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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신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장공 김재준 선생의 이름에 먹칠하는 이사회

Ⓒ 사진 = 지유석 기자
(Photo : )
한신대 본관인 장공관 앞에는 이사회의 총장 선임을 성토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한신대학교가 신임 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요동치고 있다. 사태는 이사회가 교수, 학생이 참여한 총장후보선출 투표결과를 원천 배제한데서 불거졌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격앙돼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신학과 재학생의 증언은 기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학생의 증언을 들어보자.

"이사들의 태도는 학생들을 제자로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들만의 옮음으로 일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체벌을 가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신대학교는 지난 1980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이 학교의 근간은 신학이다. 한신대가 갖는 상징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신대는 문익환 목사, 장준하 선생, 안병무 등을 배출하며 민중신학, 개혁신학의 산실이자 요람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어디 그뿐인가? 1972년 유신이 선포되자 삭발투쟁을 벌이며 맞섰던 학교다. 말하자면 한신대는 한국 지성사 및 민주화 운동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는 의미다.

신임 총장 선출과정에서 어떤 잡음이 불거졌는지에 앞서 한신대 이사진들이 학생들을 고압적으로 대했다는 점은 한신대의 현주소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채수일 전 총장, 갈등의 씨앗 뿌려

사실 이번 사태의 먼 원인은 채수일 전 총장의 무책임한 사퇴였다. 채 전 총장은 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은 임기를 1년 10개월여를 남겨놓았음에도 경동교회 초빙을 이유로 사임했고, 이에 학내 구성원들은 격분했다.

지난 해 10월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대학원 원우회, ‘한신대민주화를지지하는 동문모임' 등으로 구성된 한신대 대책협의회(대책협)가 이 학교 학생 2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4명의 학생들이 "(채 총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므로 하루 빨리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답했다. 그 정도로 채 전 총장에 대한 배신감은 컸다. 학생들이 신임 총장 선임 과정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근본이유는 채 전 총장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의 미온적 태도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아직 총회 쪽에서는 한신대 학내 갈등에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다. 한신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 학생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사진들은 총회가 임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사회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총회도 일정 수준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총회는 아무 말 없다. 총회는 지금 경찰이 총회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한데 격앙돼 있는데, 왜 이사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

기장 교단 목회자들은 자부심이 남다르다. 지난 해 9월 100회 총회 석상에서 한 총회 임원은 ‘하나님이 기장에 (시대를) 앞서 가는 영성'을 주셨다고 자부했다. 이번 신임 총장 선임에 참여한 이사들 역시 기장 목회자들일텐데, 이분들의 행태는 여느 다른 보수 장로교단 목회자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따져보자. 한신대 학생들은 연간 800만원의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등록금 말고 학교 생활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치면 학생 1인당 연간 1,000만원 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학부모의 재력이 탄탄하지 않는 한,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다. 이런 고비용을 들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오로지 이사회의 결정에 순순히 따라야만 하는가?

한신대 사태는 이사회 결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학생들이 일으킨 ‘말썽'이 아니다. 그보다 이사회가 채 전 총장의 퇴임 이후 학내 구성원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를 무시하고 권위적으로 총장 선임을 강행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백보양보해서 일부 ‘운동권'이 주도한다 하더라도, 이 학생들 역시 한신대의 엄연한 구성원이고 따라서 한신 공동체는 이들을 품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게다가 한신대는 민주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학교 아니던가? 이번 사태가 몇몇 사학에서 흔하게 봐왔던 학내 갈등임에도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신대가 갖는 상징성이 중차대해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한신대 모든 구성원이 학내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사들이 교권적 권위의식을 내려놓기 바란다. 총회 역시 이번 일에 책임을 통감하고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기장 목회자를 양성하는 한신대가 삐걱거리면 총회에도 그 여파가 미치는데, 총회가 왜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한신대 본관인 장공관 로비 벽면엔 장공 김재준 선생의 동상이 새겨져 있다. 동상 아랜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부디 장공의 정신과 한신대의 자랑스런 전통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공과 한신은 바리세주의적 교권주의와 근본주의 신학으로부터 이단신앙으로 비판받았으나 한국에 진보주의 신학의 학맥을 심어 한국 개신교에 새역사를 창출했으며, 그의 신학은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통하며 학문의 자유로 민중과 연대한 역사의식으로 진취적 사회참여 신학으로 꽃피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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