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몸 된 교회의 병과 치유: 종말론과 성경
채영삼 백석대 교수

입력 Mar 06, 2020 07:19 AM KST
shincheonji
(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2일 오후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신천지 게이트'로 번져갈지 모르는 '신천지 사태'가 크다. 시작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했지만, 그보다 더 악질 종양 같은 사이비 종교가,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날마다 눈으로 목도하는 중이다.

무서울 만큼의 전파력에 있어서는 신천지와 코로나가 막상막하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코로나가 치명적이듯이, 부실한 기독교에게 신천지도 치명적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단의 출현은 주류 교회의 병적 증상의 증거다. 몸 된 교회가 어딘가 아플 때, 그 약한 곳을 파고들어 병을 일으키고 몸을 아프게 하는 악질 이단이 생겨난다. 그래서 이단은 정통 교회의 건강 진단서 같은 역할을 한다. 희망적으로 보면, 이단을 바로 상대하는 정통교회는 악질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백신을 만들어낼 기회를 얻어, 더욱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갈 기회를 찾는다. 교회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신천지 사태를 통해, 교회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우선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이다. 신천지가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큰 이단이라면, 그것은 한국교회가 가장 크게 잃어버린 내용이 바로 그것이라는 반증이다. 신천지 이단의 성장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얼마나 '현세적 신앙'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동안 교회는 마치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현세적 성공을 위해 '복음을 무모하게 왜곡, 변질'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죄 용서 받는 십자가만이 아니다. 예수 믿고 세상 복 받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거룩한 삶도 단지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살아 있는 소망 안에서 그 전망과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을 회복해야만 한다. 주일 11시 대예배 시간에, '이 세상은 끝난 것이며,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미 왔고, 오고 있고, 올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하는 강단이 넘쳐나야 한다. 가장 종말론적인 삶이 가장 현실적이며, 이 세상을 위해서도 가장 유익한 삶이라는 복음을 속히 회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성경공부, 교리공부이다. 한국교회가 깊이 있게 반성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다. 신천지는 성경지식에 굶주린 성도들, 복 타령에 쌈 박 질만 하는 교회에 신물이 난 성도들을 꾀어냈다. 성경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모든 프로그램을 접고라도, 성경을 가르치고, 삶으로 치열하게 살아내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고 깨닫는 대로 더욱 성경을 배우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 기도, 실천, 기도, 성경이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모이고 돈 내서 지은 큰 예배당에서 예배도 드릴 수 없게 되지 않는가. '돌로 지은 성전'은 늘 무너졌다. 참된 성전인 성도를 세워야 한다. 맹물에 설탕 가루를 탄 설교로 권력 다툼이나 하는 거짓교사의 일을 그쳐야 한다. 그런 허약한 교회로는 이단조차 이길 수가 없다. 가르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진리'에 헌신해야 한다. 들어서 잘 되는 복음이 아니라, 듣지 않으면 죽는 복음을 가르치라. 무엇보다, 성도가 성경에 정통하도록, 교리에 견고하게 서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지나친 열심을 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살아 있는 소망의 복음 철저한 성경 공부 그리고 과격한 실천을 통해, 교회는 신천지 같은 악성 바이러스를 퇴치할 백신을 얻을 것이다. 그래야 이 모든 고난이 참된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긍휼하신 주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 이 글은 채영삼 백석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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