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어린이주일 설교] 거룩한 생존 공동체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입력 May 07, 2020 09:37 AM KST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출애굽기 40장 12-16절, 시편 112편 1-10절, 마가복음서 10장 23-30절

[작은 상가 교회와 겨자씨]

지난 주 화요일 저녁 '뉴스앤조이'라는 기독교 인터넷 언론에 우리 교회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부활절에 목회 서신과 작은 선물, 생명사랑 가족 생활지원금을 나눈 것을 다룬 기사였는데, 이 기사의 제목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은 상가 교회의 특별한 시도,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교인에게 생활지원금 지급 - '포스트 코로나 19' 고민하는 생명사랑교회 "생존 공동체로서의 교회 훈련"> 우리 교회가 "작은 상가 교회"로 불렸는데, 이 단어가 제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비친 우리 교회의 모습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작은 상가 교회일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지하 상가 교회이지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기태네 가족이 살고 있는 반 지하 월세방처럼 왠지 지하상가 교회의 이미지는 우충충하고, 더럽고, 구질 맞아 보입니다. 그에 비하면 IT 회사로 자수성가한 박 사장네 집은 너무나 화려하고 깔끔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왠지 교양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도 그 건물을 보면 매우 화려하고 깨끗하고 웅장할 뿐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고급 호텔에 온 것처럼 밝게 빛이 납니다.

교회 성장 신학, 번영 신학이 주류를 이루던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는 능력이 있어 성공한 CEO로 대접을 받았고, 교계나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상가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목사들도 모두 부흥해서 대형교회로 성장하거나, 작은 상가 교회를 디딤돌로 삼아 대형교회로 옮겨가기를 꿈꾸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고 숱하게 말해 왔음에도, 세상의 이런 인식을 뛰어 넘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금도금으로 빛나던 예루살렘 성전을 본 제자들이 탄성을 지른 것처럼(막 13:1), 자본주의 사회에서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물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멋진 공간에 있을 때, 아름다움을 느끼고, 잘 지어진 건물은 인간에게 아늑함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간도 아름답고 의미 있게 지으면 참 좋지요.

그러나 저는 주님 예수께서 펼치셨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재현하기 위해 신앙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생각했기에 그동안 교회 건물에 주목하진 않았습니다. 선교 사역과 교회 활동을 하기에 조금 좁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우리 교회 활동을 소개하는 제목의 첫 단어가 외관의 모습을 묘사하는 "작은 상가 교회"여서 아마도 야릇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을 때 당시 청중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쭉쭉 뻗은 레바논의 백향목 정도는 되어야 하나님 나라인데, 백향목이 아니라 작은 겨자씨로부터 온갖 새들이 깃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에 많은 사람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겨자씨 같은 작은 상가 교회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새들이 깃들일만한 하나님 나라를 일구고 있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마음과 힘을 모아 실제로 하나님의 일들을 해내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돈을 소유하면 안 된다고 말씀 드렸듯이, 건물도 하나님 나라 선교 활동을 위한 기지가 되어야지 부동산이나 자산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누구나 와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교회 건물을 부동산으로 여기는 순간 교회는 강도들의 소굴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임대하여 사용하는 이 공간은 하나님 나라의 희망과 꿈을 생성해 내는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상처 받은 이들이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생존 공동체?]

