인민의 삶을 희생하고 핵무기 개발과 수소폭탄 제작에 집착하여 한반도를 첨예한 긴장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핵무기 하나 제작실험에 대략 한화 1,200억-2,000억원 소요된다고 한다. 남한의 무기 구입비를 가지고서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면 50개정도 만들 수 있는 국방비이다. 미국이 만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를 산다고 한다.

남북이 모두 정상적 정신이 아니다. 함석헌의 직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양쪽 모두 '미친 자살적인 경련'을 일으키는 형국이다. 한국종교들, 그 중에서도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존엄성과 신성성을 지키고 고양시키는 일이다. 종교가 아니고 사람이다. 교권이 아니고 인권이다. 무기가 아니고 식량이다. 전쟁이 아니고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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