제 눈에 띈 또 하나의 단어는 "생존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사실 교회는 생존을 위한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한 모임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모이며,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살아갑니다. 생존은 선교를 위한 기반으로서만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 교회가 공간을 임대하고, 헌금을 걷고, 전문직 목회자를 두는 모든 이유는 자기를 보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어떤 공동체나 개인은 그 사람의 생존이,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며, 빛이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에서 함석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불의(不義)의 사형장(死刑場)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지금 코로나 19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의료진들과 밤새워 일하는 역학조사관들이 계시고, 또 정은경 질병본부장이 있습니다. 지난 두세 달 동안 이들은 헌신을 다해 세계적 질병과 싸우고 있고, 이들의 건강한 생존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지난 4.15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좋은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빛이 됩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을 때,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의 헌신이 우리 모두에게 감동이 되었듯이, 지난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빛이 된 사람들, 빛이 된 공동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겉모습으로 볼 때 작은 상가 교회에 불과 합니다. 1년 예산 빠듯이 세워 겨우겨우 운영하는 정도인데, 코로나 19라는 전에 없던 위기가 세계에 불어 닥쳤고, 우리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아마도 경제는 장기불황에 접어 들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형 뉴딜을 얘기한 이유입니다. 여름과 초가을이 지나면 또 다시 코로나가 올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세계적 전염병이 일상화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우리 모두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나고,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겪으면 준비하여 계획했던 것도 변경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함께 모일 수가 없기에 교육과 선교 활동, 친교와 예배에서 모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교회에 꼭 나오지 않고도 예배하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구조자체를 바꿔야 할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었을 때, 다시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인지 묻고,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교회는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문명사적 전환기에 선 이 때, 많은 교회들이 자신의 생존을 고민합니다. 코로나 19로 30%에서 70%에 이르는 헌금이 감소했고, 교회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고, 우리 교회처럼 월세를 내야하는 교회, 빚을 지고 건물을 새로 지은 교회, 시골마을에서 막 개척한 교회 등 존폐 위기에 놓인 교회들이 많아졌다고 뉴스앤조이가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기존의 모이는 예배를 강행한 교회도 있고, 빨리 코로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자체의 생존만을 위한 모습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과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목회자들은 교인 헌금을 걷어서 호위호식 하는 사람으로만 그려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건물이나 제도로서의 개(個) 교회는 언제나 생성 소멸을 반복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나쁜 것도 아닙니다. 모든 도구가 수명을 다하면 새 것으로 교체하듯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는 제 역할을 다하면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고, 거룩한 빛으로 생존하려면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너희가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느냐? 따라서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소금과 빛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럴 때 거룩한 생존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생활지원금을 나눈 것은 우선적으로는 코로나 19로 고생하는 교우들을 위한 것이요, 둘째는 어려운 우리의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란 것이며, 코로나 극복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데 힘을 보태자는 의미였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노력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도 서울시에서 재난지원금을 받았고, 또 교회에서 생활지원금을 받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질 텐데, 우리교회가 먼저 시도해 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고,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훈련은 공동체를 살립니다. 앞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더 큰 일도, 더 큰 실험도 하게 될 것입니다.

매년 우리가 금식헌금으로 북한을 도왔는데, 해가 더할수록 헌금의 액수가 늘어납니다.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특별재난 헌금을 걷어 총회로 보내서 재난구호에 쓰도록 했고, 교인 중에서 특별히 더 어려운 분들은 따로 도왔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가 그냥 생존 공동체가 아니라, 거룩한 생존 공동체가 되는 길이고, 이것들을 해내는 여러분과 저,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서의 말씀은 아론과 그의 후손들을 따로 불러 세워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는 예식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제사장을 따로 구별하여 세우는 것일까요? 이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언행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들이었습니다. 개신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따로 불러 다른 이들과 구별하여 세운 제사장이라고 생각하는 교단입니다. 그러니 우리 생명사랑교회 구성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상에 있는 많은 공동체들과 뭔가 달라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아낌없이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쓰듯이, 그렇게 쓰면서도 서운하거나 아까운 줄을 모르듯이 우리가 진정한 신앙 가족이라면 내가 우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까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먹을 것을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사랑과 정의와 생명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거기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먼저 우리 안에서 사랑과 정의와 생명과 평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 힘으로 세상에 나서야 합니다.

[희망이 되는 사람들]

오늘 시편은 뭐라 말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속임수가 아니라 정직한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부귀와 영화가 있고, 그의 의로움은 영원토록 칭찬을 받으며,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비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것을 정직함, 의로움, 긍휼과 연결 짓고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면서 남에게 꾸어 주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며, 영원히 기억되며,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믿음과 의로움을 연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겪을 때에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으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을 도우려 하고, 자기 욕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코로나 19를 겪으며, 예전과 같지 않은 상황 때문에 마음이 허전하고 우울증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고 합니다. 뜻하지 않는 사건을 마주할 때, 우리는 갑자기 다른 세상에 댕그라니 놓인 듯한 경험을 합니다.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지요. 여기가 어디인지 낯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에 휩싸입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뭔가를 막 해야 할 것 같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찾아왔나 하며 자책감도 듭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럴 때일수록,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차분히 돌아보라고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를 과거의 유산이나 경험으로 판단하려 들지 말고, 멈추고 우선 자신이 선 자리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방향을 찾을 수 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물질적 도움이며, 정신적인 동반자입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말합니다.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주님을 믿으므로 그의 마음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누구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계명을 즐거워한 사람, 정직하며, 의로우며, 긍휼이 많아 은혜로운 그 사람입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확고하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서의 말씀을 봅시다. 한 젊은이가 예수께 다가와 영생을 얻는 법을 물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였으나, 한 가지 부족한 것 곧 그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 때문에 근심하며 떠나가고 맙니다. 그는 많은 재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찾고자 했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해 오던 대로 자신이 모은 재산을 의지합니다. 성경을 가만히 읽어 보면 그가 가진 재산도 속여서 빼앗은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사람은 재산에 대한 애착이 많습니다. 재산이 자신을 지켜 주고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과 나눌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영생, 참되고 의미 있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부자 청년은 재산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버려야 얻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첫 교인들은 자신들 개개인의 가족만을 챙기는 가족 이기주의를 포기함으로써 교회 즉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인 가족을 얻었고, 모두가 함께 쓰도록 개인의 재산을 내어 놓음으로써 어느 누구하나 부족함 없는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공격하여 즉 속여서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부를 늘렸지만, 영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삶의 풍요로움은 바로 자신의 장점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누구하나 소외되거나 차별 받지 않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갈 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위기로 인하여 인류가 이제야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경쟁보다는 공존과 상생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악착같이 모은 사람이 떵떵거리는 세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도태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버릴 때는 분명히 버렸는데 보상을 받을 때는 받지 못하는 항목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입니다. 고대에 아버지가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는 이유로 권력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오로지 사랑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아버지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에서는 지배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섬기러 오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는 오직 사랑과 섬김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거룩한 생존공동체로서 서로 사랑과 섬김으로 나누는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공동체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할 것입니다.

제가 요즘 수유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에스페레라는 커피집의 원두를 사다가 즐겨 마십니다. 제가 사장님을 잘 아는데, 10여년 전에 만났습니다. 이 분은 삶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절망에 빠져 있다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커피를 배우게 되었는데, 10년 만에 이 분야에 가장 탁월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로스팅한 커피콩을 갈아 마시면 다양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고, 커피가 '차'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커피를 마신 뒤로 다른 커피를 마시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고급 커피를 맛본 뒤로 몸에 좋지 않은 커피를 너무 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동영상을 공유하는 채널에서 설교를 들을 때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된 복음을 접한 교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비상식적인 내용과 세상의 가십거리나 농담이나 만담류의 설교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복음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해서 세상 곳곳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야말로 작은 상가 교회이지만 거룩한 생존공동체로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새들이 와서 안식을 누리는 곳이 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근원이시며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를 소금과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지만, 이것이 단절이나 고립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연결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내면이 더 넉넉해지고 깊어지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작은 교회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갈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 놓을 때 주님께서 더 큰 공동체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그 풍성한 은혜로 많은 이들을 초청하게 하시고, 누구나 주님이 베푸신 잔치에 와서 먹고 마시게 하여 주소서. 그래서 온갖 새들이 깃들이는 주님의 안식처,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여 주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거룩한 생존 공동체가 됩시다. 생명사랑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됩시다.

* 축도

여러분에게 좋은 친구가 있기를, 또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위대한 사랑과 따뜻함 그리고 느낌과 용서가 있는 여러분의 영혼 안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기를, 그 여행길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여러분 안에 있는 부정적이고 차갑고 냉정한 것을 바꿀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려는 생명사랑교우들 위에, 코로나 19로 애쓰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이 설교문은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의 5월 3일 어런이 주일예배 설교 원고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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